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창작의 무기로 활용되는 판소리에 관심이 많아요" - 판소리 창작자 박인혜

글 입력 2022.08.1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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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더뗴창: 문전본풀이>는 제주도의 무속신화인 ‘문전본풀이’를 ‘판소리 합창’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낸 극이다. 2021년 두산 아트랩에서 독회 발표한 이후 제20회 의정부음악축제 창작음악극 쇼케이스에서 ‘Next Wave’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2021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공식 초청되기도 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공연에서 연출, 음악감독, 작창, 각색, 작사까지 맡은 박인혜가 없었다면 지금의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는 없었을 것이다. 희비쌍곡선을 거쳐 지금은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에서 오버더떼창 시리즈를 만드는 그는 스스로를 소리꾼이 아니라 ‘판소리 창작자’로 소개한다. 원래 있는 옛이야기를 노래하는 것이 판소리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판소리 뒤에 '창작자'가 붙는 게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만들고 출연한 다양한 공연을 들여다보면 판소리 창작자 만큼 그를 잘 소개할 수 있는 말도 드물다는 걸 알게 된다.

 

박인혜는 옛이야기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것을 동시대의 유효한 방식으로 다시 풀어낸다. <필경사 바틀비>, <판소리 오셀로>처럼 외국 이야기와의 결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전통 판소리를 향한 애정을 기반 삼으면서도 더 멀리 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전승·보존되는 판소리보다 창작의 무기가 되는 판소리에 더 관심이 많다는 판소리 창작자 박인혜를 지난 8월 11일 만났다.

 

 

 

“옛이야기 속 사람들의 내밀한 고민과 갈등을 눈여겨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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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판소리를 만들고 연기하는 박인혜입니다. 거창하게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 저는 스스로를 판소리 창작자로 소개하는 편이에요. ‘전승·보존되는 판소리’보다 ‘창작의 무기’로 활용되는 판소리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한창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 공연 중인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공연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기뻐요. 민간 단체에서 만들어진 공연, 그것도 전통 장르가 이렇게 무대에 설 기회를 많이 얻는 게 흔한 일은 아니거든요. 한편으로 공연이 거듭되다 보니 작년과는 또 다른 책임감과 부담감 역시 느낍니다.

 


이번 공연은 판소리와 합창, 그리고 굿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공연을 만들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예전부터 판소리의 질감이 살아 있는 합창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판소리에 어울리는 합창은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또 판소리 합창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그 무렵 국문학 연구자인 친구가 우리나라 무속신화를 자주 들려줬는데, 그중 제주도에서 전해 내려온다는 문전본풀이에 확 꽂혔어요. 그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는 이번 공연 드라마트루기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문전본풀이의 어떤 부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나요?


원래부터 굿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기도 했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일곱 아들이 배를 짓는 장면이나 노일저대가 장기 한판 두자고 말을 거는 장면처럼 판소리로 구성하기 좋을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음악적으로 표현하기도 좋아 보였고요. 또, 악역인 노일저대가 매력적이었어요. 원작에서는 단순한 악인이지만 연구자들은 그를 한국형 팜므파탈로 바라보거든요. 노일저대를 원작과 좀 다르게 다뤄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서로 다른 장르의 요소를 합치며 어려웠던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일단 이야기를 각색하는 게 어려웠어요. 제가 옛이야기로 공연을 할 때마다 왜 이 이야기를 오늘날에도 계속 들어야 하냐는 질문을 받거든요. 소위 고전이라는 게 지금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고루하고 전근대적이라는 거죠. 저는 고전을 동시대적 올바름의 기준에 맞춰 읽기는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그럼에도 유효한 다른 지점을 포착해, 보다 많은 사람이 납득 가능한 이야기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도 원작을 어디까지 각색할 것인지 고민이 컸어요.


