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좋은 죽음 이전에 좋은 삶 -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노화를 피할 순 없지만 슬픈 죽음은 피할 수 있다고 믿기에.
글 입력 2023.04.29 15: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죽음은 탄생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사람들은 탄생은 기뻐하지만 죽음은 두려워하죠이젠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저는 이 일을 하면서 이런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많이 만나봤고 그 여정을 함께 했습니다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죽음의 순간이 사랑웃음눈물희망기쁨으로 가득 찬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물론 두려운 순간도 있어요그럴 때는 제가 안심시켜드립니다고통이 따를 수 있어요그럴 때는 그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게 통증 완화팀과 함께합니다무엇보다도 저는 좋은 죽음이 가능하도록그리고 남은 이들이 긍정적인 기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저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두려움 없이 이 세상을 떠나길 바랍니다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그렇다고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279p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친했던 친구들, 얼굴만 아는 사이나 싫어했던 사람들까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일은 없다. 죽음은 슬프고 아프고 비밀스럽다.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죽음을 원한 것처럼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의 작가 애니 라이언스는 책 집필 6개월 후 가족의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죽음이 팽배했던 세계 2차 대전을 겪으신 작가의 어머니는 평소에 죽음 관련된 이야기를 꺼렸다. 병세가 나타난 이후에는 빠르게 악화하여 당신의 죽음과 이후를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할지 전혀 대화할 수 없었다. 비단 애니 라이언스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언젠가 다 죽는다지만 미리 대비하고 정리해두기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죽음이 갑작스러운 재앙처럼 느껴진다.

 

 

유도라허니셋-표1.jpg

 

 

장편 소설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의 주인공 미스 허니셋은 이러한 죽음을 많이 보아온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구급차에 몇 번이고 실려 집과 병원을 왕복하다 돌아가셨다. 유도라는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너무나 잘 알았다. 그렇기에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 너무나 괴롭다.


게다가 그에게세상은 친절하지도 관대하지도 않은 곳이다. 조급하고 서로 판단만 해대는 곳일 뿐.”(137p)이다. “세상은 너무 가혹했다. 조쉬 같은 훌리건도 최악에 끼지 못할 만큼.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에게만 얽매여 있다. 유도라나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들은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뉴스와 음식을 소비하고 마치 자신들의 의견만 중요하다는 듯이 지켜보고 판단하고 생각을 내뱉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유도라는 그저 투명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유도라 또한 그들에게 관심을 끊어버렸다.”(38p)

 

나이가 들면 들수록 유도라는 세상과 어울리기 어렵고 단절된다. 유도라가 적극적으로 세상에 관심을 끊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걸음을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도라는 소설 속에서 노인이 되는 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이 들어 가장 답답한 부분은 행동이 느려졌다는 점이다차를 끓이는 것부터 위층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까지뭘 해도 노력이 필요했고 이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유도라는 사람들이 노인을 보고 짜증을 내는 까닭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비틀거리며 걷는 노인이 길을 막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그런데 경악할 노릇은 이제 그녀 자신이 그런 노인이 되었다는 것이다103p

 

 

인간의 수명은 연장됐는지 몰라도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215p

 

 

삶에 회의를 느낀 유도라 허니셋은 어떻게 살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죽어야 할지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원하는 죽음은 죽을 날만 기다리며 병과 사투를 벌이는 죽음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듯 집을 나와 스스로 맞이하는 죽음이다. 유도라는 본인이 선택한 죽음을 위해 안락사를 신청한다.

 

안락사라니.

 

누군가는 크게 반대할지도 모른다. 생명은 언제나 존엄하고 소중한 것이니까. 하지만 유도라의 험난했던 삶과 피로한 일상을 보고도 무조건적인 반대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버지의 죽음, 동생과 어머니의 불화, 동생의 배신, 살릴 수 있었던 삶에 대한 죄책감, 가장 소중했던 친구와의 결별, 노인이 된 어머니의 죽음.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소중한 사람은 모두 떠났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는데 몸은 말썽이다. 진찰 한 번 받으러 가는 것도 힘겹다.

 

유도라는 안락사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알게 된 뒤 알게 된 뒤 달력에 자유라고 적는다.

