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끄러움에 관하여 [사람]

글 입력 2022.01.2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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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회초리보다 따뜻한 물음이 더 강하다’는 생각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을 하면 매주 글을 하나씩 올려야 한다. 최소한의 약속인데 저번 주에는 그 약속을 어기고 글을 올리지 못했다. 좋은 글에 대해 고민하다가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에 이른 것이다. 재미있게 본 <루카>에 관해 쓰려고 글의 개요까지 적었는데 여기에 어떻게 살을 붙여 글을 만들어야 할지, 도저히 글이 적히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건 핑계일 뿐이지만 결론적으로 약속한 시각에 약속한 글을 올리지 않았다. 애를 쓰다가 결국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포기해버렸다.


에디터로 활동하면 달에 두 번, 기고했던 글을 모아 대표님께 보내야 한다. 2주가 지났으니 글이 두 개가 있어야 하는데 쓴 글이라고는 달랑 하나뿐이었다. 민망함에 눈을 질끈 감고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답신이 도착했다. 되받은 답신 속의 따뜻한 말이 내게 너무나 강한 인상을 남겨서 이번 글의 주제로 정하게 되었다.


나도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게 어찌 예뻐 보이겠는가. 내 마음에도 들지 않는 나를 제대로 마주하기가 싫었다. 만약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 혼을 내거나 지적을 했다면 ‘에잇!’ 하며 반발심을 갖고 더 엇나가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공부를 하라고 이야기를 들으면 더 공부하기가 싫어지는 그런 심리와 비슷하달까. '치기'(稚氣: 어리고 유치한 기분이나 감정)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자기 가시로 타인과 자신을 모두 찌르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삐죽삐죽 못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답신에서는 비판이 아닌 따뜻한 물음이 담겨있었다. 플랫폼과 함께하며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 아트인사이트에서 나의 성장을 위해 더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등을 물어보고 있었다. 혼나고 몰아세워져도 할 말이 없는 나를 외려 토닥이며 찬찬히 물어봐 주고 있었다. 매몰찬 지적을 받을 걸 감수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나를 생각한 물음에 마음이 와르르 쏟아진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감정은 아닐지라도 부끄러움은 아주 강렬했다. 그 감정 덕분에 피해왔던 나의 못난 모습을 스스로, 자율적인 의지로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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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과 태양>, <해와 바람>으로도 알려진 이솝우화 <보레아스와 헬리아스>에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북풍이 차가운 바람을 강하게 불수록 나그네는 옷을 꽁꽁 여민다. 해가 따뜻하게 내리쬐자 나그네는 옷을 벗어 던진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데에는 매몰찬 바람보다 뜨거운 햇살이 더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행동하게 하는 데에는 매서운 비판보다도 따뜻한 물음이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개 본인이 이미 가장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 가장 애를 쓰는 사람은 본인이고, 못난 자신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사람도 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못난 자신의 행동을 마주하기를 외면하고 도망치기를 선택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반대방향이 옳다고 말하는 것보다 멈춰 세우는 것이 더 우선이다. 그들을 멈추기 위해서 따뜻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 필요한 게 있는지, 괜찮은지. 들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도망가던 사람도 멈춰서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상태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결국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 아닌가. 아무리 주위에서 이야기한다 한들 가장 강렬하고 오래 남는 건 결국 스스로 깨우친 일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효과적이었고 새로웠던 방법인 ‘따뜻한 물음’을 비판과 지적 대신 하나의 방법으로 제안해본다.

 

 


‘죄책감’과 ‘수치심’의 차이 : 가져야할 부끄러움과 극복해야할 부끄러움


 

이번에 답신을 받고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관해서도 관심이 생겼다. 윤동주 시인이 말한 부끄러움(‘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과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묵직하고 뜨겁게 나를 지지는 감정은 부끄러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감정을 제대로 인지한다면,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기 위한 좋은 동력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부끄러움’에 관해 찾아보았고 부끄러움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죄책감, guilt

 

“공자는 법으로 다스리는 것보다 덕으로 다스리는 것이 우월한 정치임을 설명할 때 부끄러움을 끌어들였다. "정령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처벌은 모면할지라도 수치심이 없어지게 된다.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수치심도 있게 되고 감화도 받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논어> 위정 2-3). 여기서 감화를 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고치고 바로잡게 된다는 것과 같다. 부끄러움은 자발적 판단과 행동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 출처: [열린연단] 2014917. 부끄러움에 대하여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죄책감은 사람들이 행동을 개선하도록 동기화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어떤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때 긍정적이거나 좋은 행동을 하기 위해 더 노력한다. 그들은 교훈을 배우고 미래에는 더 나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어떤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손상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에도 기여한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죄책감과 수치심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수치심, shame. 

 

“내재화된 양심에 의해 유발되는 정서인 죄책감과 달리 수치심은 자신의 결점이 외부에 노출되었을 때 느끼는 정서로 정의되며, 개인의 부분적 행동보다는 자기(self)에 초점을 맞추어 더 고통스러운 정서로 여겨진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죄책감과 수치심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죄책감은 나의 잘못된 행동을 자각하였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알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꾸짖고 변하게 만든다. 부끄러움이 동력이 되어 바르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이 감정에는 중요한 일, 바른 일, 초심에 관해 물어보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하다. 이는 외부에서 길러지는 생각이 아니라, 옳은 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리면서 내면에서 생겨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면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므로 모름지기 ‘가져야 할 부끄러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느낀 감정과 윤동주 시인이 말씀하신 부끄러움은 이 종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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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수치심은 나의 행동이 아닌, 나의 존재, 나의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 생기는 감정이다. 남들에게 보이는 내가 나약하고, 못나고, 못하다고 생각하며 느끼는 감정인 것이다. 앞선 죄책감과 달리 수치심은 본인의 옳음에 대한 기준으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내면화한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삼는다. 자신이 만들어낸 족쇄에 스스로 갇히는 셈이다. 수치심은 자신을 한정시키고, 더 용감한 일을 해볼 수 있는 본인을 가로막고, 작은 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한다. 그러므로 이는 ‘극복해야 할 부끄러움’이라 할 수 있겠다.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하 거나, 춤을 춰야 하는 상황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건, 못하는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냥 춤을 좀 못 출 수도 있는 건데, 그 작은 부분 때문에 나란 전체가 못난 사람으로 비춰질 것만 같았다. 사실 춤을 좀 못 춰도 나란 사람이라는 가치에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닌데 말이다. 모든 능력치가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감정이 ‘수치심’이며, 이 부끄러움은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가져야 할 부끄러움으로 자신을 바르게 만들어가고, 극복해야 할 부끄러움을 떨쳐내며 당당하게 살아갈 나와 당신의 나날을 응원한다.

 

 

[이진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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