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국의 정서를 몸짓으로 표현하다 - 유니버설발레단 코리안 이모션 '정(情)'

글 입력 2023.03.2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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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인 감정의 결정체 : 정

 

사랑과 미움. 양립하기엔 너무나도 스펙트럼의 끝자락에 위치한 두 단어. 그러나 재밌게도, 살다 보면 두 개의 단어가 함께 하는 순간을 종종 맞는다. 좋은데 밉고, 밉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모순적인 상황. 그럴 때면, 우리가 어떤 대상에 느끼는 모든 감정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이 있다. 인류의 진화 역사를 살펴 보면, 현재 처한 환경과 시대 안에서 알맞은 선택을 하는 존재였기에 살아 남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활 양식은 앞선 문장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것과 인간의 모순적인 행동양식 및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어떤 순간에 최적이 아닌, 모종의 이유로 약간의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을 한다. 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이해하기에는 복잡하고, 또 심오한 감정이자 양면적인 감정. 우리 문화에서는 독특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그 마음을 바로 '정'이라고 부른다.

 

 

정은 사물이나 대상에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이다. 한국에서 정은 유학의 성정론에서 다룬 정의 범위를 훨씬 초월하여 인간 본성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인간 내면의 속성이면서 인간 행위의 양태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 의식의 내용이 됨으로써 인간관계의 매듭을 엮는 기능을 다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정·물정 등의 표현에서 보듯 인간 환경 및 그 속의 사물들, 자연과 자연사물들과도 관련이 된다. 따라서 그 쓰임새도 다양하여 인간의 본성·수양·인품·관계 등에 걸쳐 쓰이는 사회윤리적인 것이면서, 자연을 대상으로 삼은 시적 체험에까지도 쓰이는 심미적인 것이기도 하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 우리 문화 곳곳에 스며든 그 마음. 초코 과자의 문구, 사람들의 말,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녹아들어 있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 어쩌면 이 단어는 친분과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인간다움을 강조하며, 한국만의 복합적인 정서를 한 음절로 풀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한국에 살면서 다양한 '정'을 만나게 된다. 알고 지낸 햇수가 쌓여 만든 정, 좋아하는 마음을 주고 받으며 눈덩이처럼 커진 정, 천륜 사이의 정, 공통분모 하나만으로 생기는 정∙∙∙. 도대체 '정'은 무엇이길래 우리에게 이토록 중요하게 자리 잡았는가? 그것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무나도 복합적인 감정이기에, 몇 가지 단어들을 조합하여 설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인의 문화 깊숙이 녹아있는 '정'은 여러 상황에서,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이 한 글자의 단어가 가진 힘은 실로 대단하다. 상반된 이미지도 '정'이라는 단어 안에서 묶어낼 수 있고, 또 용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사랑과 미움을 예로 들어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운 감정이 들 수 있다. 한없이 미워서 보기 싫을 것 같을 때에도, 우리가 금방 이별을 고하지 않는 이유는 섣부른 판단의 위험성을 알고 있어서기도 하지만 다른 말로 '정이 들어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정이 담아낼 수 있는 감정선은 넓고, 또 풍부하다. 스펙트럼에 놓인 감정들을 한 단어로 묶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떤 단어보다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여러 가지 '정'을 아름다운 선으로 표현해 내다


 

2023 정기공연 코리아이모션 포스터.jpg

 

 

<코리아 이모션>은 2021년 제11회 대한민국발레축제 초청작으로 초연한 <트리플 빌> 중 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작품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고유의 정서 '정'을 아름다운 몸의 언어 발레로 펼쳐낸다. 인간의 감정 중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정은 미움과 증오, 사랑과 애정 등 상반되는 마음이 공존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음악과 안무 모두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표현방식만큼은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았다. 예술감독 유병헌의 안무는 발레에 한국무용의 색채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코리아 이모션>은 초연 이후 작품 규모를 확장, 다채로운 움직임과 풍부한 감정선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한층 깊어진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출처 : 국립극장 공연 소개글

 

 

봄기운이 감돌던 지난 주말, 멋진 무대를 감상하기 위해 국립극장을 찾았다. 바로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선보이는 이번 공연 <코리아 이모션 "정">이다. 한국의 '정'을 주제로 동양과 서양의 것을 섞어내어 표현한 무대에 기대를 감출 수 없었다.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 무대인 만큼 국악을 베이스로 전통 악기와 서양의 악기로 연주한 선율, 한국 무용과 발레를 섞어낸 아름다운 몸짓은 주제를 뒷받침하는 장치이자 눈여겨 볼 만한 지점이었다. 한국 무용의 경우, 안으로 굽히는 동작과 다소곳한 자세가 특징인데 발레는 그와 반대로 하늘을 향해 뻗어내는 동작이 다수이기에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예술의 융합이었기 때문이다.


