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케이크 만드는 영화인 줄 알았더니 [영화]

영화, <케이크메이커>
글 입력 2022.11.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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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케이크메이커>길래 <사랑의 레시피>, <줄리 & 줄리아> 같은 영화인 줄 알았다.

 

제빵 하는 장면이 꽤 자주 나오기는 하는데 빵이 중심이 되는 영화라기에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을 만큼 비주얼이 투박하다. 이 영화에서 빵은 두 인물의 매개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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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독일 합작 회사를 다니는 오렌은 예루살렘과 베를린을 자주 오간다. 베를린에 출장을 올 때마다 ‘크레덴츠 카페’를 들러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아내가 좋아하는 시나몬 쿠키를 사가던 오렌은 파티시에 토마스에게 아들의 생일 선물을 같이 골라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할 정도로 둘의 사이는 깊어져간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오렌은 토마스의 집에 쿠키 상자와 열쇠를 놔두고 간다. 이를 발견한 토마스는 오렌에게 전화를 하지만 오렌은 받지 않는다. 토마스는 오렌의 회사를 찾아가 그의 행방을 묻는데 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 토마스는 죽은 연인의 흔적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첫 장면부터 카페가 나오길래 그래도 파티시에 이야기이긴 한가보다 했더니 바로 아내와 아들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을 숨기지도 않는 당당한 불륜이라니. 심지어 오렌은 토마스의 집에서 그와 마주 앉아 아내, 아들과 통화를 한다. 이 뒤부터는 더 가관이다.

 

예루살렘으로 간 토마스는 오렌의 아내 아나트의 뒤를 밟고 담장 너머로 집을 훔쳐보기까지 한다. 아나트가 운영하는 카페에 찾아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계산하면서 직원이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다.

 

아직은 괜찮다는 말에도 계속 카페를 찾아가 커피를 시키고 앉아있는데 아직 어린 아들 이타이와 카페를 동시에 보는 게 어려워진 아나트는 아직 일을 찾고 있냐며 토마스를 고용한다.

 

이후 계속 오렌과는 아예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신분을 속이며 아나트의 카페에서 일을 하는 토마스는 아나트가 하지 못하는 제빵까지 하며 자신의 지분을 넓혀간다.

 

설마 둘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하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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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를 못하는 토마스는 아나트와 영어로 대화하며 지내는데 어느 날 아나트는 이타이가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고 토마스에게 잠시 카페를 맡아달라고 한다. 마감까지 카페를 지키던 토마스는 카페 앞 의자에 앉아있는 이타이를 보고 아무말 없이 핫초코 한 잔을 건넨다.


본 지 얼마 안 된 아이이기도 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머리를 쓰다듬지도, 옆에 앉지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지도 않고 그냥 핫초코 한 잔만 건네주고 카페 안으로 들어간 그 장면이 인상 깊었다.


나도 어렸을 때 저런 어른이 필요했다. 그냥 따뜻한 핫초코 한 잔을 건네주고 내가 말하고 싶을 때까지 근처에 있어주는 어른.

 

*


영화를 보면서 죽은 연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토마스의 감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쨌든 가정이 있는 유부남과 불륜 관계였고, 신분을 속이고 자신과 내연 관계였던 남자의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며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어떤 의도 간에 객관적으로 토마스의 행동은 남겨진 이에게 잔인하고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아나트는 율법에 민감한 이스라엘에서 토마스가 코셔를 따르지 않고도 주방을 사용하는 것까지 허락해줬다.


오렌과 토마스는 고작 1년, 그것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던 관계였다. 도대체 뭘 얼마나 많이 알길래 세기의 사랑처럼 그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에 신분까지 속이고 찾아간 걸까. 오렌 말고는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아나트와 토마스가 공유하고 있는 상실감을 케이크를 매개로 서로 연결하고 치유한다는 영화의 의도는 잘 알겠으나 불륜이라는 소재가 이 의도를 뭉갰다.

 

불륜 상대가 여자였으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불륜을 합리화하는 그저 그런 영화에 불과했을 텐데 퀴어라는 프레임 속에서 아련한 분위기로 포장하면 예술 영화가 된다.

 

남겨진 사람들이 상실감을 가지고 살아가다 서로 의지하고 이겨낸다는 의도는 굳이 불륜 소재, 퀴어 속에서 여성을 이용하지 않고서도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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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의 연기는 엄청났다. 토마스의 감정이 이해가 됐던 것도 배우의 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토마스가 후반부에 어린애처럼 입술을 떨며 우는 장면은 사실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는 장면인데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 영화를 통해 좋은 배우 한 명을 알게 됐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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