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둘러싼 색의 문법 - 컬러의 방

내가 사랑하는 그 색의 비밀
글 입력 2022.11.1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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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색의 문법을 이해하기 - 도서 <컬러의 방>


 

사람은 끊임없는 탐색과정을 통해 감각을 발달시키는 존재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각의 발달을 경험한다. 오감각을 바탕으로 세상과 만난다.

 

한편 감각기관 중에서도 가장 늦게 성숙되는 것은 시각이다. 우리는 제일 오랜시간 뒤 무르익은 '시각'을 통해 세상에 피어난 색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영유아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다양하고 풍부한 자극이 필요하다. 어른들은 12색 색연필 또는 24색 크레파스 세트를 선물한다. 크레파스 통을 열면 특유의 분 가루 냄새가 솔솔 난다. 막대기 모양의 칠감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도화지 위를 덧칠한다. 그렇게 난생 처음 색을 만지고, 표현하고, 만들어내는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컬러의 방'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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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나본 도서는 <컬러의 방>이다. 이곳에는 열한 개의 색깔이 담긴 방이 있다. 컬러의 방에 들어가서 어떤 이야기를 접할지는 예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이 평소 생각해보지 못했던 신박하고도 생소한 주제와 이야기들이라 그렇다. 익숙한 색깔 속 미지의 세계가 각자의 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빨강의 방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 구두의 비밀

노랑의 방  가짜 뉴스의 시작이 된 색 

파랑의 방  성모마리아는 왜 파란색 옷을 입게 되었을까?

주황의 방  에르메스가 이 색을 택한 진짜 이유

보라의 방  황제들이 선택한 색

초록의 방  괴물과 외계인은 왜 초록색일까?

분홍의 방  엘비스 프레슬리는 왜 분홍을 가장 좋아했을까?

갈색의 방  시체로 만든 물감이 있다?!

검정의 방  해적의 검은 깃발에 담긴 비밀

회색의 방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색

하양의 방  애플이 흰색에 집착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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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컬러의 방>이라는 책 제목을 접했을 때는 단순히 디자인과 미술에 국한된 내용일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이내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컬러의 방>에서는 미술 분야를 뛰어넘어 세상의 다채로운 장르를 모두 담고 있었다. 특정한 색이 사용되고, 연구되고,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역사가 된 사실과 현상을 아낌없이 축적한 사전이었다. 과학과 예술, 스포츠와 비지니스, 연예계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색에 관한 에피소드를 야심차게 모두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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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은 행성 간의 먼지구름, 그리고 이온화된 기체로 구성된 성운이 띠는 주요 색깔 중 하나다. 천체 물리학자 프랭크 서머스는 이에 관해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는 수소다. 수소는 별의 열기로 인해 수천 도로 데워지면 분홍색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붉은 빛을 발한다." (중략)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주의 색은 별이 형성되는 지역에서 내뿜는 수소 알파의 분홍색이다. 수천 도로 빛나는 이 가스는 새로 태어난 별 무리를 둘러싼 성운의 보호막이다. 별들의 육아실이 뿜는 분홍색 빛은 봄철의 초록색처럼 생명력을 나타나는 온기의 색이다."

 

- 도서 <컬러의 방> p.257 중에서

 

 

