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뜻밖의 여행. 연극 ‘벗’ [공연]

글 입력 2022.12.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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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현실을 담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주 오래돼서 영화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픈 역사를 담은 영화를 보고 난 후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그리고 22년의 끝자락에서 북한의 모습을 담은 연극을 보게 됐다. 80년대 북한의 일상을 담은 연극이었다. 줄거리를 처음 읽었을 때, 좀 놀랐다. 아주 오래전 봤던 영화와 완전히 반대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소재나 주제가 신선하거나 특별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북한에 대한 선입견을 뒤로하고, 쉽게 접근하는 길을 열어줬다.


그 영화와 최근에 본 연극 모두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담았다. 이 현실 속에서 영화는 암울한 이야기를 그렸다면, 연극은 그 속에서도 나름의 자유나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비록 관람 시기의 간극이 매우 크지만, 서로 다른 성격의 작품을 경험함으로써 시야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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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극단 '고래'

 

 

백남룡 작가의 ‘벗’은 프랑스와 미국에서 유명했던 북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각색하여 세계 최초 연극화한 작품이 연극 ‘벗’이다. 소설을 각색하고, 연극화한 연출자 이해성은 원작에서의 문체, 감정, 정서를 그대로 연극으로 가져왔다고 했다. 이데올로기적 접근보다는 북한 특유의 감성이나 취향에 중점을 두어 관객들이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연극은 채순희라는 여성이 정진우 판사에게 이혼을 요청하는 장면으로 문을 열었다. 순희는 남편 리석춘과의 생활리듬이 전혀 맞지 않고, 발전 하지 않아 답답하다며 이혼을 요청했다. 순희의 이야기를 들은 진우는 이혼 사유로 불충분하다며 순희를 돌려보냈다. 반면 석춘은 진우에게 순희가 가수를 하게 되면서 선반공인 자신을 무시하고,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진우는 더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집으로 갔다. 그러다 밖에서 혼자 비를 맞으며 떨고 있는 그들의 딸인 어린 리호남을 발견한다. 호남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기 집으로 데려가 재웠다. 호남을 데리러 진우의 집에 방문한 순희와 석춘은 마주치고, 진우는 그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지만 두 사람은 냉랭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순희와 석춘을 보며 진우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아보게 되고, 아내인 은옥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순희와 석춘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사정도 듣고, 호남과도 가까워진다. 그러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이혼의 본질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파악하게 된다. 또 두 사람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진우는 순희와 석춘을 통해 자신 또한 연애 시절과 신혼 시절의 마음을 잊고 변했다는 것을 깨닫고, 은옥에게 가졌던 불만을 버리고 그녀를 이해한다. 한편 순희와 석춘은 진우의 예리한 분석과 진심 어린 충고와 조언에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이혼하지 않기로 한다. 그 후,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반전 있는 마지막 씬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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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극단 '고래'

 

 

앞에서 언급한 대로 줄거리만 보면, 신선함이나 특별함이 눈에 띄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발견할 수 있었다.


 

 

1. 연출


 

이 연극에는 실제 북 이탈주민 김봄희 배우가 해설자로 참여했으며, 마지막 씬에서는 배우로 출연했다. 또 다른 북 이탈주민 손아진 배우는 리호남 역을 맡았다.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인만큼 이 부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연출자와의 인터뷰에서 김봄희 배우의 이야기와 극에 대한 의견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연극의 내용이 더욱 와닿았다.


신선했던 점은 무대연출이었다. 리호남 역을 맡은 손아진 배우는 인형을 통해 호남이를 표현했다. 하나의 연극을 보러 왔지만, 덤으로 인형극까지 두 개의 연극을 본 것 같았다. 덤이라고 칭한 만큼 산만함이나 이질감이 없었다.


