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지수가 쓰고 그린, 서른 살에 스페인 [사람]

글 입력 2023.04.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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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에서의 취향을 날카롭게 갈아 놓는 편이다. 워낙 관심 분야가 산재하여 있기도 하고, 지루한 걸 못 견뎌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는 더 그렇다. 새로운 작품, 신진 작가들은 계속 나오고 그들의 창의성은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디지털 아트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다. 사람이 직접 손으로 그리고 디지털 매체와의 연결성이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일러스트 영역을 많이 접하고 있는데, 여러 배치 요소와 소재감, 차원성을 부각하지 않고도 작품을 완성하고 울림을 주는 것이 평면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깨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른 살에 스페인


 

도서관에서 일을 했을 때다. 책을 둘러싼 일러스트 표지가 화려하면 일단 들고 보는 나는 ‘서른 살에 스페인’을 접하게 되었다. 수많은 책 속에서 발견한 원석 같은 존재였다. 한참을 손에 든 책을 살펴봤다. 작가의 이름도 ‘갯강구’로, 범상치는 않아 보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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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툰인 이 작품에서 작가는 서른 살이 되면 하와이에 가겠다고 다짐했었다. 서른 살이 되고, 퇴사한 친구 성만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하와이가 아닌 스페인으로 떠나게 된다. 스페인에서 방문한 명소들, 먹은 음식들, 성향이 다른 친구와 함께 여행하는 방법까지 작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내용보다는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오는 작가의 일러스트가 말 그대로 황홀함을 가져다 주었다. 책 한 페이지마다 그림과 활자를 배치하는 방법이 남달랐다. 비주얼과 즉흥적인 여행에서 나오는 여유로움까지, 완벽한 책이었다.

 

일하며 쉴 때마다 이 책을 읽었는데, 결국 책을 다 읽었을 때쯤 나도 ‘서른 살에 스페인’을 가보겠다는 목표를 심게 해주었다. 평생 갈 생각도 없던 곳에 가고 싶어 할 이상을 심어주다니, 그림으로 설득과 울림을 끌어내는 능력이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져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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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이미 엄청나게 유명해져 있는 분이었다. 그렇지, 이런 그림에 나만 감동하진 않았겠지! 생각하며 작업물을 쭉 내려봤다.

 

‘서른 살에 스페인’ 외, 기생충 해외 블루레이 포스터,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 기욤 뮈소 작가의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이경희 작가의 ‘모래 도시 속 인형들’ 등 다양한 도서 및 포스터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또한 최근 아디다스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 서울의 카펫 아트 일러스트를 작업하며 작업 영역을 더욱 확장하고 있었다. 현실과 SF, 지면과 도면, 글과 그림을 모두 아우르는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는 능력자다.

 

특히 기생충 해외 포스터나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등은 이미 내 눈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그림이라 놀라웠다. 이렇게 대단한 분인데도 ‘서른 살의 스페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최지수, 아니 ‘갯강구’ 작가를 궁금해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른 살의 스페인'에서는 직접적인 작가의 의도와 생각을 볼 수 있다는 점일 테다.

 

 

 

사람이 그린 예술 


 

일러스트 분야를 비롯한 예술의 영역에서 사람은 작품에 가려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작품을 누가 그렸는지,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기보다는 얼른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고, 새로운 것들을 찾고 싶어 한다. 그렇게 그림이 잊혀지면 그림을 그린 사람도 잊혀지게 된다.

 

 

작업을 많이 하긴 하는데, 해외 유명 플랫폼에 실려도 그림 자체에 주목하지 작가에게 조명이 떨어지는 일은 별로 없어요. 혹시 있더라도 내 이름과 같은 아이돌이 있으면 검색을 해도 저를 찾을 수가 없어요(아이돌 그룹 ‘ITZY’의 리아 본명이 최지수다). 〈기생충〉 포스터 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제 이름을 거론하면서 웅성웅성하는 걸 봤어요. 영화 ‘덕후’들이 제 그림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죠.

 

- 월간 참여연대, 최지수 작가 인터뷰 중

 

 

어쩌면, AI가 창작의 영역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불안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작품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그림이 우후죽순 생겨나니 그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

 

그러나 비주얼 이면에 의도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모두가 작품 그리고 그 작품을 그린 사람과 의도에게까지 귀를 기울인다면, 단적으로 내 눈 앞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큰 가치와 이스터에그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면, 창작자는 뿌듯함의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고, 우리는 더 재밌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어쩌면 보다 내밀한 취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결국 모든 작품이 어떠한 의도에서 파생된 만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요즘 내가 푹 빠진 예술은 일러스트, 그 중에서도 서른 살의 스페인, 그걸 그린 최지수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나는 여전히 곱게 깎인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작품보다는 그걸 그린 작가, 작가 속에 담긴 의도 또한 살펴보기로 한다. 여행 에세이로는 다 알아갈 수 없는 그녀의 작업 세계에 관한 스토리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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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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