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좋아하는 마음으로 무엇까지 해봤니 - 제1회 인사이트 데이

‘엠디랩프레스’ 강연 리뷰
글 입력 2022.12.1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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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었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지 삶에 대한 방향 감각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마침 그런 자극이 필요한 시점에 아트인사이트의 첫 오프라인 강연인 '인사이트 데이'에 참석했다. '애정 담긴 조각배를 하나의 함선으로'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첫 인사이트 데이는 엠디랩프레스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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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전 아트인사이트에서 진행한 엠디랩프레스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어떤 마음과 철학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는지 대략적인 내용을 숙지했다. 이어지는 후기글에는 인터뷰 내용을 제외하고 새로 발견한 이야기를와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지점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디깅, 아카이빙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묵직함과 느림의 미학을 좋아하는데, 엠디랩프레스가 어떤 마음으로 이 단어를 다루고, 또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했다.


강연 내용은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아카이빙이 기록물이 되기까지’를 다뤘다. 엠디랩프레스의 작가 덕질 아카이빙' 잡지인 『글리프』를 중심으로 아카이빙과 작업과정, 사이드 프로젝트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모더레이터의 진행과 질문에 따라 자유롭게 또는 깊이 있게 이야기가 흐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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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리프』 시리즈 (@m.d.lab.press)

 

 

엠디랩프레스의 시작은 한국 문학계의 관습에 대한 문제 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 한국 문학계 작가라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작가 등단 과정이나, 납작하게 다뤄지는 비평 방식과 같은 일반적인 형식이나 규율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되려 모르는 사람(독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스스로 추적해 보고, 기존의 전통적인 유통 시스템을 탈피하고자 했다.


이러한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엠디랩프레스는 작가에 대한 편견을 모두 걷어내고 정확하게 읽어나가기 위해 한국 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비평 방식을 제안했는데, 바로 ‘덕질’이다.

 

'덕후'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무엇까지 발견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면, 작품을 애정하는 독자는 분명 일반 독자와는 다른 지점을 발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리고 그 지점을 짚어보고 분석하는 과정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가 가진 시선을 좋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글리프』는 작가의 시선이 닿았을 모든 것들을 모아 엮습니다. 그것이 작가를 정확히 읽어주는 행위 근처에나마 가닿길 바랍니다."

 

(@m.d.lab.press)

 


일반 문학 작품에서는 글 안의 주제나 문체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상대적으로 많은 요소들이 배제된 납작한 독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엠디랩프레스는 아카이빙하는 과정을 통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화하고 도식화한다. 모두 독자의 풍성한 독서 경험을 위한 일이다.


"독자 경험이 글의 본질이다. 독자의 경험을 생각할 때 필요한 콘텐츠들을 만든다"

 

『글리프』는 처음 작가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을 기준으로 최대한 쉽게 내용을 풀어냈다. 동시에 덕후들의 마음을 겨냥할 만한 세세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독자 경험'을 중요시하는 만큼, 독자층별로 적절한 정보 제공 정도를 맞추기 위한 창작자의 세심한 배려와 센스 존중도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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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리프』 1호 정세랑 작가편(@m.d.lab.press)

 

  

엠디랩프레스는 독자 경험에 필요한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냈다.

 

첫째, '도비라(속표지)'가 있다. ‘도비라’는 '문', '문짝' 이라는 뜻의 일본어 출판용어로, 속표지 혹은 디바이더라고도 불린다. 섹션을 구분하거나 다른 챕터로 전환하는 기능을 한다.


『글리프』에서 도비라는 작가나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납작한 텍스트가 아닌 다양한 언어와 디자인으로 표현해내는 새로운 방식이다. 작가의 작품이 가진 성향이나 성격에 따라 도비라에 표현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요컨대 정유정 작가편에서는 시간이 뒤섞인 일련의 사건들이 한번에 정리되는 작품의 특성에 맞게, 시간의 흐름대로 한눈에 보기 쉽게 도식화한 그림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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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프』 5호 정유정 작가편 일부(@m.d.lab.press)

 

 

정세랑 작가편에서는 (절판돼서 구하기 어려운) 초기 작품의 개정 전과 개정 후 특정 구절을 비교했고, 구병모 작가편에서는 작가가 작품 속에서 사용한 어려운 단어들을 모아 사전처럼 정리했다.

 

둘째, ‘p.s.’가 있다. p.s는 혹시나 글리프를 볼지도 모를 작가님에게 보내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담긴다. 정세랑 작가편에서는 작가 트위터봇의 인터뷰를 담아냈고, 구병모 작가편에서는 ‘구병모’하면 책 ‘위저드베이커리’가 떠오르는 독자들의 독특한 지점을 발견해 설문을 담았다.


독자의 목소리를 전달할 때도 역시 작가별 성향과 특징을 반영했다. 이 또한 덕후들의 마음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엠디랩프레스’답다고 생각했다.


셋째, '아카이빙 연표'가 있다. 연표는 엠디랩프레스가 말하는 ‘아카이빙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으로, 작가의 작품 활동, 칼럼, 인터뷰, 팟캐스트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가장 오래 공을 들이고 출간 직전까지도 신경 쓰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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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이빙 연표 (@m.d.lab.press)

 

 

특히 여기에는 "며칠 뒤 어디로 출국할 예정이다…"라며 작가들이 남긴 말들(tmi)까지 담긴다고 하니, 역시 덕후의 마음으로 하는 아카이빙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다.

 

엠디랩프레스의 ‘연표 아카이빙’은 시리즈 내내 표 형식을 유지 중이며 웹페이지 확장까지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이제껏 문학작품을 전문적으로 아카이빙을 하는 시도가 어디에도 없었기에, 실제로 구현된다면 분명히 한국 문학계에서 한 획을 그을 만한 새롭고 재미있는 시도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엠디랩프레스가 하는 아카이빙은 단순한 수집과 정리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읽히고 기능하는지 당시 사회적 배경을 추적하고, 이를 한 눈에 보기 쉽게 가시적으로 표현한다. 즉, 작가의 전략이나 의도와 같은 작품의 내재적인 의미를 바깥으로 보여주는 것에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

 

 

"누군가가 들고 있는 책은 그 사람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걸 생각하며 (책을) 만든다."

 

 

'책'이라는 물성을 만들 때는 종합적인 감각을 요구하는데, 앞 문장을 언급할 정도로 엠디랩프레스가 독자의 경험을 중요시하면서 하나의 기록물을 신경써서 만드는지 창작자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엠디랩프레스 구성원이 모두 본업을 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아카이빙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원동력 또한 '작가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과 '독자의 피드백'이라고 언급했다. 작업을 하다보면 오히려 작가에 대한 덕력이 훨씬 더 충만해져서 아무리 힘든 작업도 끝까지 마무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연쇄적인 반응들이 경이롭고도 신기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연쇄적으로 또 다른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또 저마다 다른 애정의 감도가 모였을 때 더욱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한다.

 

필자 또한 이번 강연을 계기로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으로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이 생겼고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해 볼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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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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