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판소리 쑛스토리 : 모파상篇 [공연]

글 입력 2023.01.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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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쑛스토리 – 모파상篇>은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중 첫 번째 작업이다. 프랑스 대표 작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1880년대 단편소설 <보석>, <콧수염>, <비곗덩어리>를 각기 다른 컨셉의 1인극으로 만들어 판소리와 단편소설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배우 박인혜와 악사 김성근, 심미령, 오초롱, 정상화로 이루어진 이번 공연은 무대를 꽉 채운 에너지와 관객들의 생생한 리액션으로 90분의 러닝타임을 다채롭게 녹여냈다. 판소리를 직접 본 경험이 없었던지라, 초반에는 공연을 따라 관객들의 리액션이 바로바로 이루어지는 이 활기가 낯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와 악사의 장난스러운 몸짓과 웃음, 간간이 들리는 관객분의 소리와 박수들을 통해 (+진지하고 엄숙한 장면에서의 엄청난 고요함) 그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소통하고 있음이 느껴져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에 함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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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보석>은 랑탱이라는 평범한 남자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아내가 갑작스레 죽은 뒤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 랑탱. 가지고 있던 돈도 떨어지고 배가 고파오자 아내의 가짜 보석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가 가짜 보석들을 수집하는 걸 항상 못마땅했던 그는 이참에 그것들을 다 팔아버리기로 결심한다.

 

가짜 보석을 들고 보석상에 가게 된 랑탱은 그것들이 엄청난 귀중품임을 알게 되고 그녀가 이 보석들을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음을 짐작하게 된다. 충격도 잠시, 보석을 팔 때마다 들리는 챱챱챱 돈 소리에 활기를 되찾은 랑탱은 배고픔도 잊고 가지고 있던 보석들을 모조리 다 팔아 부유한 생을 보내게 된다.

 

개인적으로 챱챱챱 장면은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어쩜 그렇게 찰지게 표현을 하는지... 배우의 쫀득한 연기와 더불어 악사분들의 리듬감 넘치는 연주는 극의 재미를 한층 더 살려줘 극장에 있던 모든 관객들이 웃었다.

 

세세하게 쓰인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속 장면들이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상상되는 순간이 있다. 지금 이 순간 그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이야기 <콧수염>이 바로 그런 순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콧수염>은 잔이 친구 뤼시에게 편지를 통해 근황을 알려주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은 테이블 앞에 앉아 관객들(우리가 곧 뤼시였다)에게 말을 건넨다. 배우가 건네는 이야기를 통해 전쟁 소리를 듣고 전나무 냄새를 맡고 구덩이 파묻힌 군인들의 얼굴을 본다.

 

전투 당일까지 면도를 해 프랑스식 콧수염을 가진 프랑스 군인들, 그리고 그들을 알아본 잔의 이야기는 콧수염 만세라며 장난스럽게 편지를 끝맺음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엄숙하게 만들었다.


세 번째 이야기 <비곗덩어리>는 연극으로 본 적이 있는 작품이라 1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을 1인극으로 어떻게 각색했을지, 판소리로는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던 작품이었다.

 

프랑스 루앙이 프로이센군에게 점령된 후 10명의 프랑스인은 한 마차에 오르게 된다. 그중 유독 눈이 가는 일명 비곗덩어리라 불리는 매춘부에게 그어지는 선을 통해 인간의 다면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단편이라 하더라도 절대 짧은 작품, 대사, 동선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각색하고 연기한 박인혜 배우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사람들이 비곗덩어리를 몰아붙여 끝끝내 장교의 침실로 보내는 하이라이트 장면은 배우의 연기에 맞춰 고조되는 악기 연주와 공연에서 쭉 추구해오던 주황톤의 조명을 서늘하게 바꿔내 관객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시작과 마찬가지로 다시 마차에 오른 그들이 철저하게 비곗덩어리를 무시하는 걸 보며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판소리를 도구로 창작을 이어가며, 늘 많은 사람에게 판소리가 얼마나 넓은 품을 가졌는지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판소리는 그것이 전통이건 전승이건 어떤 이야기건 세상의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힘을 지녔다”

 

- 창작자의 글. 박인혜

 

 

위 글을 읽고 이마를 탁 쳤다. 넓은 품을 가졌다고 해서 다 같은 품이 아니다. 넓은 품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품을 수 있는지, 바로 그 힘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성공했다. 적어도 그녀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판소리가 가진 넓은 품과 힘을 나 같은 판소리 문외한이 이번 공연을 보고 강렬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바라건대, 판소리를 도구로 이어지는 창작의 물결이 지속적으로 흘러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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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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