많고 많은 주제 중에서도 왜 '정'이어야만 했을까? 필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정'과 '발레'의 공통분모는 표현에 제약이 적고, 포용력이 좋다는 점이다. 또 한이 서려있는 것도, 다정한 것도 모두 표현 가능한 단어와 사람의 몸짓과 표정을 섞어 다채로운 감정선을 선보이는 예술은 퍽 닮아있기 때문이다. 공연 소개글에 나와있듯이, 인간 마음에 공존하는 양면성을 표현해냄으로써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자아내기에도 적합하겠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문훈숙 단장이 전반적인 공연 소개를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것으로 서막을 열었다. 극 전반에 대한 설명과 함께, 포인트가 될 것들을 짚고 넘어가 주었다. 공연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과 동시에 훨씬 더 풍부한 감상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설명이 끝난 후, 무대에 가득했던 어둠이 걷히고 이내 아름다운 무용수들을 비추는 조명이 켜졌다. 남성 무용수들이 모두 나와 원을 그리며 뛰는 안무로 극이 시작됐다. 배경 음악은 "동해 랩소디". 시원하고 깊은 동해의 바다가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한 음악과 강강술래를 연상시키는 군무에 절로 흥이 났다. 이윽고 여성 무용수들도 무대로 나와 군무를 선보였다.

 

시작부터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았겼다. 특히 '코리아 이모션'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한복의특징을 더한 발레 의상 덕분에 동작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아름다움을 고루 느낄 수 있었다. 나풀거리는 치맛단과 저고리 덕에 안무의 유려함이 훨씬 돋보였다. 색상 또한 산과 바다를 모두 갖고 있는 우리나라를 잘 표현한 수단 중 하나였기에 인상 깊었다.

 

두 번째 무대는 가슴 절절한 멜로디를 배경으로 한 여성 4인무 "달빛 유희"였다. 제목에 걸맞게 요정과도 같은 모습의 여성 무용수들이 등장하여 곧고 반짝이는 선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로 선보인 안무는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몸짓으로 표현한 "찬비가"다. 절도 있으면서도 아련한 안무에 가슴이 아려왔다. 두 무대의 '정'은 닮은 듯 달랐다. 앞선 여성 무용수들이 표현해낸 '정'은 고운 느낌이었다면, 남성 무용수들의 '정'에서는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그 다음은 형제∙자매의 '정'을 표현한 "다솜Ⅰ,Ⅱ"다. '다솜'은 순우리말로, 사랑이라는 뜻이다. 그에 걸맞은, 짝을 지어 합을 맞추어 내는 안무가 인상적이었다. 핏줄에서 느낄 수 있는 '정'을 예술의 형태로 잘 그려냈다는 생각을 하였다.

 

여섯 번째 무대는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미리내길"이다. 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그리움을 표현한 파드되로, 실제 부부와도 같은 합을 자랑하는 안무와 파트너십이 돋보였다. 특히, 애절한 목소리와 함께 남성 무용수가 뒤에서 지지를 하고 있고 여성 무용수가 한 발로 서서 나머지 발을 앞으로 뻗어 올린 채 인사하는 듯이 굽히는 동작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극풍의 노래와 한국적인 느낌이 가득한 발레 동작의 합이 좋아, 기대 이상의 감동을 느꼈다. 푸른 여성 무용수의 의상이 하늘거릴 때마다, 처연한 공기가 관객석으로 퍼져 살갗에 닿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어진 "비연""달빛 영" 또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넋을 잃고 감상하였다. 극의 마지막은 아리랑을 테마로 삼은 남녀 9쌍의 무대로, 앞선 첫 번째 무대와의 수미상관 구조를 이루며 대미를 장식하였다. 공연 소개 시간에 인상적이었던 설명을 곁들여 본다.

 

 

아리랑은 나 '아', 이치 '리', 즐거울 '락'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풀어내 보았습니다.

설명하자면,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즐거운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 문훈숙 단장 공연 소개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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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공연을 실제로 감상하는 것은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알맞은 관람시간과 색다른 구성 덕분이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적절히 섞어 새로운 감동과 미적 체험을 느낄 수 있어서 신선했다. 흥겹고, 행복했고, 어떤 면에서는 절절했던 유니버설발레단의 <코리안 이모션 "정">. 공연의 긴 여운과 함께 이번 봄을 나지 않을까 싶다.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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