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적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중, 헬프 미 시스터 [도서]

글 입력 2022.04.0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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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장편소설 한권을 완독했다.

 

소설이지만 우리사회의 현실과 닮은 구석이 많아 한편의 소설이 아닌 압축된 사회의 일면을 구석구석 돌아보는듯한 느낌이었다. 이서수 작가의 <헬프 미 시스터>는 수경과 그녀의 가족구성원, 주변인물들의 삶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며 그들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소외되어왔지만 사실상 더욱 주목해야할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킨다.

 

 

헬프미 시스터.jpg


 

먼저 수경의 이야기는 결말에 다다를때까지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누구라도 겪을수 있는 현실이자 이미 피해자가 많을것으로 예상되는 수경이 겪은 사건. 회사를 위해 온몸 바쳐 일했던 그녀였지만, 동료의 썪은 사고방식으로 인해 결국 수경이 짊어져야할 짐은 너무나도 많아졌다.

 

믿었던 동료에 대한 배신감,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제발로 사직서를 제출해야하는 상황에 억눌러진 분노와 좌절감, 그로 인해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신뢰의 상실에 기인한 허탈감. 소설속에서 수경의 심리를 읽을때마다 그녀가 홀로 마주해야했던 공허함과 외로움에 나도 함께 울었고, 이후 그녀가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고자 결심했을땐 수경의 단단해진 용기에 감사한 마음이 들며, 할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앞으로 나아갈수 있는 더 큰 힘을 보태주고 싶었다.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상처를 지닌 채로 걸어가는 것.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 256p

 

 

상처가 우리들의 심장을 짓누르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우며 그런 상처들은 삶에서 뜻하지않게 찾아온다. 왜 하필 내가 겪어야할 상처가 이것일까 수없이 비탄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직 상처받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수용하고, 아픔이 무감각해질때까지 충분히 눈물을 흘려보내고, 다시 전진해나갈 용기를 스스로 피워내는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그 상처가 치유되는데 약정된 기간이 정해져있진 않아 어쩌면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아픔이 주어져도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나갈 용기를 생성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라는 것, 상처를 품고 살아가야할지라도 또다른 갈래의 희망으로 다시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인간의 위대한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의 또다른 인물, 보라의 고민도 인상깊었다. 남자친구가 있는 보라는 수경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사랑에 관한 정의에 대해 말한다.


 

“우리 둘의 감정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게 아닐 수도 있잖아. 우리는 서로가 늘 보고 싶고,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서로가 발전하길 돕고 있어. 근데 이게 사랑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키스했다고 사랑인가? 영원히 함께 있겠다고 맹세했다고 사랑인가?

 

아니야.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뭔지 정의내릴 수 없다고 생각해. 나아가 우리만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 308p

 

 

보라의 말처럼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에 대한 확신을 얻는 것은 절대 풀 수 없는 난제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현재 또는 미래 속의 사랑에 대해 추억하고 고민하며 때론 이 감정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찾고자, 때론 사랑이 초래하는 무수히 많은 소용돌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고자한다.

 

하지만, 사랑은 행위자체로 규정짓기엔 불가하며 그렇다고 감정에 대한 확실한 경계를 설정하는것도 애매하다. 그런 이유에서 보라가 내린 결론이 더욱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우리 스스로도 감정이 뭔지 정확히 정의내릴 수 없고,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 혹은 별도의 정의나 논리를 모두 배제하고 그냥 내 심장이 ‘사랑이야’라고 말하는것을 부정하고싶어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그순간이 바로 사랑일수도 있겠다.

 

수경의 가족들은 저마다 홀로 감내해야할 아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따뜻한 울타리도 빈곤이라는 차가운 그늘아래에서 온기가 희미해지기도 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없어 모두가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기적은 이미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미소지을수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다시 한번 나아갈 용기를 내었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기적은 시작되었고 더 큰 기적이 수경의 가족들과 우리들에게 찾아올 것이란 산뜻한 예감이 조금은 공허했던 내 심장을 관통해갔다.

 

    


컬처리스트 로고.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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