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취향의 십진 분류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으니까요.
글 입력 2022.03.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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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취향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삶의 총체, 수년간 쌓아 올린 삶의 빅데이터. 그동안 경험했던 모든 것들과 내 본질의 교집합이 곧 취향을 완성한다. ‘project 당신’을 통해 내 서재, 내 취향을 소개한다.

 

000부터 시작하는 도서관의 십진 분류처럼 카테고리를 나누어, 지금껏 쌓아온 빅데이터를 정리해보려 한다.

 

 

 

000. 총류


 

하늘.jpg

 

 

해가 뜰 무렵이면 닭이 우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평범한 유치원이 아니라 체능단에 다녔다. 태권도부터 발레, 수영, 축구, 골프 등 운동과 음악을 배웠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 도시로 이사를 했고, 그즈음 책을 많이 읽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찍 일어나서 막 떠오른 해님을 전등 삼아 청소년용 세계문학 전집을 한 권씩 읽었다. 다 읽은 책은 책장에 뒤집어서 끼웠는데, 빨리 모든 책을 뒤집고 싶어서 더 열심히 읽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읽은 『안네의 일기』, 『제인 에어』, 『주홍 글씨』 등이 지금의 독서 취향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무난하고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장래 희망이 초등 교사였지만, 고등학교 2학년 무렵 갑자기 광고인을 꿈꿨다. 관련 학과로 대학을 진학하여 공부하고 있다. 사진은 직접 찍은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100. 시간


 

눈을 떴을 때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주말 아침과 모두가 잠든 새벽을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도 무척 좋아한다. 온전히 홀로 보내는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글을 쓴다. 특히, 단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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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cancy (2021)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을 때의 그림이다. 순간의 감정을 그림으로 그려내면 그리는 동안에 부정적인 감정은 잠재우고, 긍정적인 감정은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다.

 

 

불안을 등지고.png

불안을 등지고 (2022)

 

 

매일이 바쁘다면, 갑자기 찾아온 여유는 오히려 불안을 일으킬 수 있다. 정말 쉬어도 되는지 자문하게 되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여유를 온전히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렸다.

 

이런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계정명은 '@draw_flaw'인데, 그림 대부분이 사람 내면의 흠집 난 부분을 표현하는 것 같다며 그림을 본 친구가 추천해준 이름이다.


 

 

200. 문화예술


 

경험한 만큼 세상을 대하는 시야의 반경이 넓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험을 중시한다.

 

그러나 물리적, 시간적 제약으로 직접 할 수 없는 경험이 있기에 문화예술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려 한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낀 사람의 그림,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가본 사람의 글,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전시 따위의 것들을 좋아한다. 문화예술을 즐기는 만큼 그것들에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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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레핀,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1883-1885


 

아들을 제 손에 잃은 아비의 텅 빈 눈. 내가 절대 경험하지 못할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회화의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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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못 보는 세상을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전을 좋아한다.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 것들, 나와는 멀리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보게 하고 나를 comfort zone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사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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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공연 장르를 볼 때는 항상 공간을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열정을 체감한다. 배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일으키는 전율과 커튼콜 후에도 진하게 남는 여운 덕에 이 장르를 좋아하게 되었다.

 

 

 

300. 책


 

잡식성 독서를 하고,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이다. 현대 소설, 세계 명작, 인문학, 사회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궁금한 분야가 있을 때는 관련 책을 읽는다. 최근에는 ‘시간’에 관심이 생겨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물리학 도서를 읽으면서,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라는 소설을 같이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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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에서 다른 책을 언급했을 때는 그 책도 찾아보는 편인데, 최근에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잠시 소개된 트렌턴 메릭스의 주장이 흥미로운 나머지 그가 쓴 『Objects and Persons』를 빌려왔다. 한국어 번역본이 없어서 직접 번역하며 읽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호기심이 귀찮음을 이겼다.

 

 

 

400. 진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초등학교 교사를 꿈꿨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지금껏 가져온 초등교사라는 장래 희망은 ‘장래 희망을 위한 장래 희망’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매년 초 장래 희망을 적어오라고 하고,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으니까’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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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진로에 회의를 갖던 와중, K-MOOC에서 미디어 관련 강의를 듣고 신세계가 열렸다. 어떤 분야를 진심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 처음이었기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중에서도 15초~30초의 순간에 사람을 설득하는 광고에 빠져들었고, 광고를 기획하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했다. 장래 희망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땐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왠지 장래 희망을 바꾸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장래 희망을 바꾸자는 선택을 한 이후, 당연히 큰일은 나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 찰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있다.

 

 

 

500. 팔레트


 

궁극적으로는 팔레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다채로운 색을 모두 수용하고, 그림을 그려내는 팔레트처럼, 내게 주어지는 경험과 도전을 내 것으로 흡수하고 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싶다. 내가 가진 팔레트에 더 다양한 색을 짜 넣기 위해, 치열하게 경험하고 꾸준히 배우려 한다.

 

 

 

600. 마치며, project 당신.


 

자기소개는 늘 어렵다.

 

나를 얼만큼이나 보여줘야 나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가능할지, 말을 고르고 골라 늘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한다. 일반적인 자기소개에는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어느 정도 투영하는 것 같다.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는 첫 과정, 첫인상을 만드는 과정이기에, 내가 보여지고 싶은 나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다.

 

진짜 나를 보여주기보다는 껍데기를 치장한 채 그 속에 숨어있는 기분이 든다. 본질만을 남기고 싶었다. ‘project 당신’에서는 본질을 드러내는 자기소개를 완성하고 싶어서 많이 고민했다. 도서관의 십진 분류는 000부터 900번 대까지 이루어져 있다. 남아있는 700, 800, 900번 대는 비워 두고 천천히 채워가야지.


길었던 자기소개를 이즈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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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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