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꾸밈 없는 사진들 - 비비안 마이어 展

글 입력 2022.08.2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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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그라운드 시소 성수에서 개막하였다.

 

비비안 마이어는 미디어에 전혀 노출되지 않다가 사후에 15만 장의 사진 작품이 비로소 대중에 드러나며 알려진 미스터리한 사진 작가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와 도서 등의 매체에서 소개되어 왔었는데,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캐롤》에도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렇듯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그녀의 작품들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하게 되었고, 세 달간 성수동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시카고와 뉴욕 등 대도시 배경의 사진 작품들뿐 아니라 그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생애 후기의 사진 작품들, 그리고 작가의 유품들과 영상 자료들도 함께 찾아온다.

 

이번 전시는 올해 11월 13일까지 진행된다.

 

 

5.뉴욕공공도서관, 1954년경.jpg

뉴욕공공도서관, 1954년경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이번 전시에는 비비안 마이어가 전 생애에 걸쳐 찍은 사진 작품들이 시간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마이어의 초창기 작품들은 사진의 각도가 전반적으로 통일되어 있고, 사진에서 인물들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경직된 구도의 작품들이 양산되던 시기를 지나면 다양한 구도와 대상들이 사진에 담기기 시작한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 시간적 연속성이 느껴지는 사진 연작 등, 마이어의 작품에는 새로운 분위기가 담기기 시작하고 이 시기에 예술적인 완성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말년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결국 스스로 작품 활동을 중단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남겨진 작품들만 이미 15만 장이었다.


후기로 갈수록 마이어의 작품은 더 다채로워지고 감상자에게 다양한 느낌을 전해주게 되지만, 그래도 마이어 작품의 고유한 매력은 유독 초기의 작품들에 있는 것 같다. 명치께에 롤라이플렉스를 두고서 찍은 사진 속의 인물들은 로우 앵글(low angle)의 구도에서 상반신이 부각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사진작가를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 역시 사진에 잘 담겨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에서 일종의 위엄과 경직된 느낌이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감상자는 전시를 관람하면서 예술적으로 미화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시선들을 계속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러한 사진들을 연속해서 보다 보면 가공되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2.뉴욕, 1954년.jpg

뉴욕, 1954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은 과장 없는 사진 구도를 통해 도시의 찬란한 명성을 벗겨내고 그 속에 살아가는 개개인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마이어는 한평생 보모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전문적인 사진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거리의 사람들은 사진 모델이 아니라, 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개개인의 인격체로 느껴졌을 것이다. (추측이다.)

 

도시는 거대하고 화려하지만, 문명의 규모와 양식만이 부각될 때 그것을 구성하는 인간의 개별성은 소외된다. 마이어의 작품 속 인물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현대의 감상자들이 예술화되고 미화된 사진 작품들에 너무 익숙한 탓일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반 세기 전 대도시를 살아가는 미국인의 꾸밈 없는 일상을 적나라하지만 재미있게 만나볼 수 있는 것 같다.


*


이번 전시는 베일에 싸인 사진 작가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비비안 마이어의 가치는 비단 작품의 구도와 예술성에만 있지 않다. 그녀가 사진을 찍는 방식, 사진 속 인물과 사물을 대하는 방식을 주목해야 한다. 현대인은 그 어느 시기보다 사진을 찍고 감상하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사진은 더 이상 고유하거나 사실적이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한 순간의 소중함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한껏 꾸며진 사진들을 양산한다. 그러나 순간을 제대로 간직하기 위해서 모든 인물과 배경을 가장 아름답고 조화롭게 담아내려고 할 때, 그 고유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는 틀에 박힌 구도에 담겨 버린다. 우리가 사진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고유성은 붕괴되고 익숙한 사진의 문법으로 재편된다.

 

비비안 마이어가 찍은 우연하고 적나라한 사진들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세계를 포착하고 있는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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