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따뜻한 간첩이 있는가 [만화]

인간과 사람 그 언저리,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
글 입력 2023.02.1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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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

 

 

어릴 적,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뿌리던 삐라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나는 삐라를 본 적도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북한이 괜히 더 가깝게 느껴졌다. 북한이 삐라를 뿌린다는 것은 북한 사람이 근접한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남한과 북한이 철저히 분리된 현재는 곁에 북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어릴 적의 나는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했었다. 내 주변에 북한 간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북한 간첩과 관련된 뉴스를 접하는 이들은 동네에 간첩이 있을 수 있다는 비슷한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을 펼친 웹툰이 있다. 바로 작가 HUN이 다음에서 연재했던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다. 이 웹툰은 북한 최고특수 부대인 5446부대에 오성조 3대 조장 원류환이 첩보임무를 위해 남한 시골 동네에서 자신을 숨기고 바보 방동구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북한을 다룬 이 웹툰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북한 소재의 드라마나 영화는 많았지만 웹툰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클릭을 더욱 유도할 수 있었다.


줄거리만 본다면 코믹적 요소가 듬뿍 담긴 북한 간첩의 평화로운 일상을 다룬 웹툰이라 오인할 수 있지만, 이 웹툰은 들개처럼 살아간 한 남자의 치유 방식을 다룬 웹툰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휴머니즘 장르처럼 여유롭거나 독자가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주는 웹툰은 아니다. 변환도 빠르고 스토리도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웹툰을 치유 방식을 다뤘다고 설명하는 것은 주인공 원류환이 가진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나는 들개로 태어나 괴물로 길러졌다


 

북한 간첩. 말만 들어도 얼마나 험악한 삶을 살아갈지 저절로 상상이 간다. 원류환은 북한의 엘리트 간첩이다. 전투 능력은 물론 의학, 공학, 화학 전문 과정을 이수했으며 외국어 능력까지 특출 나다. 한 가지 목적만 바라보고 사는 들개처럼 길러졌다. 남한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도심 중심지에서 아무도 모르게 활동을 할 것만 같지만, 바보 행세를 하며 남한의 생활을 보고 하란다. 북한에서는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바보처럼 보이라니. 아이러니한 소리였다. 방동구라는 가명으로 달동네에서 살고 있는 원류환은 바보 행세를 한다. 누군가를 암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질 것 같지만, 북한에서 내려온 행동 강령은 남다르다.

 

 

 월 1회 이상, 2회 이하. 1인 이상이 목격하는 상황에서 노상에 소변을 볼 것!

 6개월에 1회. 2인 이상이 목격하는 상황에 노상에 대변을 볼 것!

 

 

북한에서 이러한 행동 강령을 내렸으리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히 모습을 숨긴 덕분에 동네 사람들은 ‘바보 방동구’를 만만하게 본다. 동네 꼬마 형제들은 동구를 항상 괴롭히고 놀리기 일쑤며, 집주인 아들은 부려먹으며 대장 행세를 한다.

 

누나와 단둘이 사는 유준도 걸핏하면 이유를 잡아내서 동구의 뒤통수를 때린다. 동구의 정체가 북한 간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할 사람들이 동구를 동네 바보라는 이유로 괴롭히고 있었다.

 

 

 

인간과 사람, 그 어감의 차이


 

남파 간첩이라는 자리에 오기까지 냉혈한 삶을 살아갔을 사람들은 타인을 생각하기보다 본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류환은 마음이 따뜻한 인물이라는 것을 웹툰을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북한에 있던 시절, 같은 오성조에 있던 어린 리해진이 밥을 먹지 못 하자 다른 사람 몰래 닭고기를 던져 준다. 2군이 되면 밥을 굶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위로까지 한다. ‘나’만을 알아야 하는 세계에서 다른 이를 챙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원류환의 면모는 그가 가진 마음씨에 비하여 독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안타깝도록 만든다.


원류환은 ‘인간’이 아닌 ‘사람’이고 싶었던 사람 같다. 한자어인 인간(人間)은 ‘사람’과 다르게 발음이 딱딱하게 느껴진다. 이 때문인지 냉혈한 사람에게는 사람보다 인간이라는 말이 더욱 잘 어울린다. 자신의 방 장판 밑, 달동네를 살아가며 찍었던 사진을 보관하고 동네 사람들 한명한명에게 편지를 썼던 원류환은 기억에 남는 인간이 아니라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가져가지 못하는 그리움을 장판 밑에 다 담아둔 것이다.


임무 때문에 온 남한이었지만, 떠나는 순간까지 그냥 가는 법이 없다. 자신에게 정을 베풀었던 집주인 할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수술을 하라며 돈을 주고, 어렸을 적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외국에 입양 보내야만 했다던 허이란의 아픈 사연을 듣고 아이가 있는 주소를 찾아서 알려 준다. 원류환은 달동네에서 살면서 방동구로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방동구로 스며든 것이었다. 어찌 보면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잔잔한 달동네에서 방동구로서 살아가는 것이 원류환의 성격과 가장 잘 맞는다.


원류환이 동네를 떠나기 전 베풀었던 행동은 동네에 대한 애정이며 나쁜 ‘인간’이 아닌 좋은 ‘사람’으로 기억이 되고 싶은 바람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원류환이 들개처럼 살았던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 하나로 지옥과 같은 바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를 썼다. 선량한 마음과 사랑이 담긴 마음을 지닌 채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진 시련은 보는 이들을 마음 아프게 한다. 치열하게 살아온 원류환의 삶 속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달동네에서 살던 그 시간이었을 것이다. 군에 있다는 이유로 인간으로 살며 마음 편할 날이 없던 그 삶과 운명이 안타깝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평범하다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없다. 평범한 것보다 특출난 삶이 더 빛이 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 행복도 나름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보여주고 마지막의 아쉬운 헤어짐이 있어도 사람 향기를 남기며 아름다운 이별을 할 줄 아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상황을 헤치며 살아왔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었다. 웹툰의 마지막, 동구가 북한 간첩이라는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믿지 못 한다. 집주인 할머니는 동구가 조금 모자라도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간첩일리 없다며 눈물을 짓는다. 집주인 할머니의 아들도 한 마디 거든다. 동구는 동구일 뿐이라고.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아름다운 사람이 스쳐지나간 자리는 향기마저도 아름답다. 아직도 동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북한 간첩 인간 원류환이 아닌 평범한 사람, 바보 방동구로 기억이 되고 있을 것이다. 주변인을 대하는 평범한 마음가짐 하나라면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쉬울 것이다.

 

 

 

견유빈.jpg

 

 

[견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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