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걷는 자유는 당연하지 않다

글 입력 2021.12.1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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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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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 자주 맴도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소리 내 말해보진 않았지만, 텅 빈 진공 속에 조용히 울리는 음성이 있다. 걷는 자유는 당연하지 않다. 방에서 주방으로 걸어가 물을 마시는 사소한 순간부터, 매일 학교와 직장으로 향하는 반복되는 길, 기대했던 특별한 만남으로 가는 순간까지, 발은 묵묵히 다음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당연한 것 중에도 너무 당연해서 몰랐지만 걷는다는 행위, 걸을 수 있다는 자유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어떤 것의 소중함, 특별함, 대체될 수 없다는 특성은 대체로 그것이 부재할 때 알게 된다. 두 발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긴 건 어릴 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외에서 살며 집 앞 수영장을 열심히 다니던 나는 한국으로 돌아올 즈음 발바닥에 생긴 어두운 점을 처음 발견했다. 병원에서는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말과 함께 더 퍼지기 전에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큰 고통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취 주사를 맞았고, 다행히 머지않아 건강한 발을 되찾는다.


그 후로도 종종 발과 관련된 질환이 찾아왔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오는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고, 족저근막염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완치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워 충격파 치료와 물리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오가는 날들이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이듬해에는 침대에서 일어서다 부딪힌 벽에 발가락을 다쳐 붕대를 둥둥 감아야 했다. 뛰다시피 해야 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고, 학교를 다니는 일도 버거워졌다. 캠퍼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물에서 수업을 듣고, 연이어 목발을 짚고 다음 수업이 있는 건물로 이동하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인 15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 찰나인지를 처음 느꼈다.


모든 발과 관련된 질병을 떠나보냈지만, 올여름 다시 한꺼번에 몰려왔다. 새해를 기다리는 지금까지 족저근막염과 발바닥에 생긴 사마귀, 다친 인대 치료를 번갈아 하다가 다시금 생각했다. 걷는다는 것에 대해. 걷기 불편한 사람을 힘들게 하는 도시의 작은 부분부분. 크고 작은 턱과, 튀어나온 채 다듬어지지 않은 보도블록, 경사진 길 없이 계단만이 가득한 수많은 장소들. 그리고 이 도시에서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배제되는지에 대해.

 

 

 

끊이지 않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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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시간 충무로역에서 4호선을 기다리다 보면 종종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 장애인 시위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공지였다. 몇 년 전 학교로 향하는 등굣길에도 들렸던 음성이 시간이 흘러도 되풀이되고 있었다. 전동 휠체어로 열차를 타고 내리며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장애인 시위는 주위 사람들에게, 또 인터넷에서도 뜨거운 토론 주제로 떠올랐다. 장애인의 상황을 듣고 그 곁에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장애인이 아무렇지 않게, 쉽게 이용하는 대중교통, 나아가 이동권이 장애인에게 얼마나 보장되지 않았으면 그랬을까 말했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등교, 출근, 바쁜 길에 열차가 한참 지연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한 욕설과 폭력적 언행까지 더해졌다.

 

지하철을 관리,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어떻게 했을까? 지난 11월 13일 시위를 연 전국장애인 차별 철폐연대 대표 등 4명을 상대로 3천만 원 이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 사유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불편함을 막기 위함이라고 했다. 12월 6일에는 시위가 열릴 예정인 혜화역 엘리베이터 가동을 멈췄다. 전국장애인 차별 철폐연대 사무실과 가장 가까운 2번 출구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멈춰, 또 한 번 이동권을 제한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부딪히지만, 응원과 비난의 말을 하기에 앞서,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위를 연 전국장애인 차별 철폐연대는 전국의 장애인 단체와 190여 개의 지역 시민사회 및 문화예술단체 등이 모인 연대체이다.


그들의 시위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작되었다. 전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말했다. 현재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보급률은 92.2%에 이른다. 하지만 저상버스는 보급률은 올해 41.1% 도입을 목표한 것과 달리, 30% 미만인 상황이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사용하던 장애인 노부부가 사망한 이후,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20년간 이어져왔지만 여전히 그들이 겪는 이동권 문제와 안전장치가 없어 위험한 리프트로 인한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정부에서 2017년 발표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고, 더 포괄적인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은 발의하였지만 계류된 상태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이어져온 것이다.

 

 

 

너와 나, 모두가 요구할 권리


 

시위를 하게 된 배경을 알게 되면서, 과연 무엇이 우선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바쁜 일정과 다음 스케줄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의 기본 권리인 이동권과 비교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갖는 다양한 권리는 모두 귀중하지만 생명과 직결된, 일상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권리는 반드시 우선되어야 한다.


화살은 바쁜 출근시간 시간을 지체하게 만든 장애인 시위가 아닌, 생활의 기본이 되는 이동권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어 왔음에도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지 않은 정책 담당자들에게 향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시위로 인한 지각을 상사와 교수님이 용납해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원인은 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의 삶에 무관심하고 비장애인만을 모든 시설과 제도의 기준으로 삼았던 사회에 있다. 그 안에는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과, 그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보지 않은 우리 개개인이 있다.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학교에서 프랑스어 강의실에 도착해 교수님을 한참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먼 지역에 살아 기차를 타고 오시던 교수님이 오시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집으로 향했다. 기차 파업이 종종 있던 도시였고, 그날도 파업 소식을 들었기에 그랬다.


다음 시간 만난 교수님께 그날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파업이 많은 도시에서 사는 게 힘들고 짜증 나지 않은 지 물었다. 교수님은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의 파업으로 화를 내면 안되지, 그건 그들의 권리이고, 나도 필요한 순간 파업을 외칠 수 있으니까! 그 이야기에 놀랐던 마음이 아직 선명하다.


자유롭게 ‘권리를 주장할 권리’를 모두가 공유하고, 내가 그런 것처럼 타인의 권리 주장을 존중하는 사회. 더디게 나아갈지라도, 나의 것만큼 타인의 것이 소중함을 알고, 배제되는 사람을 포용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를 소원하는 마음이 더 널리 퍼져야 한다고, 그래서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묵묵히 응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한 글>

프레시안 - "이번에 내리실 역은 '이동권역'입니다"

안전신문 - "지하철 출근길까지 막아선 시위 장애인 단체... 원하는 것은?"

한국일보 - "장애인 시위 핑계 대다니" 엘리베이터 멈춘 서울교통공사에 비판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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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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