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다.리' 열두 번째 이야기 : 누군가 꿈꿔 온 세상, 우리가 바꿔 가야할 세상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3.0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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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분주한 출근길 지하철. 장애인 단체 시위로 인해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오자 조용하던 열차 안이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또?”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하차하는 이들부터 “애꿎은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라며 날 선 목소리를 내는 이들, 그리고 시위대를 향해 서슴없이 공격적인 발언과 욕설을 쏟아내는 이들까지. 가뜩이나 ‘전쟁길’을 방불케 하는 출근 시간대에 벌어지는 시위는 어느새 ‘골칫거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때로는 열차가 출발하지 못하게 문을 막고 휠체어 바퀴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때로는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열차에 오르내리는 방식으로 두 달 넘게 이어진 총 29번의 시위들. (2월 23일 기준. 공식적으로는 마무리되었지만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의 숱한 뭇매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단체 아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계속해서 나섰던 이유는 그만큼 ‘실질적인’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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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울신문)

  

 

사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향한 투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작은 지난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최소한의 안전 관리지침과 안전장치 없이 운행되었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지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고처럼, 혹은 몰라도 되는 사고처럼 여기며 잘못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관계자들의 태도는 장애인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그렇게 ‘장애인이동권연대’(장애인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전신)이 출범하기에 이르렀고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되었다.


그로부터 약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긴 세월이 무색하게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물론,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장애계와 시민사회계의 각고의 노력 끝에 2005년에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규정하고 법적 보장의 필요성을 명시하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약칭 교통약자법)’이 시행될 수 있었고 기나긴 헌법 소원 끝에 서울 시내 지하철 엘리베이터 100% 설치와 저상버스 보급률 45% 추진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오랫동안 소관위 심사 상태로 계류되어 있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약칭 교통약자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극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희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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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투데이)

 

 

그러나,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장애계의 주장이다. ‘지켜져야 마땅한’ 것이라고 말하며 이동권 증진을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했던 정부 지자체들이 시행 직전에 갖은 핑계를 대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 수도권에서만 한해 5건 이상의 리프트 사고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서울시가 줄기차게 내세웠던 서울 지하철 1역사 1동선(출구에서 승강장까지 최소 하나 이상의 연결된 경로) 엘리베이터 설치 사업은 예산 문제로 차질을 빚고 있으며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 역시 당초 정부가 제시했던 42%에 한참 모자라는 약 28%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제적 차원에서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많은 기대를 받았던 교통약자법 일부 개정안의 경우 저상버스 도입 의무대상이 시내버스와 마을버스에만 국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광역이동지원센터 지원 관련 조항도 기존의 ‘의무조항’에서 ‘임의 조항’으로 갑작스럽게 수정된 탓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울러, 제정되지 못한 채 하염없이 계류되고 있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 △장애인 평생교육법 등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장애인의 권리 주체성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국가 및 지자체의 책무를 강조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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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Stock)

 

 

무엇보다, 그 어느 때보다 인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정작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은 매우 저조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실로 안타까울 수 없다. 미국에선 이미 1990년부터 미국장애인차별금지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DA)을 제정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명시하고 있으며 독일과 영국 역시 배리어 프리 좌석 확대를 시작으로 버스정류장의 인도 턱을 낮추거나 누구나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수동식 발판을 설치하는 등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대중교통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디자인에서 배제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떻게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더 잘 들리게 할 수 있을까요?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요? 디자인은 대단한 특권이지만 더 큰 책임이 뒤따릅니다.”


-시네이드 버크, <왜 디자인은 모두를 포함시켜야 하는가> (2017년 TED에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해 고안되고, ‘모두’를 향해 열린 디자인을 이야기한다. 장애의 여부를 넘어 보다 더 많은 이들이 그것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디자인인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아감’도, ‘달라짐’도 아니다. 그저 ‘함께 하는 것’이다. 당장의 피해를 입었을 사람들의 입장보다는 그 불편함을 오래도록 느껴왔을 사람들의 입장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우리가 되는 길이 아닐까. 문득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적힌 ‘대한민국의 내일, 국민의 코레일’이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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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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