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왜 빼고 싶어 할까 [드라마/예능]

노력하는 다이어트 예능, KBS2 ‘빼고파’
글 입력 2022.05.1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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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부쩍 더워졌다. 낮에는 팔이 긴 옷을 입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후끈한 열기에 위기감을 느끼고 옷장을 정리한다. 반 팔과 반바지 따위를 꺼내다가 문득 나의 몸을 내려다본다. 겨우내 몸이 부푼 게 분명하다. 작년 여름에는 맞았는데, 올해는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옷장 정리를 하다 말고 허리가 좁은 여름 바지를 입어본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고무줄 바지를 입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여름의 푸릇함이 올라올 즈음 우리가 비슷하게 겪는 일상이다. 짧고 얇아진 옷과 나의 몸을 번갈아 보며 어김없이 이렇게 중얼거린다. “아, 살 빼야 하는데.”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말을 달고 살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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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 중학생 즈음부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살을 빼야 할 이유는 없었다. 건강에 이상도 없었고, 모델이 되겠다거나 하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학생으로서 내가 할 일은 그저 영양분을 잘 섭취하며 크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살을 빼고 싶었다. 교우 관계 등 일상적인 문제의 원인을 외모로 돌리고 밥을 참았다. 어린 애가 아는 체중 감량법은 그게 다였다.


‘살 빼야 한다’라는 말을 달고 산 건 친구들뿐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 어린 애들이 어디서 그 말을 듣고 배웠겠는가. 주변 어른들과 대중매체는 누군가에게 조금만 살집이 붙어도 그의 몸을 쉽게 대화 주제로 올렸다. 왜 이렇게 통통해졌냐는 걱정인 척 타박 섞인 말부터 오히려 보기 좋다는 오지랖까지 건네는 말의 종류는 다양했다. 몸과 살은 그야말로 쉬운 대화 주제였다.


아, 살은 빼야 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단단히 박히고 말았다.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회가 알려주는 대로 ‘그런가보다’ 생각한 나는 현재까지도 그 생각 탓에 매일의 끼니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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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 한 장도 이리저리 살피며 튀어나온 살이 없는지 확인한다. 기껏해야 한 줌의 친구들만 보는 SNS에도 이만큼이나 신경을 쓰는데, 여러 각도로 외모를 확인당하는 연예인들의 압박감은 더 심할 테다.


‘빼고파’는 체중 감량을 여러 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연예인들이 모인 KBS2의 새 다이어트 예능이다. 댄서 배윤정과 배우 하재숙, 고은아, 개그맨 겸 유튜버 김주연, 프로듀서 박문치, 브레이브걸스의 유정까지 여섯 명의 멤버가 참여한다. 더불어 성공적인 다이어트로 화제가 되었던 김신영이 멘토로 등장한다.


초면인 이들은 오로지 ‘다이어트’라는 주제 하나로 첫 화부터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정말 별의별 걸 다 해봤어.” 누군가가 말한다. 나머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극단적 식단과 운동부터, 주사 등 시술까지 ‘몸의 크기를 줄이겠다’라는 목적 하나로 자신의 몸에 행했던 괴롭힘을 언급한다. 서로의 에피소드에 헉, 하고 놀라기도 하지만, 어떤 비난도 얹지 못한다. 모두 같은 간절함과 절망감을 공유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과 불편하게 마주하게 되는 계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박문치의 경우 짝사랑이었으며, 배윤정의 경우 임신과 출산이었다. 하재숙과 고은아, 김주연은 직업적인 이유였다. 그걸 깨닫는 순간은 보통 자신의 몸이 완벽하지 않은 순간이기에, 우리는 그 순간부터 간단히 우리의 몸을 부정하게 된다.


‘몸’에 관한 대화는 한 시간 내내 이어진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나의 삶을 발견하는 순간마다 꼼짝없이 공감의 끄덕임을 보냈다. 첫 화는 원하는 몸의 ‘결과’가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의 몸에 행한 ‘과정’을 주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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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마르고 탄탄한 몸’일까?


