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의 박제, 사진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에 다녀오고 : 사진에 대한 단상
글 입력 2022.07.0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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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전시회에 걸리는 그림들을 좋아한다고 봐야겠다. 어떤 크기로, 어느 위치에, 무슨 조명을 받으며 있느냐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보이는 게 좋으니까.

 

다르게 말하자면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전시는 상대적으로 눈길이 안 갔다. 대표적으로 사진전. 사진 자체에 원근감이며 나름대로 입체적인 요소가 담겼다지만, 물감의 두께와 브러시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 회화에 비하면 무미건조한 평면이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큰 변화가 없다. 사진은 평면의 한계에 갇혔다고 느낀다. 그러나 한 가지 의미를 발견했다. 사진에 사로잡힌 순간의 기억.

 

최근 삼 년 전 사진들을 습관처럼 들춰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단 한 컷만으로 어떤 시기가, 어떤 느낌과 생각이, 어떤 사람과 사물을 연상할 수 있구나. 내가 찍힌 사진을 보고는 생각했다. 이걸 찍은 사람도 이때를 선명하게 감각할까?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알아보듯이.


나는 그 '알아차림'이 마음에 들었다. 속절없이 흘러만 가는 시간을 붙들 순 없다만 지나가고 있음을 느끼는 건 의미가 있다고 여기니까. 이건 생이 존재할 때에나 느끼는 것이라 생각해서 말이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마구 뒤섞인 지금, 순간의 경계가 자연스레 생기지 않는다면 스스로 구분선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매일매일의 기록일 필요는 없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든 사소하고 일상적인 때이든 순간적으로 드는 감정에 충실해 보는 게 우선이었다.


다소 거창한 서문의 끝은 카메라로 향했다. 기왕이면 필름 카메라, 요즘 끝도 모르고 오르는 필름값을 감내해 보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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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이며 미러리스며 활용도 좋은 것들도 많은데 까다롭고 어려운 구식을 택하고 싶다는 건 계기가 있어서겠다.

 

계기는 사울 레이터였다.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건 아니고, 영화 <캐롤>을 워낙 좋아하기에 여러 구도와 연출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사진이 궁금했다. 막연히 머릿속에서 그리는 이미지와 얼마나 느낌이 닮았을지.


하지만 몇 달 전에 열린 사진전을 알면서도 발길을 옮기진 않았다. 이유는 앞서 서술한 대로다. 워낙 전시회에 대한 기준이 확고하다 보니 좋아하는 영화와 엮여도 생각의 전환까지는 닿지 못했다.

 

어쩌면 영화보다 책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사울 레이터의 책, 그러니까 사진집을 보고서 카메라의 시선에 관심이 생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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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울 레이터』

 

 

일부를 일부러 가리고, 숨기고, 흐릿함과 반사를 담으려고 하는 시도들. 비 내리는 뿌연 유리창 너머의 실루엣. 그 오묘함을 나 또한 좋아하는지라 처음으로 필름 카메라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전시를 보고서는 사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고.


사울 레이터는 그의 시선이 흥미로웠다면, 앙리는 글이었다. 그가 출간한 책이자 이번 전시명인 결정적 순간에 실린 글, 작품을 설명하며 덧댄 말들. 그런 것들을 보며 순간의 의미를, 이를 붙잡아 두려는 마음과 눈앞에 남겨진 것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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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처럼 인류 대부분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을 담아서일까. 보편의 세상에 던지는 질문과 그의 뚜렷한 생각을 사진만큼이나 자주, 가까이 만났다.

 

특히 나는 '셔터 스피드 1/4, 조리개 값 1.5에 숨을 멈추고 촬영'했다는 대목에서 카메라를 떠올렸다. 정확하게 그때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 글이 아닌 이미지로도 수치를 머릿속에 새기는 방식.


나의 기록 방식은 정말 오랫동안 글 하나였는데 새로운 게 생길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반갑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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