[Opinion] 나 삐끗했어 [문화 전반]

삐끗은 어긋난 정신 때문일까 중력 때문일까
글 입력 2023.05.0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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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있던 인형을 우연히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순간 떨어지는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그 누구도 잡아주지 못한 채 내 곁에서 멀찍이 멀어져 가는데, 이상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처연해 보였다고 해야 할까?

 

동시에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힘 없이 물러가는 모습이 내 어떠한 넘어짐과 비슷해 보였다. 그때 그 추락하는 인형을 보며, 이러한 넘어짐은 누구 탓인지 궁금해졌다.

 

중력보다 힘이 탓이 클 것 같은 예들을 나열해 보았다. 혈압이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영양소가 부족해졌을 수도 있고, 똑바로 걸을 만큼 정신이 똑바르지 않은 상황도 있다. 가령 술을 마셨거나 두통이 왔거나,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 압박된 때와 같이 말이다. 후자의 경우, 가장 가벼운 넘어짐을 우리가 삐끗이라고 하지 않나?

 

삐끗이란 말은 뭔가 이상하게 귀엽다. 약간 나사 하나 빠진 말 같다. 그러한 정신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고. 누군가 걷다가 삐끗했다면, 그 사람은 넘어진 게 아니다. 그 사람은 어쩌면 완전히 엎어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그러한 일 조차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의 중간에서, 운이 좋게 전자를 피한 것이다.

 

 
삐끗은 어긋난 정신 때문일까 중력 때문일까
 

 

정말 어이없는 질문이지만 한번 풀어보겠다. 우리가 삐끗하는 대부분의 순간, 그것은 우리의 정신 상태가 삐끗하여 야기되는 것이다. 즉, 정신 상태가 해이해졌을 때 몸이 일으키는 작은 실수라고 할까? 정신 걷는 데 고양되어 있는데 삐끗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삐끗하는 원인의 지분은 정신과 중력 둘 중 무엇이 더 클까? 정신이 주범일 것 같다. 중력은 언제나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 사회 안에서 어떠한 강요에 의해, 살아남기 위해, 안전하기 위해, 일을 하기 위해 즉 세상살이를 하는데 필요로 한다.

 

이 말은 삐끗하는 순간 세상살이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삐끗하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한다. 빨간불에는 멈추고 초록불에는 길을 건너며 블록이나 턱이 있는 거리가 있을 때는 적당히 피해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뛰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열심히 걷고 밥을 먹고 일터를 가고 집을 가며, 열심히 성장하고, 열심히 돈을 벌고 돈을 쓴다. 이 와중에도 삐끗하지 않기 위해 허투루 걸어서도, 허투루 지갑을 열어도 안된다. 매 순간 정신 똑바로 차리며 열심히 세상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운 세상 살이 법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우리는 삐끗한다. 이 삐끗은 누구의 책임인가? 분명 삐끗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텐데, 결국 내 탓이다. 전에 티빙 드라마 <술집도시여자들> 속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다.

 

 

‘너무 많은 걸 기억하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수많은 패턴과 비밀번호들, 하루에도 쏟아지는 아이돌 이름과 멤버 수, 기억할 게 많아서 잊히는 것도 빠른 세상. 가끔은 좀 잊고 살라고 술이란 게 있는 게 아닐까?’

 

- <술집도시여자들> 3화 중

 

 

하지만 우리에게는 적당한 핑계들이 있다. 어릴 때는 어려서 삐끗이 용서가 되었고, 그럴 수 없는 어른들은 술의 이름을 빌려 삐끗을 변명한다. 이 글은 절대 술을 권장하는 글이 아니다. 그냥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삐끗이 용서되는 이해를 독려하는 글이다. 삐긋의 어긋나고 잘못된 느낌보다 그 아픔에 대한 공감이 필요해 보인다.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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