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무도 모르게 사진을 찍는 마음 -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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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센티가 훌쩍 넘는 큰 키와 골격, 챙이 넓은 모자. 종아리를 덮는 수수한 셔츠 원피스와 투박한 로퍼 구두. 목에는 카메라를 메고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다가서는 그녀. 그리고 순식간에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셔터 소리 - 찰칵!
비비안 마이어의 첫인상은 비밀스러웠다.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에는 그녀의 일생과 주변인들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퍼즐을 맞추듯 이곳저곳 흩뿌려진 증언과 이야기를 조합해 봐도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누군가는 그녀가 고집불통에 무례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녀만큼 따뜻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한다.
비비안 마이어는 보모로서 생계를 이어나가며 틈나는 대로 사진을 찍었지만 평생토록 타인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2007년 시카고 벼룩시장 물건 더미에서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15만 장의 사진은 여전히 먼지 쌓인 채 잠들어 있었을 테다.
베일에 싸인 사람. 알면 알수록 그녀가 더 궁금해졌다.
무대 위 배우가 된 거리의 사람들
"거리의 사진가들은 사교적인 편이지만 동시에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게 관찰하면서 포용한다."
비비안 마이어는 유독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불우한 유년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 카메라만이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하고 소중한 친구였다. 1952년 여름, 할머니가 물려주신 유산으로 산 카메라 '롤라이 플렉스'는 그녀의 두 눈이 되어 20세기 시카고와 뉴욕의 풍경과 드넓은 세상을 담아낸다.
독일의 명품 카메라 롤라이 플렉스는 흔히 위장 카메라라고 불린다. 고개를 숙여 렌즈를 바라보고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상대방이 모르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녀는 특히 거리의 인물을 촬영하는 걸 좋아했는데, 로우 앵글로 시선보다 낮은 각도에서 촬영된 사진에서 인물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된다.
그렇게 서로 눈이 마주친 찰나, 사람과 사람 사이 오고 가는 교감의 순간을 그녀는 정면으로 포착했다.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무대 위 오롯한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를 간직한 채 영원으로 박제되었다.
도시의 어두운 이면을 포착하다
"나는 가끔 세상이 내가 티켓을 사서 들어온 곳 같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은, 세상은 내게 큰 공연이다."
-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는 비극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전시장에는 가난한 계층과 부유한 계층 사람들이 커다란 액자 속에 일렬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진에서 기존 세계의 질서와 위계는 희미해지고 모두가 동등한 인간으로서만 존재했다.
그녀는 정치와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다양한 곳을 방문하며 사진기자처럼 현장을 기록했다. 사회 빈곤부터 범죄, 젠더, 인종 등 도시의 어두운 이면에 집중했고 모든 형태의 평등을 지지했다.
특히 그녀는 소문난 신문광이었는데, 신문의 모든 면을 스캔하고 방안에 가득 쌓아 보관할 만큼 큰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은 그녀를 움직여 거리로 뛰어들게 만드는 에너지였다.
6개월간 떠난 세계여행에서는 5천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는데, 아직 해외여행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열렬한 모험심으로 LA와 필리핀, 홍콩, 태국, 인도, 이집트,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했다고 한다.
이 시기 그녀가 카메라로 담은 자신의 모습은 어딘가 들뜨고 신나 보인다.
아무에게도 보여지지 않을 사진을 찍는 마음
평생토록 사진을 찍었지만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사진을 세상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사람.
거리 사진의 역사를 다시 쓸 만큼 강렬하고 독보적인 작품을 남겼지만 그녀에게 사진은 취미로만 머물렀다. 그저 단골 사진 현상소에 구체적이고 섬세한 당부를 남기며 필름을 맡겼을 뿐이다. 말년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진 찍기를 멈춰야 할 정도였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사진으로 돈을 벌지도, 사진을 판매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담고 싶은 것만 찍겠다는 의지, 자신이 바라보는 방식으로만 기록하겠다는 굳은 결의. 사진이 인증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때론 과시가 되어버린 요즘 같은 세상에서 오로지 기록을 위해 촬영된 사진은 그 자체로 고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진을 향한 순수한 기쁨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수백, 수천 개의 필름 롤을 다 비울 수 있었을까. 사진은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는 귀중한 도구이자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삶은 어쩌면 영화일지도 모르겠다고. 비비안 마이어가 거리의 사람들을 무대 위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삶이 행복하건, 슬프건 이 또한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그래도 꽤나 괜찮을 것만 같다. 돌이켜보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임정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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