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LT ER LOVE, 스캄 노르웨이 [드라마]

십대들을 통해 바라보는 노르웨이의 평등
글 입력 2022.02.2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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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마저 생소한 노르웨이 드라마가 있다. 노르웨이라는 국가에 대해 아는 것은 노르웨이산 연어가 맛있다는 사실과 복지가 좋은 선진국이라는 사실이 전부였던 내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독특한 억양의 언어가 들려오는 이 드라마 시리즈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가.


영국 드라마 시리즈 스킨스(SKINS)부터 넷플릭스에서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친 스페인의 엘리트들 까지, 세계 각국을 막론하고 10대들의 학교생활과 우정, 사랑, 갈등, 자아 성찰기는 드라마 시리즈에서 하나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여러 하이틴 영화와 드라마에서 계속해서 반복되어 이제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항상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그 뻔한 이야기에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공감하며 이것은 나름의 감동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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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배경으로 한 성장 드라마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에 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노르웨이어로 부끄러움(shame)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의 드라마 SKAM(이하 스캄)은 노르웨이 NRK에서 교육적인 요소를 넣은 드라마를 만들자는 제작 의도로 제작했고, 시즌 4까지 제작되었다. 생소한 노르웨이어라는 진입 장벽과 넷플릭스 등 대형 OTT서비스에서 제공되지 않는다는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쳐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여러 국가에서 리메이크되었을 뿐 아니라 그 대본이 노르웨이 국립 도서관에 전시되기까지 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드라마와 달리, 스캄은 오슬로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시즌당 한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택한다. 각 시즌의 주인공들이 겪는 고민부터, 미묘한 감정변화들과 혼자 고뇌하고 상대방과 대화하며 서툴게 풀어가는 그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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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클리셰적 요소가 다수 존재하는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스캄의 내용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등장인물 간의 사건이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캄은 방영 당시에는 등장인물들의 SNS 계정을 실제로 만들어 운영하고, 등장인물 간의 모바일 메신저 클립을 방영 시간에 맞추어 올리는 등 드라마가 가진 현실성과 드라마틱하지 않음을 바탕으로 팬들의 감정이입과 공감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스캄은 휘게(Hygge)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말로 국내에서도 유명해진 Hygge라는 단어 같은 분위기의 드라마다. 덴마크어와 노르웨이어로 편안함, 따뜻함, 안락함, 아늑함을 뜻하는 단어인 Hygge처럼, 스캄은 따뜻하고 아늑한 드라마이다. 담백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상태에서의 진정한 공감을 가능하게 만든다. 스캄 속에는 등장인물들이 함께 또는 혼자 보내는 소소하고 소박한 시간이, 방황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십 대들의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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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의 주인공 에바는 남자친구와 사귀게 되며 멀어지게 된 친구와의 인간관계, 그리고 남자친구와의 관계 사이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소녀다. 에바는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지 못해 계속해서 고민한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을 견디기에는 아직 자기 자신을 그만큼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소녀는 자신을 찾기 위해 잠시 남자친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시즌 1은 앞으로 이어질 시즌에서 얽히고 섞이게 될 여러 인연이 처음 마주치는 시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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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의 주인공 누라는 자신과는 너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물의 클리셰인 양아치와 사랑에 빠진 모범생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두 주인공 누라와 윌리엄이 보다 입체적이고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이다. 폭력 없이 평화가 있을 수 있다고 믿으며, 독립적인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누라와 평화는 폭력과 투쟁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 말하는 윌리엄의 연애는 가치관이 충돌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사랑은 사람을 바꾼다. 누라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 앞에서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는 방법을 배운다. 윌리엄은 먼저 사과하고 자신의 상처를 말하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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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3의 주인공 이삭은 게이이다. 이성애자 친구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란 소년은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조차 여러 부정의 과정을 거친다. 벽장 속에 숨어있던 소년이 밖으로 나온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음에도 그들이 함께하는 일은 순탄치가 않다. 이삭이 남자친구 에반 때문에 힘들어할 때마다, 이삭의 친구들은 아무런 편견 없이 당연하다는 듯 이삭의 연애 상담을 돕는다.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은, 벽장 속에 숨어있던 소심한 소년을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용기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병과 앞으로의 삭을 끌어안고 부딪칠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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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즌인 시즌 4의 주인공 사나는 무슬림 소녀다. 자유롭게 파티를 즐기고 술을 먹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사나는 자신이 믿는 종교에서 추구하는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다. 이전 시즌에서 다른 친구들이 연애 문제나 가치관의 문제로 고민할 때마다 가장 성숙한 조언을 건넸던 사나지만, 어쩔 수 없는 십 대인지라 자신의 가치관에 충돌하는 일이 생기자 힘들어하고 고민한다.