그리고 맨 앞줄 좌석과 스크린을 동시에 활용하여 생동감을 높였다. 무대를 단상만이 아니라 객석까지 확장했다. 그래서 왠지 나도 등장인물 중 한 인물이 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생소한 악기를 이용한 라이브 연주가 함께했다. 반도네온을 실제로 보고, 소리를 직접 들은 건 처음이었다. 보기엔 아코디언처럼 비슷하게 생겼는데, 소리는 달라 신기해서 나중에 반도네온에 대해 찾아보기까지 했다. ‘벗’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그 악기는 연주하기 까다로운 ‘악마의 악기’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반도네온을 훌륭하게, 극과 조화로운 연주를 보여준 이어진 연주자의 내공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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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토리


 

북한소설을 각색하여 연극화한 만큼 문화나 성향, 말투, 단어 선택, 생활 패턴 등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북한에도 이혼제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난 북한은 남한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자유롭지 못한 곳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 연극의 줄거리를 읽었을 때부터 이혼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었다. 이혼제도 외에 연애결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여전히 숙제 거리인 자유로움이 부족한 현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각자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함께 보여준 점이 인상 깊었다.


이혼이라는 점은 일상이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연애하고 결혼하고 갈등도 겪고, 상대의 소중함을 망각했다가 잘못을 깨닫고 화해하고 서로 맞춰가며 사는 이야기는 내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일상이다. 북한 사람들의 삶 또한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점도 있었다. 북한의 이혼 과정은 남한과 달랐다. 판사가 직접 의뢰인 부부의 집에 찾아가고, 이웃이나 직장 동료, 친척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이혼 사유를 파악했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09년도까지 이웃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정을 주고받는 남한의 옛 문화가 유지되고 있었다고 했다. 현재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 했다.


남한과 북한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찾아보며 보는 재미는 이 연극만이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는 특별한 재미 요소였다.


가장 특별하고 신선했던 부분은 마지막 씬이었다. (반전이 있어서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자세히 적지 않겠다) 모든 경계를 허물고 싶었다는 연출자의 마음이 잘 드러난 씬이었다. 무대를 극장 전체로 확장한 것도 그 마음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여운이 짙게 남았다.


다만 염려스러운 부분은 배우의 코멘트를 듣기 전에는 그 씬의 마지막 대사를 들었을 때 오해하거나 혼란을 겪는 관객들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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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면서 제목이 왜 벗인지 계속 궁금했다. 이혼 이야기와 벗이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극 후반부에서는 궁금증이 해소됐다. 순희와 석춘의 진심을 알아주고, 두 사람의 관계를 개인의 주관적인 시선이 아닌 객관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진우와 자신만의 기준과 그릇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봤던 채림은 진짜 벗과 가짜 벗의 의미를 잘 보여준 인물들이었다. 


또 ‘벗’은 친구, 동료사이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부부 사이에도 가능하다는 걸 극을 통해 보여줬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부부의 삶은 진정한 벗으로서의 삶이었다.


한편으로 현시대 우리의 모습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었다. 자본주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요즘 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유를 얻은 대신, 정은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이웃끼리 친하고 그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원하지 않으며, 자유를 원한다. 그런데 마지막 씬에서의 대사를 듣고, 지금 내가 정말 자유로운 것인지, 자유를 얻어 행복한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자본주의의 성향이 짙어질수록, 점점 돈에 휘둘려 사는 우리의 모습, 개인주의 성향으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주기도 하는 문제점이 보였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처럼 간섭이나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타인에게 관심도 가져보기도 하고, 물질적인 것 또는 결과보다 진심과 내면에 중점을 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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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 꿈에서만 존재할 것 같았던 지역이나 나라가 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곳과 내가 더 가까워지곤 했다.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 뇌가 자극되는 기분이 짜릿했다.


연극 ‘벗’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번 문화 경험은 뜻밖의 여행이었다.


12월 11일 일요일까지 공연하니 뜻밖의 여행을 하고 싶다면, 관람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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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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