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처받은 이들의 발걸음을 찬찬히 따라가보는 영화 '경아의 딸' [영화]

글 입력 2022.07.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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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경아의딸포스터.jpg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한 영화 <경아의 딸>은 홀로 살아가는 '경아'(김정영)의 딸 '연수'(하윤경)가 전 남자친구로부터 디지털 성범죄를 당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디지털 성범죄'라는 민감한 소재에 함몰되지 않고, 피해자가 뚫고 지나가야 할 현재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를 담담히 그려나간다.

 

여성이 피해자로 나오는 사건, 특히 성범죄를 소재로 다루는 작품들이 흔히 하는 실수이자 어쩌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 '피해'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그들의 피해를 보여주겠다는 명목하에 주인공을 끝없이 괴로운 상황으로 내모는 가학적인 연출은 범죄가 심각하다는 것이나, 이후에 이어지는 권선징악 전개로 사이다를 날리는 명쾌함 그 어떤 것도 잡지 못한 채 그저 '자극'만 남는다.

 

그러한 자극적인 묘사들은 논란이 되고, 이러한 소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그 영화 속에서 연출된 자극적인 피해 장면들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실제 피해자에게 가해질 심리적인 고통은 처참히 무시당한다.

 

어느 순간 그저 자극에만 치중된 숱한 작품들을 보며 과연 창작자가 이러한 묘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되고, 영화적 장치로 몰락한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답답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

 

 

[크기변환]경아의딸1.jpg

 

 

하지만, <경아의 딸>은 다르다.

 

한순간에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연수'의 하루를 묘사하지만, 극적이지 않다. 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전개가 빠르지도 않고 심심하기도 하지만, 연수에게 씌워진 '성범죄 피해자'라는 올가미보다는 연수가 사건 이후 내딛는 발걸음을 찬찬히 따라가는 이 영화는 피해자의 극복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다 무너진 것 같아 보여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를 보며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당했고, 그래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생각하며 연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그렇게 수연은 사건 이후 점차 세상을 등지고 방구석에만 머물며 검은 화면 속에 숨는 생활을 잠시 하다가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수연에게 용기를 주었던 학생, 동료 선생, 친구, 경아가 간병하는 집의 딸인 변호사,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엄마 경아까지, 다양한 위치의 여성들이 연대하는 모습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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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연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쓴소리를 하던 경아와 그런 엄마를 원망하던 수연이 마침내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고 '(지금 이 상황이) 내 탓도, 엄마 탓도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장면에서 피해자가 사건의 여파를 온전히 지고 가야 하는 이 사회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동시에,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수연'에게 어떤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 어떻게 같이 극복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한다.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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