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월출녘 잠들지 못한 이들을 위한. 시집 '흉터 쿠키'

글 입력 2022.11.1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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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그리고 어둡다.

 

시집의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첫 장을 펼치며 들었던 생각이다. 솔직하게 고하자면, 처음 읽을 때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따라잡기 버거웠다. 그래서 다시 한번 책을 펼쳤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어렴풋이 작가의 의도를 감히 유추해 봤고, 세 번째 읽을 때는 부족하게나마 스스로 주관에 따라 시를 받아들였다.

 

긴 호흡으로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듯 서술하는 글들에 익숙해져서일까. 짧은 문장에 함축된 의미를 찾고 고민하는 게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한 손에는 손잡이를 잡고 한 손에는 책을 펼치고 읽다가 평소 내가 읽던 글과 다름을 새삼 실감했다.

 

내용을 곱씹고 내 상상과 해석을 곁들여 작가의 글을 소화해 내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을 아침의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깨달았다. 그렇게 2번째 회독은 혼자 있는 방에서 가사 없는 잔잔한 노래를 배경으로 단어 하나씩 곱씹으며 시를 다시 읽었다.

 

그렇게 읽던 중 유난히 눈에 밟히는 시와 문장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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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는 어둠이 다 빠져나갈 만큼 긴 날숨을. 이른 아침에는 온몸이 파도로 가득 찰 만큼 느린 들숨을. 잠은 밤새도록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어서 몸 안에 쌓인 공기 방울이 부글부글 차오르지. 생각에도 거품이 있다면 서둘러 시든 꽃을 떠나 보내고 아침의 무딘 몸 안으로 호흡과 음악을 초대해야지." - 스파클 다이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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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녘에 잠들지 못한 사람들은 달에게서 꿈을 대출하지 잠을 갚지 못한 밤의 창구에서 바다는 분주히 오가고 달 빚이 쌓인 사람들은 눈꺼풀이 점차 투명해지네” - 달사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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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라짐이 멀지 않아서 어떤 애도는 끝나지 않는 산책 같았지. 비석들은 누군가 턱을 괴고 기다리는 창문 같고 외로움이 고여 쌓인 종유석 같다. 푸른 용광로에서 녹아가는 사람들. 무덤이 죽음을 굳히는 중인 거푸집이라면 너의 손을 잡고 먼저 떠난 이들의 창가로 가야지. 놓쳐가며 이루어내는 걸음으로. 닿지 않는 곳을 떠올리면 조금 더 살아 있는 듯했으니까.” - 비문 사이로 中

 

문장을 보고 있자면 상황을 바라보고 적어내는 작가의 표현법이 눈에 띈다.

 

상처를 입고 무기력해진 이가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 밤새 뒤척이며 쉬이 잠들지 못하는 이의 모습, 죽음으로써 누군가와 이별을 하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의 모습 등 각각의 상처로 지쳐 가라앉은 마음을 담담하게 그러나 아름답게 비유한다.

 

상처받았다고 마냥 어둡지도, 그렇다고 마냥 아름답지도 않다. 그저 담담한 어투로 심정을 대변할 뿐이다.

 

표현법이 눈에 띄는 것은 아마 담담한 어투도 있겠지만 어떠한 상황과 심정을 바라보는 시각 혹은 사용하는 단어가 색다른 것이 이유일지도 모른다. 특히 ‘월출녘에 잠들지 못한 사람들은 달에게서 꿈을 대출하지’ 부분에서 이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월출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접하는 경우가 적어서일까, 의미 전달은 확실히 되면서도 낯선 느낌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와닿았다. 또한, ‘월출녘’이라는 단어 뒤에 이어지는 ‘달에게서 꿈을 대출한다’는 말이 쉬이 잠들지 못하는 이들의 밤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저 부분은 꽤나 오래 눈에 담으며 곱씹기도 했다.

 

시를 쭉 읽고 있자면 눈에 밟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마침표의 부재. 즉, 문장에 마침표가 다소 생략되어 있다는 것. 우리는 마침표를 통해 한 문장이 끝났음을 받아들이는데, 이 시집 안에서는 오히려 마침표를 발견하는 것이 더 낯설다.

 

마침표의 부재는 오히려 색다르게 시를 읽는 순간을 제공한다. 마침표 없이 길제 이어지는 문장들은 어디까지가 한 문장일지 고심하게 만든다. 읽는 속도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만든다. 글의 속도와 호흡을 온전히 내 기준에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시 해석에 자율성을 더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여러 번 읽었음에도 여전히 나는 시가 어렵다. 빽빽하게 채워진 줄글과 달리 여백이 가득한 글 속에서 작가가 의도한 바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이해한 내용이 작가의 의도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게 맞을지 고민이 앞선다.

 

문득 나에게 시는 영화의 열린 결말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의 열린 결말은 어떤 상황이라고 명확하게 얘기해 주기 보다, 내 상상에 상황을 맡긴다. 그리고 이것은 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글이 없는 여백의 공간을 내 자율성에 맡기는 것은 아닐까?

 

이 시집의 저자인 ‘이혜미’ 작가도 아마 해석을 독자의 자유에 맡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말했던 ‘마침표의 부재’로 글의 속도와 호흡을 온전히 독자에게 넘겼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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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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