 

 

자유.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수년 만에 처음으로 삶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늙음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거기에 저항하고원치 않는 껍질을 벗겨내듯 옆으로 치워버릴 것이다누구의 방식도 아닌오직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을 것이다. 42p, 43p

 

 

유도라의 사정을 읽다 보면 나 역시 노화가 가져다주는 온갖 불편함과 외로움이 내 미래로 느껴진다. 덩달아 유도라가 말하는 자유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해된다.

 

소설은 안락사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표현하거나 유일한 탈출구처럼 묘사하지 않는다. 유도라는삶이란 소중한 것이고 우리에게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한 우리는 그 여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안락사 신청서를 검토하는 의사는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남은 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 달라고 부탁한다. 죽음전문가 해나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만 만일 두렵지 않다면 현재에 열중해 삶을 살면서 죽음에 대해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설에서 안락사는 꾸준하게 고민하고 신중을 기해야 하는 문제다.

 

유도라의 삶 역시 영원히 외롭고 고독하진 않다. 유도라의 옆집에 로즈라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아이가 이사를 오면서 유도라는 삶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

 

로즈는 유도라가 혹시 다쳤을까 봐 매일 같이 확인하러 찾아오고, 유도라는 그런 로즈의 해맑고 밝은 부분을 낯설어하면서도 애정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덩달아 친해진 이웃 노인 스탠리는 장난스러운 성격으로 유도라를 가족 모임과 노인 모임으로 이끈다. , 유도라는 자꾸만 기억력이 감퇴하는 스탠리와 매일 연락하면서 그의 가족을 안심시킨다. 유도라는 서로 의지하는 관계에서 점점 삶이 얼마나 즐거운지 깨닫고 그토록 바라던 안락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한다.

 

 

“아빠랑 동생 때문에 슬펐겠지만그래도 할머니는 좋은 인생을 살았어요.”

유도라는 로즈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녀가 말했다. “모든 걸 감안해볼 때그런 것 같구나.

 

 

어떤 삶이 좋은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전쟁과 배신, 가정의 화목을 위한 중재 역할로 늘 고단했던 유도라의 삶은 마냥 괴롭기만 했을까? 소설에서 보여주는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떠났고 유도라는 지쳐 날카롭다. 그럼에도 독자처럼 유도라의 삶을 모두 전해들은 로즈는 위와 같이 평가한다. 모든 걸 감안해볼 때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내내 좋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 소설은 사실 좋은 삶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선 좋은 삶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도라는 왜 모든 것을 감안해볼 때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죽길 바라는 유도라가 죽기 직전까지는 죽음 대신 삶을 바라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유도라는 의사 선생님의 부탁을 충실히 이행한다.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고 감정적으로 치유 받는다. 이 치유의 기반에는 타인을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젊은 의사와 늙은 여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그들 사이에서 서로를 인정해주는 눈빛이 오갔다나이를 불문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연대한 두 여성유도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느낌이었고또 놀랍게도 자신에게도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았다. 145p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모두가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었어요잘 모르는 사람도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도모두가 아버지의 죽음에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아버지가 얼마나 사랑받는 분이었는지를 들려주셨죠친절함에는 아주 큰 위안이 있다고 생각해요요즘에는 친절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할 정도죠제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가 가세요?” 307p

 

 

세상과 단절한 듯 보이던 유도라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서 힘을 얻고 활기도 되찾는다. 유도라가 친절을 베풀고 주변인들도 다정으로 답하며 얻는 일이다. 젊고 열정 있는 의사를 위해 직접 나서고 아이의 출산을 돕거나 로즈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 친구 사이에 조언하거나, 스텐리의 가족 모임에 찾아가 가족의 걱정을 덜어주는 일. 친절함이 꼭 보상받는 건 아니지만 삶을 훨씬 윤택하게 만든다.

 

굉장히 현실적인 이 소설은 여러 깨달음을 준다. 노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냉철한 삶이 언제고 모습을 바꿔 다정할 수 있다며 위안한다. 또 죽음이 두려운 일이 아니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반드시 타인에게 다정할 필요가 있고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며 산다면 친절하지도 관대하지도 않은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믿음까지 얻는다.

 

이런 다양한 깨달음 앞에서 죽음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질문으로 끝난다. 책을 덮고 나면 질문은 내게도 옮는다. 나와 내 주변인이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죽음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지는 정할 수 있으므로 유도라 할머니의 삶은 어떻게 괜찮았는지 나의 삶은 어떻게 괜찮아질지 생각하게 된다.

 

 

 

전문 김혜원.jpg

 

 

[김혜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