 

요세프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자신과 종교가 같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께 소개시켜 줄 수도, 마음 편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연애를 시작할 수도 없다. 익명의 누군가에 의한 사나의 종교에 대한 혐오 때문에 마음 아픈 일이 생기기도 하고, 생각 많은 사나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보내는 차가운 시선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속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사나는 외롭지 않다. 사나의 곁에는 사나의 일에 대신 싸워주고, 무슬림으로서 노르웨이에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기에 스캄 속 10대들은 방황하고 고민은 고독한 싸움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10대는 각자의 이유로 힘들다.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른다면, 이 고난을 함께 나누고 이해해주며 힘이 되어 줄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가장 큰 행운 아닐까. 스캄 속 가장 큰 판타지는 성숙하고 의리 있는 좋은 친구들이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런 친구들 없이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이들도 많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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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캄에는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녹아있다. 높은 복지 수준, 그들에게 주어지는 자유와 더불어 주어지는 책임과 타인에 대한 존중의 의무를 추구하는 잔잔하고도 자유로운 가치관이 녹아있다. 이는 드라마 곳곳에 등장하는 대화들, 불합리함과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을 통해 알 수 있다.


윌리엄과의 의견 차이로 힘들어하는 누라에게 그녀의 친구 사나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전쟁은 결국 오해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네가 폭력 없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것이 틀린 것은 아니며, 자신의 의지로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것에 있어 의견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독립적인 것이라고.

 

남자친구 에반이 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어머니와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은 멀리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삭에게 친구 마그너스는 자신의 어머니도 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마그너스는 이삭에게 에반의 이야기도 들어 보라고 부탁한다. 조울증은 뇌사가 아니라 단지 조울증일 뿐이라는 말과 함께.


이 외에도 누라가 윌리엄의 형 니콜라이로부터 알몸 사진으로 협박을 당했을 때도, 스캄은 수동적으로 휘둘리는 캐릭터를 그려내는 것이 아닌, 친구들과 함께 나라의 법을 인용해 누라가 당당하게 니콜라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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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캄은 인류애를 기반으로 한 평등을 드라마 전면에 내세운다. 우리의 삶은 사랑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평등은 사랑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인간을 사랑한다. 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사랑에는 성애로서의 사랑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정, 부성애, 모성애… 이 모든 것은 사랑이다. 인간은 서로를 사랑하며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살아갈 이유를 만들고 인간을 차별과 폭력에서 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평등은 결국 모두가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ALT ER LOVE – 모든 것은 사랑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사랑이다. 우리를 태어나게 하고, 때때로 죽고 싶게 만드는 것도, 그러나 결국 이를 용서하고 서로를 구원하며 다시 삶이 흐르게 하는 것 또한 사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끄러운 이때, 우리는 스캄이 주는 메시지를 다시 곱씹어보아야 한다. 시즌 4의 마지막 화, 마지막 장면에서 스캄은 사나의 라마단이 끝난 후 진행되는 파티에서 친구들이 사나를 위해 작성한 헌사를 들려주며 드라마를 끝맺는다. 그리고 이 헌사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사나에게, 이 헌사는 널 위한 거야.

이 헌사는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초대한 것이 내일의 미국 대통령을 무너뜨릴 것이기에 보내는 거야.

 

우리는 원칙을 이해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어.

왜 어떤 이는 가난하고 어떤 이는 부유한 걸까?

왜 어떤 이는 안전할 때 어떤 이는 피난을 가야 할까?

왜 어떤 이는 길거리에 침을 뱉을까?

그리고 왜 이따금씩 이로운 것을 행하려 해도 여전히 혐오를 마주하게 될까?

 

사람들이 포기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아.

선에 대한 믿음을 그만두는 것 또한 말이야.

그러나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사나.

이따금씩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어떤 이도 혼자가 아닌걸.

 

각각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큰 혼란의 한 부분이야.

그리고 오늘날 네가 하는 일들이 내일에 영향을 주게 될 거야.

그것이 정확히 어떤 영향인지, 모든 게 어떻게 맞춰져 가는지 말하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러나 네 행동이 미치는 영향은 항상 그곳에 있을 거야. 혼란의 어느 곳에.

 

백 년 뒤에, 모든 행동의 영향을 예측하는 기계가 생길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때까지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해.

 

두려움은 번져.

그러나

공교롭게도 사랑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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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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