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양잇과 인간 이서진이 지배하는 작은 세계, ‘서진이네’ [예능]

글 입력 2023.03.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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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인상으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날카로워 보인다, 냉정해 보인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은, 아는 동생의 “첫인상이 까다로워 보였다.”이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솔직히 고양이상, 인정하시죠?”

 

그 외 ‘자기주장이 강할 줄 알았다’, ‘고집이 셀 것 같다’ 등 마냥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는 않는 말들을 첫인상으로 많이 들어보았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처음 남들의 눈에 나는 그렇게 비치곤 한다.

 

우리는 처음 누군가를 만날 때 생김새와 인상으로 누군가를 판단한다.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서로의 첫인상과 달라질 수도, 혹은 첫인상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



[꾸미기][크기변환]서진이네 3[포맷변환].jpg

 

 

 

고양잇과 인간, 이서진 


 

우리는 사람을 카테고리화하는 걸 좋아한다. 사람의 인상을 분류하는 말도 참 다양하게 있다. 고양이상, 강아지상, 토끼상, 사막 여우상, 심지어 나무늘보 상도 있다.

 

사람을 유형화하고, 객관화하길 바란다. 얼굴을 분류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구분한다. 별자리, 혈액형, MBTI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지속해 유행한다. 4개, 8개, 16개로 구분되는 인간 군상.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이고, 감성적이거나 이성적이며, 직관적이나 현실적이고, 계획적이거나 즉흥적인 그런 사람들.

 

처음 ‘이서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건 예능 ‘삼시세끼 시즌 4’에서였다. 많은 게스트가 ‘삼시세끼’의 다양한 회차를 거쳐 갔고 마지막 게스트로 나온 사람이 이서진이었다. 사람을 카테고리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지극히도 평범한 인간인 나는 예능을 보면서 그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분류했다.

 

‘고양잇과 인간’

 

총총대며 바스랑 바스랑 움직이고, 활달해야 사랑받는 ‘갯과 인간’이 판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고양잇과 인간’이라고.

 

게스트들은 모두 웃으면서 일했다. 싫은 소리 하나 없이 그저 일하고 뭐든지 다 좋다고, 뭐든지 다 잘 먹는다고 말했다. 일이 없어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도움을 주려고 했으며, 분명히 힘들 텐데, 힘들 때도 됐는데, 엉덩이 한 번을 제대로 붙이지 않았다.

 

이서진은 달랐다. 앞서 나온 게스트들과는 다르게 일이 없을 땐 정말 가만히 앉아 있고, 여유 부리고,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았으며, 하기 싫은 일에는 서슴없이 직언을 던지며 “내가 이걸 왜 해~? 이걸 왜 해야 해?” 말하며 투덜대기도 했다. 그 어떤 게스트와 비교해도 차이가 있는, 새로운 사람이었다.

 

 

"세상 처음 본 인간이네...

근데 밉지는 않아."

 

삼시세끼 어촌편 5화 중, 유해진


 

그런데, 어떤 게스트보다 직설적이고 쌀쌀맞은데도, 유해진과 차승원은 이서진이 왔을 때 가장 편안해 보였다. 그들은 가장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이서진을 놀리기도, 그에게 되레 짜증을 내기도 하며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궁합은 방송이라는 수단을 넘어, 옆집 아저씨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제일 많이 웃었고, 제일 인상 깊게 보았으며, 내 친한 친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중에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런 이서진을 보며 고양이를 떠올렸다. 마치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새침한 고양이처럼, 낯가리고 조용하지만 친해진 사람 한정으로는 ‘츤데레’다운 매력을 보이는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사랑받는 세상, 내가 나로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서진이네의 매력은, 이서진에게서 나온다 


 

[꾸미기][크기변환]서진이네 1[포맷변환].jpg

 

 

그리고 몇 주 전, ‘서진이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대놓고 이서진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이다. 이서진의 이름을 걸고 멕시코의 작은 도시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서진이네’라는 이 작은 세계에서는 식당이라는 공간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부여했다. 사장, 부장, 인턴 등의 직급이 있고 직급에 따라 하는 일도 다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역할에 따른 특성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 이미 제작진에 의해 개인의 특성에 맞는 역할이 부여되었다는 점이다.

 

이서진은 이 공간 안에서, 사장이다. 하나의 가게를 책임진다.

 

보통 요식/외식업의 사장을 생각할 때 쉽게 말해 ‘서비스 능력’이 탁월한 사람을 떠올린다. 명랑하게 사람을 대해야 손님을 많이 유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당연히 그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음식이 맛있고 사장님이 친절해요.’라는 흔히 쓰이는 표현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 식당에서 가장 완벽한 경험을 하려면 사장님의 친절도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는 말하자면 그다지 싹싹한 성격은 아니다. 전면에 나서서 영업하지도 않고, 손님에게 메뉴 추천을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으며, 먼저 음식의 맛이 어땠는지 묻지 않는다. 식당 사장님께 기대하는 전형적인 친절도와는 사뭇 다르다.


