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몇 번이고 다시 본 영화, 박찬욱 감독의 '박쥐' [영화]

서늘하고 불쾌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화, <박쥐>
글 입력 2022.06.04 14:3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30845747_wTnNVe7A_EBB095ECA590_ED8FACEC8AA4ED84B0.jpg

 

 

 

좋아하는 것을 지독하게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최근 샐러리에 꽂혀있는 나는 온라인으로 장을 볼 때마다 샐러리를 빼먹지 않고 꼭 주문한다. 매일 먹어도 괜찮다. 질릴 때까지 먹는다. 먹다 먹다 물리거나, 흥미가 떨어지면 또 다시 푹 빠질 수 있는 걸 찾아 나선다.  집중력이 좋지 않은 편이지만, 이럴 때 보면 집요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이건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기는 영화들이 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도 그랬던 작품 중 하나다. 바로, 박찬욱 감독의 2009년도 작품 <박쥐>이다.

 

 

 

나는 박찬욱 감독의 팬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복수극 시리즈를 무척 좋아한다. <복수는 나의 것>은 한 번 밖에 관람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두 영화는 5번 이상 봤을 정도로 말이다. 그의 영화는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흡입력이 있다. 영상미 또한 탁월하다.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그의 손에서 나온 장면은 뭔가 다르다. 캐스팅도 적절해서 더 설득력이 있다. 주인공들은 꼭 어디에 있음직한 인물같다.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멋진 연기력으로 스토리에 생명을 불어넣었기에 그런 것이겠지만. 어쨌든 상상했던 일을 멋지게 구현하기 위해 각각의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일꾼들을 사용하는 것은 감독의 역량이니까, 나는 그의 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못지 않게 <박쥐>도 참 많이 본 영화다. 작품을 볼 때마다 짜릿한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새로운 주제들로 생각에 잠긴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의 사랑 이야기라니. 자극적인 소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와 모체가 되는 소설을 생각한다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흥미로움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아주 설득력있게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이 영감을 얻은 소설은 프랑스 작가 에밀졸라의 『테레즈 라깽』이다.

 

소설은 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은 자연주의 문학의 시초로, 섹스와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냉철한 과학적 태도로 이야기한다. 강렬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 독자를 매료시킨다. 그는 그의 작품을 이해시키기 위해 여러 장의 서문을 통해 창작 의도를 밝힐 만큼, 당시에는 충격적인 이야기라 많은 혹평을 받았다. 그렇지만 후대에 와서는 걸작으로 소개될 만큼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서문 일부를 살펴보자.

 

 

『테레즈 라깽』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 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을 위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쫓아가려고 노력했다.

 

- 에밀 졸라

 

 

인간의 기질이라.

 

요즘 인간에 대한 나의 생각은 '모두 다 그저 그런, 별로인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에 닿기까지 수많은 경험을 거쳐왔다. 사람을 너무 많이 믿은 탓에 닿게된 결론인 것 같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행위들이 이해가 갔다. 어쩌면 포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그 본성을 숨기며 살아가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반문한다. '결국 아닌 척 하지만, 너도 나도 다 내면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추악함과 육체적인 것들을 힘겹게 숨기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나의 마음은 <박쥐>를 다시 보고 싶다고 외쳤고, 나는 소리에 부응했다.

 

 

 

박쥐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내가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 줄게요...


신부, 뱀파이어가 되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신부 ‘상현’은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괴로워 하다가 해외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백신개발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실험 도중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음에 이르고,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 받아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하지만 그 피는 상현을 뱀파이어로 만들어버렸다. 피를 원하는 육체적 욕구와 살인을 원치 않는 신앙심의 충돌은 상현을 짓누르지만 피를 먹지 않고 그는 살 수가 없다. 

하지만 살인하지 않고 사람의 피를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친구의 아내를 탐하다.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진 상현은 그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고 기도를 청하는 신봉자들 사이에서 어린 시절 친구 ‘강우’와 그의 아내 ‘태주’를 만나게 된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태주의 묘한 매력에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느낀다. 태주 또한 히스테리컬한 시어머니와 무능력한 남편에게 억눌렸던 욕망을 일깨워준 상현에게 집착하고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태주를 사랑하게 된 상현은 끝내 신부의 옷을 벗고 그녀의 세계로 들어 간다. 인간적 욕망의 기쁨이 이런 것이었던가. 이제 모든 쾌락을 갈구하게 된 상현은 신부라는 굴레를 벗어 던진다. 


살인을 부르는 치명적 유혹!

점점 더 대담해져만 가는 상현과 태주의 사랑. 상현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태주는 두려움에 거리를 두지만 그것도 잠시, 상현의 가공할 힘을 이용해 남편을 죽이자고 유혹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더욱 그를 조여오는 태주. 살인만은 피하고자 했던 상현은 결국 태주를 위해 강우를 죽이기 위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사랑, 과연 그 끝은 어떻게 될까.

