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짧은 시간들 속에 길게 머무르기 [문화 전반]

긴 영상에 집중을 못하겠어요
글 입력 2022.08.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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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몇 시간짜리 영화도 한 자리에 앉아 진득하게 잘 봤던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영화 한 편을 온전하게 즐겼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영화관에서 보지 않은 탓일까 생각하기에는 글쎄, 그 시절에도 TV의 영화 채널이 나의 주된 시청 채널이었으니 딱히 장소의 영향은 아닌 것 같다.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가서 10분 내외의 짧은 영상만을 선택한다. 그마저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어플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전에 비해 짧아진 나의 집중력을 탓하며 길을 걸어가는 도중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혹자들은 이를 보고 디지털 시대의 폐해라고 일컫는다. 세상사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것 같다.

 

책을 읽을 때에는 잘만 작동하던 나의 집중력이 영상을 볼 때에만 버벅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짧은 시간 내에 깊이 있는 알맹이를 표현해야 하는 영상이라는 매체의 특성은 아닐까 싶다.


책은 영상에 비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람의 의도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수월하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픈 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이 하나의 상황은 각각의 매체 성격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문자를 나열해 책은 '해가 여러 번 뜨고 질 동안 A는 물을 제외한 그 무엇도 먹지 못 했다.'라는 문장을 완성할 수 있다.

 

한편 영상의 경우에는 우선 허연 입술의 '배고픈 표정'을 하고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음식을 보며 넋을 잃는, 혹은 '꼬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배우가 배를 부여잡는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나레이션을 통해 상황을 설명해주는 역할이 있지 않는 이상 결국 영상에서의 모든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곧 감상자가 작품을 감상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의 차이로 이어진다. 묵독으로 읽으면 1초가 걸릴 것을 영상에서는 저 일련의 모습을 몇 초에 걸쳐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 필연적인 성질을 극복하고자 많은 영상 관계자들은 암시, 즉 메타포의 기법을 사용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를 통해 보이지 않는 사회의 계급을 가시적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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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쏟아지는 정보들 속에서 살고 있다는 현대인들에게는 그 의도를 찾기 위해 주의를 기울일 시간과 체력이 없는 것 같다. SNS와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는 10초 남짓한 짧은 숏폼 영상이 유행이다.

 

그마저도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영상을 다 보면 알고리즘을 통해 자동으로 추천된 영상을 보게 된다. 이처럼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짧은' 영상을 여러 개 '보여짐'을 당하는 형태의 영상 소비에 길들여져 있다.


이같은 흐름은 비단 영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읽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은 길이의 글에는 항상 '세 줄 요약'을 해달라는 댓글이 달린다. '세 줄 요약'은 하나의 문장 안에서 단어들 사이의 관계, 하나의 문단 안에서 문장들 사이의 관계, 하나의 글 안에서 존재하는 문단들 간의 흐름은 모두 차치한다. 그 과정에서는 많은 것들이 탈락되고 의미는 왜곡된다.

 

조금은 슬프게도, 인터넷 '기사'들의 제목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다. 기사는 길고, 사람들은 긴 글을 읽을 의지가 없다. 이에 기자들은 자극적이고 명확한 단어들만을 선별해 제목을 구성한다. 짧은 단어들로 구성된 기사의 '제목'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제목을 곧 기사의 내용과 동일시한다.

 

또한 '보여짐'에 익숙하다보니 그 제목이 사실인지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 한다. 결국 "A의 상황에서는 B가 아닌 C가 옳다"고 이야기하던 기사 속 D의 의견은 앞뒤사정은 모두 사라지고 "C가 옳다"로 와전되어 떠돌아다니게 된다.


나는 최근 집중하기가 어려워 약 한 달 간 영화를 보지 않았다. 위에 서술했듯 짧고 명확한 것들을 자극적인 방식을 통해 '보여짐'당하는 것에 익숙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 역시 최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앉은 자리에서 영화를 몇 편씩 보던 나로서는 심각한 슬럼프였다. 영화를 보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으니 말이다.

 

그러던 나의 머릿속에 하나의 영상 채널이 떠올랐는데 바로 「2X9」이다. 만약 짧으면서도 '생각'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이곳이 알맞을 것이다. 이 채널에는 영화감독 이옥섭과 영화배우 겸 영화감독 구교환의 여러 단편 영화들이 올라와있는데, 나는 이 글을 마치며 그 작품들 중 하나인 《걸스온탑》을 소개하고 싶다.

 

이 영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각하고자 하는 당신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사족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그저 약 4분 30초의 짧은 시간에도 자극적이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더 나아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잔잔하면서도 다채로운 화면의 색감과 감각적인 음악 덕분에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 영화의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욱 깊이, 오래 사유할 수 있는 나로 함께 걸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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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봐. 나를 봐야지 내가 잘하지.


그냥 곁에만 있어주면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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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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