또한 그는 영업과 이익에 밝다. 매출에 따라서 울고 웃는다. 매출이 높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매출이 낮아지면 기분이 다운되어 짜증을 부리고 직원들을 재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손님이 신중하게 메뉴를 고민하는 시간을 존중한다. 손님이 음식에 대해 질문하면 최선을 다해 설명한다. 혹여나 손님들이 찾아올까 오픈 시간을 최대한 앞당기려 노력하고, 배가 고파도 손님 앞에서는 절대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매너를 보인다. 사람들이 언제 많이 오는지, 적게 오는지를 파악하여 오픈 및 마감 시간을 예측한다. 직원들이 쉬고 싶어 하는 타이밍이 언제일지를 고려해 직원 복지로 휴식 시간을 만든다.


직원들은 어떨까? 인턴은 손님들과 식당 주변 상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고,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손님들을 위한 콤보 메뉴를 제안한다.


하지만 때로는 손님께 팔아야 하는 주스를 자신이 마실 때도 있으며 사장님께 이렇게 일하면 월급이 얼마냐며 질문하기도 하고, 다소 계급적, 수직적인 측면이 보일 때 노조를 결성하겠다는 우스갯소리를 농담 반에 진담 반을 섞어서 하기도 한다. 힘들면 힘든 티를 내며, 쉬는 시간을 늘려 달라 당당히 요청하기도 한다.

 

비록 계속 밝고, 힘들어도 웃는 식당은 아닐지 몰라도 이렇게 좌충우돌 식당을 경영해 나가면서 생기는, 가장 까칠한 사장과 가장 격의 없는 인턴들의 케미가 폭발하여 서진이네를 더 활기차고 재밌게 만든다. 어쩌면 가장 나 같고, 우리 같고, 그래서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 이서진이 시청자들인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런 것일 거다.

 

만약 이서진이 지금껏 프로그램에서 마음껏 까칠한 ‘고양잇과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서진이네’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며, 이런 면모 때문에 3화 동안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꾸미기][크기변환]서진이네 2[포맷변환].jpg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고양잇과 인간들에게


 

첫인상에서 인상으로, 그것이 사람의 이미지로 굳어지어 가는 과정은 좋든 싫든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그러나 어떤 인상도, 어떤 성격에도 절대적인 나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까칠함’ ‘명랑함’ ‘밝음’ ‘낯가림’ 등은 그저 형용사이자 묘사하는 표현일 뿐, 그 표현에 우리가 부여하는 이미지는 지구 인구수인 80억 명대로 다 다르다.


‘상’은 ‘눈에 보이거나 마음에 그려지는 사물의 형체’라는 뜻이다. 어쩌면 무슨 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건,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은, 누군가를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우리의 눈과 마음속에 맺히는 모습이 있다.

 

나는 냉정하다는 첫인상이 싫었다. 친해지고 싶은데 낯을 가리는 모습이 나는 꼭 내 안에만 고여 있는 느낌이라, 내면의 에너지를 발산하듯 외향적인 타인을 종종 동경하기도 했다. 그래서 외면이든 내면이든, 꽤 많이 나를 바꾸려 했고 바꿔 나가기도 했다.

 

종종 ‘이렇게 하면 사랑받지 못할 거야’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비슷한 늪지대로는, ‘약간 아부해야 사회생활 잘하는 것일 거야.’ ‘애교를 좀 부릴 줄 알아야 좋은 연인일 거야’. ‘힘든 얘기를 잘 들어드려야 좋은 자식일 거야.’가 있었다. 이런 가정 속에서 자신을 꾸몄고, 변모된 성격은 어쩌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다. 우리 모두의 본모습이 있다는 것을 굳이 남이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가장 먼저 알아채곤 한다.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은 나를 지치게 하고, 같은 상황 속 남을 어색하게 만든다. ‘이건 내가 아니다.’라는 느낌이 든다면, 굳이 나를 버리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고양잇과 인간’에게 이 글을 드린다. 고양잇과 인간들이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쓰인, 어쩌다 보니 길어진 글을 드린다. 더 낯가리고, 더 과묵하고, 더 벽쳐도, 더 까칠해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걸, 나는 이서진이라는 사람에게 배웠듯. 주위의 환경이나 상황의 변화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꼭 활달하지 않아도 개인의 장단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은 당신만의 세계에서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최고의 ‘고양잇과 인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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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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