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22 네마프의 대안영상 영화들 -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영화]

글 입력 2022.09.0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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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여럿 들어봤어도 영상예술제는 생소했기 때문에 영상예술제 자체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네마프의 문화초대를 신청했다. 관람 전 네마프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수많은 기획전이 있었다. 여러 기획전의 영상을 골라 보고 싶었으나 일정상 관람 가능한 요일과 시간대의 작품을 찾는 일이 먼저였다. 그렇게 내가 감상한 두 개의 기획전은 <글로컬 부문 II: 감각하는 인간; 이산(離散)의 불안>과 <아시아/뉴대안영화전: 지금-여기 II: 추상의 언어>였다.

 

 


글로컬 부문 II: 감각하는 인간; 이산(離散)의 불안



<글로컬 부문 II>에서는 총 여섯 편의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영상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펠리페 가리도 아르창코, <광고들>, 5분: 내가 처음 본 네마프의 영상 작품은 펠리페 가리도 아르창코의 <광고들>로, 11개의 가상의 광고들로 구성된 5분짜리 단편 영화였다. 리뷰를 쓰기 위해 네마프 홈페이지에서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보며 가상의 허위 광고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진짜 광고들인 줄 알고 봐서 매우 당혹스러웠다. 예를 들면 첫 데이트를 하는 듯한 두 남녀가 세상 그 누구보다 어색하게 웃고 있다가 ‘인생은 짧아요!’라는 문구가 뜨더니 예쁜 유리잔에 푸른색의 세제를 마시려고 건배하는 장면 등이 그랬다. 어차피 설거지를 해도 세제를 먹게 되니 짧은 인생 이왕 먹는 세제 좀 더 좋은 세제로 먹으라는 뜻인가? 머릿속에 물음표가 다섯 개는 뜬 상태로 이게 감독이 살아온 나라의 유머 코드인가 했는데 그것들이 다 가상의 광고였다니. 드디어 이해 가지 않던 부분들이 이해가 갔다.

 

그 또 다른 예로 무엇을 광고하는지 모르겠으나 모델의 몸매를 부각한 영상이라거나, 개성 넘치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 광고 끝에서 메인 모델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은 옷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을 비춰주는 멋쩍은 장면 등이 있었다. 전자는 간혹 제품력보다 광고 모델의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광고를 꼬집는 듯하다. 후자는 개성 넘치는 스트릿 패션이라지만 결국 광고를 위해서라면 대표되는 아이템과 코디를 내세워야 하고, 그 결과 오히려 몰개성하게 반복되는 옷차림을 만들 수도 있는 패스트 패션의 세태를 풍자하는 가상 광고였다. 오히려 진짜 광고인 줄 알고 봄으로써 감독의 유쾌한 풍자 능력이 후에 더 크게 다가왔다.


<미튜브3: 8월의 노래 ‘우나 푸르티바 라그리마’>, 7분: 네마프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작품은 ‘국제적으로 상을 받은 미튜브 단편 영화 시리즈의 3부’라고 한다. ‘은하계 음악 애호가인 어거스트와 엘피가 오페라 무대를 정복하고 그들의 마지막 모험을 화려한 방식으로’ 꾸미는 이야기라는데, 이 시리즈의 전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3부 영상을 보니 맥락이 잘 이해 가지는 않았다.

 

제목에 들어 있는 ‘우나 푸르티바 라그리마 (Una furtiva lagrima)’란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라는 뜻으로, 오페라 <사랑의 묘약 L’Elisir d’amore> 제 2막에서 주인공 네모리노가 부르는 아리아의 제목이기도 하다. 과연 영상은 남주인공 어거스트가 부르는 이 노래와 함께 진행된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청년 네모리노가 대지주의 딸 아디나를 사랑했고, 아디나가 네모리노의 참된 마음을 알게 된 후 둘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라는 아리아는 아디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약장수로부터 사랑의 묘약인 줄 알고 구입한 가짜 묘약인 와인을 마신 네모리노가 자신에게 사랑에 빠진 아디나의 마음을 확인하고 기쁨에 차서 부르는 노래이다. 아디나는 사랑의 묘약 때문에 네모리노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이어진다. 번역본 가사에서 ‘죽어도 좋습니다, 사랑으로 죽을 수 있다면!’이라는 마지막 부분이 인상 깊다.

 

<미튜브3>은 이 아리아에서 착안한 것이 맞겠지만 배경도 결말도 다르다. 우선 배경은 적어도 현대로 보이고 어거스트와 엘피-아마도 모자 관계로 보인다-는 우주에서 온 것 같은 초능력자다. 백스테이지에 난입한 그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공연을 접수한다. 그와중에 어거스트는 여배우 한 명에게 사랑에 빠지는데, 엘피의 질투로 그만 그녀가 죽고 만다. 그녀를 살려내-그러나 영혼까지 살려낸 것 같지는 않다- 무대 위에서 결혼식까지 올리는 어거스트지만 마지막에는 엘피의 손을 잡고 무대 위를 나선다. 그 과정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변해버리거나 죽게 된 사람들도 있지만 둘은 개의치 않는다. 두 사람의 감정싸움에 휘말린 사람이 몇인데 마지막에 가서 둘이 화해하고 평화를 찾는 결말이 솔직히 탐탁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둘은 애초에 이계의 사람들로서 무대 안팎의 사람들을 자신들과 동등하게 보지는 않은 모양이다.