설화 자체는 짧은데, 이걸 바탕으로 어떻게 기승전결을 잡고 설득력 있게 공연을 구성할 것인지 정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첫 연출이라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 소리꾼들에게 어떻게 배우 역할을 지시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요. 오히려 음악적인 부분은 판소리 합창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분명했고 경험도 많았기에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고전을 동시대적 올바름의 기준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다른 유효한 지점을 포착해 납득 가능한 이야기로 풀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노일저대와 여산부인에게 새로운 서사를 부여한 것도 그 일환으로 느껴졌어요.


저는 구비전승된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아요. 공동체가 지닌 가치관, 세계관에 따라 계속 조금씩 변하는 이야기에는 옛사람들의 내밀한 고민과 갈등, 극복하고 싶었던 것들이 반영되어 있어요. 옛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런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전본풀이도 그 세계관이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형성된 건지 살펴보는 과정을 거쳤어요. 노일저대의 악행을 다른 공동체로 편입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본다면, 그는 왜 그런 욕망을 가지게 되었을까. 순종적이었던 여산부인이 직접 남편을 찾아 나설 정도로 변한 계기는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지금에 이르게 되었죠. 이야기 속에는 선인과 악인이 있는데, 결말에서는 모두가 신으로 좌정한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이 장르만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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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이곳’ 등의 곡에서 스산한 분위기를 목소리로 연출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소리꾼이 가진 장점이 뭐가 있을까 개념 정리를 먼저 했어요. 생각해 보니 소리꾼은 각자 목소리의 개성이 강하고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도 비교적 넓다는 특징이 있더라고요. 그걸 활용하고 싶었어요. 개별 소리꾼들이 가진 목소리가 어떻게 나아가는지 섬세하게 바라보며 연출하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저도 공연을 보면서 소리꾼 한 명 한 명의 개성 있는 목소리를 듣는 게 재미있었어요.


맞아요. 판소리는 정해진 교본 없이 어릴 때부터 스승을 따라 하는 방식으로 소리 내는 법을 터득해요. 예전에는 그게 판소리의 약점이라 생각했어요. 물론 보기에 따라 실제로 약점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렇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배워 자기 식대로 부르니까 뮤지컬, 오페라와 달리 개성이 좀 더 두드러진다는 장점이 있어요. 이런 부분에 집중해서 본다면 또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필경사 바틀비>, <아랑가>, <판소리 오셀로>, <적벽> 등 전통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하나씩 거쳐올 때마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는 연출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이 작품이 제게 효자예요. (웃음) 한 작품을 스케치 단계부터 정식 공연까지 차근차근 발전시키는 게 어려운데, 그 단계를 경험하게 해줬거든요. 처음에 두산아트랩에서 독회를 할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요. 연출을 맡게 될지도 몰랐고요. 연출을 소개해 달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많은 분들이 직접 해보라고 하셔서 용기를 내봤죠.

 

 

그렇게 연출 데뷔를 하신 거네요. 여러 가지로 뜻깊은 작품일 듯해요. 연출을 새롭게 시작하며 지향하는 바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기존에는 음악을 만들거나 무대에 올라가 공연을 이끄는 게 주된 활동이었다면, 이제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도 잘해보고 싶어요. ‘오버더떼창’ 시리즈처럼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는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은 분야라 정해가야 하는 것들이 많아요. 일반 연극판에서의 이론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기에, 이 장르만의 새로운 개념을 잡아가고 싶어요. 예를 들어 판소리배우와 일반 연극배우는 다른 점이 많은데, 판소리배우가 잘할 수 있는 연기 방식이 무엇인지 개념화하고 그걸 포착해서 작품에 녹여보는 식으로요. 또, 고전과 신화에 계속 관심을 갖고 그걸 판소리로 풀어낼 수 있는 텍스트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오버더떼창’ 시리즈를 더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판소리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보는 걸 권해드리고 싶어요. 아직 판소리는 사람들에게 ‘신기한 것’ 정도로 소비되는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특이하다는 얘기가 많고, 무대의 재미는 놓치는 경우가 많은 듯해요. 익숙하지 않은 장르인 데다가 매체에서 드러나는 판소리의 모습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요. 오버더떼창 시리즈를 볼 때만큼은 그냥 하나의 공연으로 봐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이 작품이 가진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거든요.