 

 

글만 읽으면, 격정적인 치정 멜로물로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박쥐의 섹슈얼한 부분은 인간 본성을 이야기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적인 요소다. 어떻게 성과 욕망을 뺴놓고 인간을 이야기 할 수 있겠나. 영화는 예로부터 금기시되어온 욕망을 적나라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낸다.

 

감독은 영화에서 '욕망'을 깊이 탐구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욕망의 중앙에는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태주와 상현의 금기시되는 사랑, 라여사가 아들 강우에게 주는 사랑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억눌리고 뒤틀린 사랑들은 아름답다 못해 슬프게 표현 되어있다.

 

또한 극 전반의 그로테스크함을 중화시켜주는 위트있는 웃음 포인트들도 매력적이다. 어찌되었든 영화는 관객이 있어야 완전할 수 있다. 마냥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만 있는 것이 아닌 중간 중간 웃음 요소들로 채워져있기 때문에 흥행과 수상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영화에 매료된 포인트들을 하나씩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주체적인 여성상

 

여성의 욕망은 터부시 되어왔다. 사회가 많이 바뀐 지금도 이러한 분위기는 여전하다. 성(sex)적으로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여성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주니까. 자신의 육체적 쾌락을 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권리다. 또 쾌락의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결국 모든 행위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태주'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방면에서 억압된 삶을 살아왔다. 성인이 된 후에도 결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라여사의 종처럼 수 년을 살아왔다. 그렇게 재미없는 그녀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을 싹틔우는 상현이 등장한다. 묘하게 궁금한 그 남자에게 자꾸 눈길이 가고, 결국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사랑을 하면서 그녀는 점차 주체성을 보인다. 비록 그 방식은 비뚫어졌으나, 어쨌든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서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상현을 이용하여 남편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강우를 죽이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배신감을 느낀 '상현'은 사랑하는 사람을 손수 죽이게 된다. 그리고 얼마 있다, 다시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자신과 같은 처지로 만든 것이다.

 

초반 등장하는 그녀의 눈빛은 자아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생기가 없다. 그러나 상현에게 죽임 당한 후, 피를 마신 이후부터는 안광이 돈다. 반짝이는 태주의 눈에서 광기와 생기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해방감이 는빛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 '상현'과 '태주'는 허가를 채우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상현'은 차마 '마시기 위한' 살인을 할 수 없어 명분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 피를 취한다. 예를 들면, 자살을 돕는다거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의 피를 마신다거나 하는 형식이다. 반면, 태주는 적극적으로 사냥한다. 그녀의 살인 동기는 오로지 마시기 위함이다. 주체적으로 피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들을 통해, 대비되는 그와 그녀의 태도를 한번 더 알 수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2. 갈증과 존재의 허망함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irst"로 갈증이라는 뜻이다. 이 제목은 원작 소설 『테레즈 라깽』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갈증을 느끼는 두 남녀가 금기된 사랑을 나누고, 또 다시 갈증을 느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로 각자 느끼는 갈증이 있다. 병 앞에 무력한 신부로서 느끼는 갈증, 부당한 환경속에서 살면서 느끼는 갈증, 사랑에 대한 갈증 등 수도 없이 많은 갈증이 있다. 갈증은 채워지는가 싶다가도 이내 다시 찾아온다. 새로운 존재로서의 삶을 갈구하지만 영화 마지막까지 본질적인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죽음을 맞아한다.

 

엔딩씬에서 '상현'과 '태주'가 차에 앉아 붉은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은 존재의 허망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순식간에 사라질 것들이면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거렸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나 쉽게 죽을 운명이었다면 왜 그렇게 수많은 목숨들은 빼앗은 것인지 원망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에서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면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갈증을 정확히 짚어내지 않는다면 결코 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주인공들은 갈증을 느껴서 비가 오기만을 기다린 것이 아닌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열심이었으나, 그것은 잘못된 방식이었던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3. 미학적 요소

 

감독은 원래부터 색을 잘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영화 한 편을 관통하는 어떤 색감 말이다. 그의 복수 3부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빨강과 보라가 극 전체에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피와 멍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박쥐에서는 파란 색감이 지배적이다. 흡혈귀라는 소재 때문일까.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창백함은 서늘하다 못해 시리기까지 한다. 또 영어 제목인 '갈증'이나 영화 속 마작모임의 이름인 '오아시스'와도 색감이 무척 잘 어우러진다.

 

그렇다면 파란색이 의미하는 것을 어떤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제이기에 사랑하면 안됐던 상현과 억눌린 채 살아와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 수 없었던 태주가 인간일 때에는 여느 사람들과 다름 없이 붉은 피가 흐른다. 그러나 인간이 아니게 된 순간부터, 그들의 몸 속에 붉은 피는 있을 수 없다. 전반적인 색감을 통해 그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강윤화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