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분자 조각가들

글 입력 2023.04.1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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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스토리 <어쩌다 어른> 화제의 과학자 백승만


생명을 살리고 기적을 창조하는 분자 예술의 세계,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분자 조각가들의 이야기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약에 관심이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재택근무 같은 다양한 방안이 동원되었지만, 결국 코로나19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이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 레이스로 쏠렸고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주식 시장도 요동쳤다. 대중의 머릿속에는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생소했던 제약회사들의 이름이 각인되었고, 각 회사에서 개발된 백신의 특징과 장단점을 소상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신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여전히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신약은 왜 그토록 개발하기 어려운 것일까? 약이 될 수 있는 후보 물질은 어떻게 찾는 것일까? 후보 물질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약이 되는 것일까? 약의 효과는 최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질문의 이면에는 묵묵히 분자를 조각하고 다듬어 생명을 살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분자 조각가들이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은 분자를 조각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피에타상을 조각했던 것처럼, 분자 조각가들은 화합물에 탄소, 수소, 산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고 커다란 분자를 연결해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분자 조각가들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조각한 화합물이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화합물을 약이라고 부른다.

 

[나도 조각을 한다. 물론 미켈란젤로의 조각과는 많이 다르다. 내가 조각하는 것은 화합물이다. 주어진 물질에 탄소나 산소, 수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면서, 또는 다른 커다란 분자를 연결하면서 적당한 모양을 완성한다. 내가 만드는 조각품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화합물을 약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본질은 비슷하다. 미켈란젤로가 최고의 원석을 고르기 위해 로마 근교의 대리석 산지를 돌아다니고 잘 손질한 조각 기구와 함께 작업장에 들어선 것처럼, 나는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시약 회사 홈페이지를 돌아다니고 플라스크와 시약을 가지고 실험대 앞에 선다. 그리고 하루하루 열심히 분자를 다듬는다. 나는 분자 조각가다.] (9쪽)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분자 조각가들이 있고,

그들이 만드는 물질은 환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분자 조각가들]은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자가 새로운 약이 창조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 백승만 교수는 신약 개발 방법과 최신 트렌드에 정통한 의약화학자인 동시에 약학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의 역사를 다루는 인기 교양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신약이 개발된 역사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분자 조각가들]은 화학자들이 어떻게 신약 개발에 관심을 가졌는지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연금술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초기의 화학자들은 우연에 기대거나 동물이나 식물에서 영감을 얻어 신약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해열진통제의 대명사인 타이레놀은 개발 과정에서 여러 번의 우연한 사건을 겪었다. 타이레놀의 선조 격 의약품인 아세트아닐라이드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조제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잘못된 약물이 전달되면서 해열 효과가 발견되었다. 아세트아닐라이드를 발전시킨 4-아세트아미노페놀은 뛰어난 해열진통 효과에도 불구하고 개발 당시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견되어 약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 부작용이 발견된 실험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서 오늘날의 타이레놀이 탄생했다.

 

당뇨병 치료제인 엑세나타이드의 개발 과정은 동물에서 유래한 물질이 약으로 개발된 과정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미국 남서부의 사막 지대에 서식하는 아메리카독도마뱀이 혈당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도마뱀은 엑세나타이드라는 자신만의 특이한 혈당 조절 호르몬을 이용해서 먹이가 적은 사막에서 생존하고 있었다. 분자 조각가들은 엑세나타이드가 인간의 몸에서도 비슷한 작용을 하면서도, 기존에 연구되고 있던 당뇨병 치료제보다 지속 시간이 길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약으로 개발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화학자들은 엑세나타이드가 소화관에도 작용해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준다는 점을 이용해서 포만감을 늘리고 최종적으로는 살을 빼는 용도로 개량했다. 독도마뱀의 호르몬에서부터 이어진 분자 조각가들의 연구는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삭센다로까지 이어졌다.

 

화학이 발전하고 인체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화학자들은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넘어서서 보다 고차원적이고 정교한 기술을 동원해서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19세기에 개발된 바르비투르산으로부터 이어지는 수면제 개발의 역사다.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는 수면제를 만들기 위해 분자 조각가들은 수백 년 동안 분자를 조각하고 다듬었다. 바르비탈, 페노바르비탈, 부토바르비탈, 펜토바르비탈로 이어진 역사는 의약계 최악의 흑역사인 탈리도마이드를 낳았다. 수면 효과와 진정 효과가 강했던 탈리도마이드는 입덧을 줄여주는 효과가 발견되어 많은 임산부들이 복용했다. 탈리도마이드가 태아의 기형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탈리도마이드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1만 2000여 명의 기형아가 태어난 뒤였다.

 

그리고 그 탈리도마이드는 현재 혈액암 치료제를 비롯한 다양한 치료제의 재료로 활용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탈리도마이드가 신생아에게 기형을 유발하는 작용 기전이 밝혀지면서, 그 작용을 역으로 이용해서 악명 높은 다발 골수종을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 위험한 물질이 더 위험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변신한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의약품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시는 코로나19 치료제가 개발된 과정이다. 1953년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 이후, DNA의 구조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암세포의 DNA나 바이러스의 RNA를 노리는 약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지도부딘은 처음에는 암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화합물이었다. 연구진은 지도부딘이 DNA의 복제 과정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암세포의 분화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미미한 효과로 인해 실패한 화합물로 간주했다. 하지만 실험실 냉동고에서 잠자고 있던 지도부딘은 세기말의 대역병인 에이즈의 치료제로 개발되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지도부딘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역전사효소를 억제한다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역전사효소를 공략해서 에이즈 치료제를 만들었던 경험은 고스란히 코로나19 치료제의 개발에 쓰였다. 지도부딘을 처음 합성했을 당시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이렇듯 좌충우돌하는 분자 조각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약 개발 과정이 치밀한 계획과 우직한 끈기가 끝내 빛을 보는 환희의 순간과 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약 후보물질은 어떻게 찾는 것일까?

분자 조각가들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를 조각할까?



저자는 의약품 개발의 역사와 뒷이야기들을 재밌게 풀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본업인 의약화학자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해 분자 조각가들이 어떻게 분자를 조작하는지 알려준다. 분자는 너무나도 작아서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존재다. 조각가들은 끌과 정으로 대리석을 조각하지만, 분자는 그렇게 조각할 수 없다. 분자 조각가들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를 조각할까? 바로 화학반응이다. 화학자들은 약이 될 수 있는 분자의 구조를 예측하고, 그 구조에 이를 수 있는 반응 경로를 계획한다. 단지 원하는 물질을 얻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값싸고 안전한 약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경로를 고안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자 조각가들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영역이며, 이는 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 끝에 화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사례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저자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화학 지식을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그림과 비유를 동원해 능수능란하게 설명한다. 저자의 스토리텔링과 화학 지식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약품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신약 개발의 기본적인 전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책 후반부에서는 최근에 유행하는 신약 개발 트렌드를 다룬다. 화학자들이 생물학자, 동식물학자, 인공지능 개발자와의 협업으로 이루어낸 성과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된 과정에서 어떻게 최신 의약화학 기술이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그 기술이 미래의 신약 개발 과정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알아본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약을 먹을 때마다 한 알의 약 뒤에 숨은 분자 조각가들의 치열한 고민에 경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백승만


 

서울대학교 제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2007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댈러스에 위치한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천연물과 의약품의 효율적인 합성이며, 헌팅턴병 치료제의 합성법을 발표했고 최근에는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중이다. 의약품 개발 못지않게 약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서 관련 강의를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가 있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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