 

 

 

“연극을 보며 제가 이야기를 통해 해방감을 느끼고,

이걸 정말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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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쌍곡선에서 활동하시며 전통 장르를 기반으로 한 공연을 많이 하셨고, 지금은 판소리 놀애박스에서 ‘오버더떼창’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데요, 판소리 전공자로서 어떻게 창작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대학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여느 전공자가 그렇듯 전통 판소리 소리꾼의 길을 걸었어요. 애착이 강했지만,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인 환경이었죠. 그러다 27살에 노래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색다른 해방감을 느꼈어요. 전통은 보존하는 게 목표라면, 창작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일이잖아요. 저로 인해 새로운 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희비쌍곡선’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초반에는 대부분 배우로서 활동하다가 점점 서사 텍스트를 판소리로 바꾸는 데 큰 재미를 느꼈어요.


 

그럼 ‘판소리 창작자’라고 소개하게 된 건 정말 최근의 일이겠네요.


맞아요. 저는 거의 유일한 취미가 연극 보는 건데요, 연극을 보며 제가 이야기를 통해 해방감을 느끼고, 이걸 정말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렇기에 전통 판소리를 사랑하고 열심히 하지만, 방향은 판소리 창작 쪽으로 잡게 되었어요. 최근에는 갈수록 창작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소리꾼과 창작자 일을 모두 하고 계십니다. 두 가지는 어떻게 같고 또 다를까요? 극본도 쓰고 무대에도 오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아주 긴 시간 스승에게 배운 것들이 있기에 전통 판소리를 할 때는 기본적으로 겸손해져요. 정석이라고 생각되는 선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제 나름의 미학적인 부분을 드러내려 노력하지요. 반면 창작할 때는 선을 넘나들고 최대한 자유로워지려고 해요. 창작할 때면 종종 어려움을 느끼기도 해요. 국악을 하면서 스승에게 배운 이 업계의 문화와 관습이 제 몸에 배어 있거든요.

 


그 사이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 나가시나요?


의외로 전통 판소리 연습을 꾸준히 하면서요. 제게 무척 중요한 일상이에요. 제 창작은 결국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 조금만 연습과 학습을 게을리하면 금방 티가 나거든요. 그런 면에서 판소리는 스포츠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당장 경기에 나가지 않아도 평소에 계속 운동으로 근육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또 연극을 많이 봐요. 제게 연극을 보는 일은 계속해서 다른 세계를 마주하고, 의도적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에요. 그게 창작에 도움이 되는 듯해요.

 


전승·보존되는 판소리가 아니라 창작의 무기(도구)가 되는 판소리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판소리로 더 해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떤 작품이 구체적으로 있다기보다는,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하나는 앞서 말씀드렸듯 판소리가 가진 특질을 살릴 수 있는 연출 양식을 만드는 거예요. 저는 평소에 연극을 많이 보는데, 연출의 양식이 명확하면서도 그게 연극의 서사나 음악과 잘 부합할 때 그 작품이 좋다고 느껴요. 그런 면에서 공연은 하나의 약속과 같다고 생각해요.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장르에서도 그걸 찾아내고 싶어요. 지금 제가 생각하는 연출 양식 중 하나는 일단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예요. 1인 1역이 아니라 한 소리꾼이 다양한 역할을 맡고 해석까지 겸하는 방향이었으면 해요. 그게 판소리의 본질과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바라는 것은, 제가 만든 작품을 진짜 좋은 작품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의 조건이 몇 가지 있어요. 작품에 동시대성이 있는지, 사회적 이슈가 담겨 있는지, 이 작품이 세상에 필요한지 등의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 관객분들께 전하는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극장에 오기 좋은 상황이 아니죠. 폭염에 코로나도 심하고, 휴가철인 데다가 얼마 전에는 폭우까지 왔으니까요. 그럼에도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전통 장르는 어쩔 수 없이 티켓 판매 부분에서 한계가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공연은 계속되니까요,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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