 

앞서 관람한 <광고들>과는 달리 감상 후에 이해를 더해도 감상의 만족도는 떨어졌다. 아무래도 가상의 광고 영상보다 훨씬 긴 스토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스토리를 현장에서 따라갈 수 없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작품에 삽입된 아리아의 내용도, 그 아리아가 나온 원작도 극장에서는 알 수 없었다. 해당 오페라를 비튼 것인지 단순히 아리아만 차용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알았다 하더라도 영화의 이야기 자체를 따라가기는 힘들었을 테다. 어거스트와 엘피의 행동이 정말 무대를 정복한 것인지 지금도 의아하다. 1부와 2부를 본다면 그들의 ‘정복’ 행위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 이해하며 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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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뉴대안영화전: 지금-여기 II: 추상의 언어


 

본 기획전에서는 총 세 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중 뇌리에 깊게 남은 두 편의 영상에 대해 써 보았다.


이정식, <김무명>, 30분 51초: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천천히 누군가의 손이 성냥갑으로 성냥 불을 붙이는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일상적인 행위를 비일상적으로 느리게 보여주는 연출은 감상자의 몰입을 부른다. 그렇게 붙여진 불은 촛불로 옮겨간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레이션을 시작한다. 감염과 확진, 누군가에게 옮았는지 짐작은 가지만 그 사람에게 따지기에도 이제 의미가 없다는 말에 나는 이 영상이 코로나 시국을 다룬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말, 이 병에 감염되고 자살 생각을 했으나 그렇게 죽는다면 부모님이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 포기했다는 나레이션에서 감염된 병이 코로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이 영상은 HIV 감염인들의 사연을 각각의 나레이션과 연기로, 그러나 특정한 얼굴과 이름을 노출하지 않고 다루고 있다.

 

연극적인 연출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여러 인물들의 사연은 각 인물들과 밀접한 사물과 함께 등장한다. 예를 들어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한 사연자의 등장은 카메라의 클로즈업과 함께 이뤄진다. HIV 감염 이후 알코올 중독에 빠진 또 다른 사연자의 경우 와인 잔이 등장한다.

 

공간과 시점의 이동은 각기 다른 사연자의 이야기가 펼쳐짐을 암시한다. 여러 장면이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주된 배경이 되는 공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정식 감독이 예전에 개인전을 열었던 적이 있는 건물로, 과거에 교회로 쓰였던 건축물이라 한다. 감독이 특정 종교만을 주목한 것은 아닌 듯하지만, 이 교회로 쓰였던 적이 있는 공간에서 HIV 감염인들의 이야기를 촬영함으로써 감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이 있는 ‘종교’가 위로받지 못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이라 한다.


박진영,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16분 48초: 이번 네마프에서 시간대가 맞는 영상 중에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개인적인 감정의 부침을 다뤘고 그것을 벗어나려는 노력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를 다뤘기 때문에 호기심이 일었다. 관람한 영상은 예상보다 더 어둡고 보기 힘들었다.

 

화면은 기본적으로 2분할이 된 상태에서 각기 다른 영상을 보여주다가, 한쪽의 화면이 사라지고 검은 배경으로 대체된 다음 가끔씩 나레이션 자막이 뜨는 식이었다. 2분할이 된 영상은 대체로 박진영 감독 본인이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전신 샷이, 다른 한쪽은 감독의 상반신을 클로즈업하여 가슴을 어쩐지 고통스럽게 만지는 행위를 반복하는 영상이 틀어졌다. 전자의 행동 역시 소리 없는 아우성 같고 고통을 표출하는 듯 보인다. 때로는 물에 빠졌으나 올라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감독의 모습이 영상에 나오기도 한다. 대사는 없지만 누군가가 괴로워하는 듯한 소리가 먼 바람에 전달되어 온 것 같은 스산한 사운드 이펙트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GT(Guest Talk)에서 박진영 감독의 설명을 들으니 작품이 더 잘 이해가 갔다. 친구의 자살과 본인의 유방 섬유종 발병을 겪은 감독은 2019년으로부터 2년간 일상이 무너질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그때의 고통을 영상화한 것이다. 내면의 침잠보다도 더 괴롭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어쩌면 절망감이, 두 팔을 반복적으로 휘적이던 박진영 감독의 벌어진 입에서 강렬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보고 나서 에너지 소모가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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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네마프의 대주제는 자연과 작용이었다. 내가 관람한 영상들은 그 대주제보다는 각각의 기획전 이름에 더 걸맞았다고 느껴진다. 예를 들어 <감각하는 인간: 이산의 불안>은 스토리의 전달보다 카메라라는 시각 매체를 매개로 여러 감각을 전달하는-예를 들면 피부에 액체가 흐르는 듯한 감각, 매끄러운 천의 촉감, 다양한 시각적 표현 등- 영상이나, ‘이산의 불안’이라는 어구에 맞게 관계적 단절이나 불안정함에서 오늘 불편한 감정을 다룬 영상들이 많았다.

 

<아시아/뉴대안영화전: 지금-여기 II: 추상의 언어>의 경우 추상의 언어들에 대해 주목한 영상 세 편이 있었다. 비록 본문에 소개하지는 못 했지만 청 홍 아이유 감독의 작품은 코로나 시국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강권한 정부의 추상적인 언어에 대해 비판했으며, 박진영 감독의 영상은 아예 몸짓과 표정, 사운드 이펙트 같은 ‘추상적인 언어’들로 채워졌다. 이정식 감독의 <김무명>은 HIV 감염인들의 사연을 피치 못하게-사연자들의 신원이 노출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므로- 무명인들의 사연으로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사연은 개별적이면서도 추상성을 띠게 되었다.

 

각기 다른 주제, 자유로운 소재 선택, 과감한 표현 방식 등 상업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영상들을 많이 보고 온 것 같다. 비록 대안영화, 대안예술의 의미에 대해 고찰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경험이 축적된 것은 아니지만 내년에 또 기회가 있다면 비주류 예술과 탈장르 예술에 대해 더 알아본 다음 영상예술제를 관람하고 싶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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