특히 분홍색을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주저없이 '분홍의 방'에 들어갔다. 이윽고 분홍색 빛의 가장 자연스러운 근원을 발견했으니, 바로 우주의 색이다. 별이 형성되는 지역에서 내뿜는 수소 알파의 분홍색이라 표현된 구절을 보자마자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책에는 없지만 과연 그 '별들의 육아실이 뿜는 분홍색 빛'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였다. (컬러의 방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짧은 에피소드가 있다. 모든 에피소드에 대하여 자세한 사진이나 자료가 따라붙지는 않지만, 이처럼 특별히 궁금한 설명이 생길 때는 책 밖을 벗어나 직접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이를 계기로 알게 된 분홍색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붉은 색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제16회 천체사진공모전 대상작인 암흑성운 B33이었다. 암흑성운의 모양이 말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말머리성운이라고 한다. 말머리 성운 뒤에 환상적으로 밝게 빛나는 발광성운은 IC434이다. 2007년에 촬영한 이 사진은 촬영을 위해 노출한 시간만 장장 6시간 40분이었다. 지구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우주의 '분홍 빛'을 사진 한 장만으로 알 수 있는 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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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크리스마스 이브, 아폴로 8호에 탑승한 윌리엄 앤더스, 프랭크 보먼, 제임스 러벌은 달의 궤도를 돈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 앤더스는 궤도를 돌면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 하나를 찍었다. 바로 지구가 그림자에 반쯤 가려진 채 달 지평선 위로 솟아있는 사진이다. 촬영자는 '지구돋이Earthrise'라는 별명을, 나사는 간단히 AS8-14-238HR라 이름 붙인 이 사진은 지구가 흰 구름에 부분적으로 가려진 파란색 구체이며, 장엄하지만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행성임을 보여주었다. 4년 뒤, 아폴로 17호의 승무원이 온전한 지구의 모습을 최초로 찍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 사진을 '블루 마블'이라고 일컫는다. 

 

- 도서 <컬러의 방> p.118-119 중에서

 

 

파랑의 방에서 마주본 우리네 삶의 터전도 빠질 수 없다. 화창한 날의 파란 하늘, 고요한 바다의 푸르름을 오롯이 품어내고 있는 파란색 구체가 바로 지구다. 세상 사람들은 이 사진을 '블루 마블'이라 일컫는다는데, 블루 마블의 공동 주민으로서 꽤나 자랑스럽다. 푸르른 행성에 살고 있는 생명체로서, 어쩌면 거대한 파랑의 방에 현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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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어온 애플의 전략에 대해 접근했다. 목차에도 설명했듯 애플이 흰색에 집착한 진짜 이유는 바로 '명료함'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21세기 초반 애플은 흰색을 가장 멋진 색으로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

 

지금의 애플 시리즈는 다채로운 색깔로 전세계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사실 근본적인 컬러는 흰색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명료하고도 지독하게 중립적인 흰색이 애플의 혁신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해 '첫 등장' 했으니까.

 

결과적으로 흰색의 명료함만큼 애플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명확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생활의 개선과 혁신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증명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당시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조너선 아이브가 아이팟과 후속 제품에 '지독하게 중립적인' 흰색을 제안하면서 흰색은 애플 컴퓨터의 특징 색이 되었다. (중략) 그는 흰색의 명료함이 애플의 혁신적인 제품에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믿었다.

 

- 도서 <컬러의 방> p.357-35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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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특정한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 깔끔하게 고정관념을 부숴버릴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1918년 미국의 전문지 <언쇼>가 조언한 바 "분홍색은 단호하고 강한 색이니 남자아이에게 더 적합하고, 파란색은 보다 섬세하고 얌전하니 여자아이에게 더 잘 어울린다."라는 문장만으로 분홍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긴다. 또한 1532년에 출간된 '주사위 놀이'에서 언급했듯 "친구가 없으면 인간은 곧 우울감(a brown study)'를 느끼게 된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울한 감정을 표현할 때 쓰이는 "Feel blue"라는 표현 외에도 고독한 상념을 나타내는 'Brown study'를 생각해본다.

 

여기에 더불어 '단색'이라 표현되는 검은색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검토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일본의 소묘 화가 호쿠사이에 따르면 검은색에 대한 낡은 시각을 버릴 수도 있다. 그는 "낡은 검은색이 있고 신선한 검은색이 있다. 광택이 흐르는 검은색과 광택이 없는 검은색이, 햇빛을 받은 검은색과 그늘 속의 검은색이 있다. 낡은 검은색에는 파란색을 섞어야 하고, 광택이 없는 검은색에는 흰색을 광택이 있는 검은색에는 수지를 섞어야 한다. 햇빛을 받은 검은색에는 회색 반사광이 있어야 한다"라고 일컬었다.

 

색에 대한 판단과 평가의 기준은 이토록 상대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 색의 비밀, 사실 하나의 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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