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미술/전시]

서울 시립 미술관이 제공하는 환상적인 무료 전시!
글 입력 2022.04.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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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 자기애(自己愛, self-love).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자신의 외모, 능력과 같은 어떠한 이유를 들어 지나치게 자기 자신이 뛰어나다고 믿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자기 중심성 성격 또는 행동을 말한다.
 

 

한국 화단의 대표적인 작가 천경자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전적 성격의 작품을 그려냈다. 마치 거울처럼 자신을 투영하고 세상에 알리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그녀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93점의 작품은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전시를 통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총 4가지 섹션으로 구분된다.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 환상의 드라마, 영혼의 여행자, 자유로운 여자. 나는 섹션별로 인상 깊었던 작품을 소개하고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첫 번째,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


 

 
“내 온몸 구석구석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있나 봐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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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7

 

 

여성 작가, 천경자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였다. 작품 활동하는 내내 그녀는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숙명적인 여인의 한’을 느꼈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서인 ‘한’을 여성과 연관 지어 슬프고, 가슴 아리게 표현해냈다.

 

이 섹션의 그림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하며 표정으로부터 느껴지는 한스러운 감정이 온전히 전해진다. 특히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전시에 들어서면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데 어둡고 탁한 색감의 무표정한 여인의 시선을 표현했다. 그 시선을 응시하고 있으면 막연하고 먹먹한 감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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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이 된 마돈나>, 1990

 

 

<화병이 된 마돈나>는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유명 스타인 마돈나의 얼굴을 대상으로 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마돈나는 화병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꽃이 상징하는 바를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꽃에 자주 비유되곤 했다. 작가 천경자는 그 점을 슬프게 생각했던 것 같다.

 

마돈나의 눈빛은 우수에 차 있다.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묘사 속에 아픈 감정이 서려 있다. 마치 마돈나가 여성으로서 받았던 수많은 편견과 차별을 드러내는 것 같다. 유명한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느꼈을 슬픔. 작가가 그 슬픔 속에 자신의 한을 대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환상의 드라마


 

 
“작품은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고, 미래세계를 상상하며 오늘의 꿈을 담은 한 폭의 드라마들”
 

 

이 섹션에서는 작가의 꿈과 환상, 동경의 세계를 표현한 자전적 성격의 채색화 작품들이 나열된다. 전반적으로 추상적인 관념을 그림에 녹여냈다는 인상을 받았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담긴 작품이 마치 드라마 같다는 표현이 참 아름답다. 결국 작가에게 미술은 인생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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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1951

 

 

단숨에 눈을 사로잡은 작품이다. <생태>는 처절한 삶의 현실에 저항하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얽히고설킨 뱀의 모습이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뱀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비늘과 눈이 몹시 섬세해서 그림에서 곧 튀어나올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림 옆에 재미있는 사연이 적혀 있었다. 작가는 광주역 앞 뱀집을 찾아가서 유리 상자 속에 수십 마리의 뱀을 넣고 직접 관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25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듣고 나니 그녀가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실험 정신을 아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내가 느낀 감정은 ‘처절함’이었다. 평탄한 인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뱀을 통해 삶에서 다가오는 여러 고난을 처절하게 버티고 저항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것이 아닐까.

 

이 그림은 천경자 예술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자전적 의미가 나타난 최초의 징후로 꼽힌다. 여동생의 죽음, 사랑, 이혼, 경제적 어려움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작가의 의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영혼의 여행자


 

작가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녀에게 여행은 타국 사람들과 자연, 풍물을 발견하는 즐거운 시간이었고, 원초적인 세계를 경험하는 교감의 현장이었다. 이 섹션을 감상하면서 반가운 감정이 들고 그림 하나를 볼 때마다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타 작품에 비하면 비교적 작은 규격의 그림들이 많았는데 작은 붓을 사용해서 몹시 섬세하고 예쁜 색감을 표현했다. 그림 한 장으로 다른 나라의 분위기를 온전히 표현했다는 점이 무척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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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이키토스>,1979

 

 

<페루 이키토스>는 아르마스 광장의 성 요산 성당을 그린 작품이다. 아름다운 성당에 새무리가 날아다니고, 다채로운 색채와 섬세한 붓 터치로 페루의 분위기를 담아냈다. 실제로 보면 하늘 색깔이 어스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나는 우측 상단의 빛이 달빛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나라가 전시되어 있는데 만약 그 나라를 가본 적이 있다면 추억에 잠길 법한 그림들이었다. 꼭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네 번째, 자유로운 여자


 

이 섹션은 그림이 아닌 수필집과 글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아래 천경자의 글 <자유로운 여자>의 대표적인 구절이 있다.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어디서 일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들. 그 위에 인생이 떠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믿는 신은 한 인간이 어느 만큼이나 열렬하게 자기 삶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존재하기도 하고, 그 운명의 문은 열리리라고 믿는다. 담배를 피워 물고 긴 한숨을 내려 쉬며 거울에다 연기로 자유라고 쓴다. ‘내 슬픈 전설’이라는 말이 왠지 좋았고 나이 만49세 때 아마튜어가 아코디온을 켜듯 쓰기 시작한 글이어서 49페이지라 덧붙여 책이름을 지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앞으로 내 생애는 몇 페이지의 여백이 남아있는 것일까. (자유로운 여자, 1979)]

 

그녀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과 관념들을 재정의하며 그것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자전적인 작품의 시도는 곧 나를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출처

서울시립 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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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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