사람들은 왜 마르고 탄탄한 몸을 칭송하게 되었을까. ‘빼고파’ 2화에서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하며 흔히 ‘워너비’로 꼽히는 여성 아이돌들의 사진을 여럿 늘여놓는다. 합숙소로 들어서는 계단 벽에는 각 출연자가 ‘이상적인 몸’으로 꼽은 이들의 몸에 출연자들의 얼굴을 합성해 붙여두기도 했다.


첫 화를 보며 느낀 위안이 단번에 사라졌다. 첫 화에서 보여준 몸에 관한 용기 있는 대화는 그저 밑밥에 불과했는지, 결국 여느 다이어트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이 마르고 볼륨 있는 몸을 향한 지향을 전시했다. 프로그램이 ‘닮고 싶은 몸’을 가지고 있다며 제시한 여러 연예인은 과연 자신의 몸에 만족할까. 그들 역시 자신의 몸을 평가하고 재단하고 혹사할 것이다.


타인의 몸을 평가하는 행위는 무례하다. 이 문장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그러나 ‘빼고파’는 2화부터 대뜸 타인의 사진을 들이대며 ‘이게 이상적인 몸’이라며 생뚱맞게 타인의 몸을 평가한다. 1화 내내 건강하지 못했던 몸 관리를 논하고는 2화에서는 ‘건강은 상관없고 일단 몸의 테두리가 멋진 사람들’을 보여준다니 이런 모순이 또 없다.


우리는 몸의 테두리를 그만 논해야 한다. 대신 몸이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근육이 부족해 일상생활이 힘들지는 않은지, 먹는 양이 적당하지 않고 불규칙해 위를 상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테두리가 아니라 알맹이를 바라보며 건강하게 건강을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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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고파’ 멤버들은 본격적으로 건강하게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는다. 김신영은 멸치볶음을 넣은 묵은지 김밥을 만들며 다이어트 식단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실은 그건 다이어트식이 아니라 그저 ‘건강식’일 뿐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의 균형이 잘 잡힌 음식을 위주로 섭취해야 하는 건 사실 당연하다. 그들은 김밥을 먹으며 살을 빼려고 이걸 먹는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건강하기 위해 건강한 식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몸의 테두리를 바라보며 살았다. 하지만 더 깊이, 한층 더 들어가서 제대로 자신의 몸을 바라봐야 한다. 근육량 부족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운동을 하고 식단 조절을 하자.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점이 있다. 당신의 운동과 식단 조절은 절대 살을 빼기 위한 목적이 아니어야 한다. 알맹이를 바꾸면 테두리는 당연히 따라온다. 건강한 노력의 결과로 테두리의 변화가 눈에 보인대도 그게 알맹이의 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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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첫 방송을 마친 ‘빼고파’는 현재 2화까지 방영되었다. 이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는 어떤 운동과 식단을 소개할지 기대된다. 남의 몸을 강조하는 2화 도입부의 문제를 인지하고, 각자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건강한 몸과 생각을 되찾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


출연자들은 운동하고 밥을 먹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내내 즐거운 웃음을 나눈다. 몸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만났지만, 내내 서로의 몸을 바라보는 건 아니다. 각자의 몸에 엮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별것도 아닌 이유로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이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몸에 관한 대화를 멈추지 않을 거다. 미디어는 끝없이 어떤 몸을 칭송할 테고, 그걸 보는 누군가는 자신의 완벽하지 않은 몸을 부정할 거다. 그때 누군가가 곁을 지키며 함께 테두리가 아닌 알맹이를 논해주고, ‘빼고파’의 출연진들처럼 몸이 아닌 다른 주제로 웃음을 나누어주면 좋겠다. 그렇게 차차 몸의 테두리를 논하지 않는,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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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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