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을 잃은 우리가 남은 생을 사는 방법 - 포르투갈의 높은 산

상실할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글 입력 2021.12.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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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S는 하나뿐인(끝까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사랑을 잃고 물밑에서 허우적대다가 자아탐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그러면서 내게 자아탐구에 필요한 지침서로 유명한 <있는 그대로:침묵의 큰 스승, 마하리시의 가르침>을 사야 할지 물었다.

 

나는 어차피 읽지도 않을 것 같은 그 책을 사라고 권하기 보다 내게 네가 얼마나 고유한 존재인지 그의 사소한 습관들을 들어 설명했다. 너는 여행지에 가면 자고 일어나자마자 조식을 찾는다고, 평소에는 절대 듣지 않는 노래를 화장실에서 샤워할 땐 꼭 듣는다고, 산미 있는 커피는 한 입도 대지 않는다고, 이 모든 습관들을 조합한 건 내가 만난 사람들 중 너뿐이고 너는 내게 있어서 누구도 대체불가능한 존재라고. S는 기뻐했다.

 

 

 

1. 사랑은 집이다


 

사랑을 잃고 자신을 잃어버린 건 S뿐만이 아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는 총 3부에 걸쳐 사랑을 잃은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랑을 잃고 절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얀 마텔에 따르면 사랑은 집이다.


“사랑은 방이 많은 집이다. 사랑을 먹이는 방, 사랑을 즐겁게 하는 방, 사랑을 씻기는 방, 사랑에게 옷을 입히는 방, 사랑을 쉬게 하는 방. 이 방들은 또한 웃음을 위한 방, 이야기를 듣는 방이거나 비밀을 털어놓는 방이거나 심통이 나는 방이거나 사과하는 방이거나 단란함을 위한 방이 될 수 있다도 있다. (...)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p.35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집을 잃은 세 사람의 이야기다. 1부는 아직 자동차가 보편화되지 않은 1904년, 2부는 1939년, 3부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각각 독립적인 사건 혹은 이야기라고 보일 수 있지만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며 사랑을 잃은 사람들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장 두드러지게는 1부에서 주인공이 차로 치여 죽인 아이가 2부에서 등장인물의 아들로 나오는 식이다. 목차 또한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으로 구성되어 집을 잃고 되찾는 듯한 과정을 내포한다.

 

 


2. 상실에 대처하는 보편적인 자세: 뒤로 걷기



"바람, 비, 태양, 벌레들의 습격, 침울한 타인들, 불확실한 미래 등을 감당하는 데에는 뒤통수나 재킷의 등판, 바지의 엉덩이 부분같이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들이 더 적합하지 않냐고. 그런 것들이 우리의 보호막, 우리의 갑옷이라고.(...)" p.18

 

자신의 중심을 잃은 자는 어떻게 하는가. 1장에서 일주일 사이 부인, 아들,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 ‘토마스'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1년간 뒤로 걷다가 16세기 신부가 남긴 십자가 조각상을 찾겠다고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그 십자가 조각상은 신부의 일기에 따르면 예수의 얼굴이 아닌 침팬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에게 복수 아닌 복수를 하기 위해 기독교를 발칵 뒤집어 놓을 그것 (토마스는 ‘보물'이라고 부른다)을 찾으러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간다.

 

하지만 험난한 여정 끝에 도착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사실상 너무나도 낮은 언덕, 허상일 뿐이었고, 침팬지 조각상을 발견했으나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침팬지에게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그리고 토마스는 포르투갈에서 막 돌아가려는 길에 교통사고로 한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며 비극을 맞이한다.

 

그는 상실에 대처하는 것에 처절히 실패한다. 침팬지보다 자신이, 인간이 더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장에서 아이를 잃고 마찬가지로 뒤로 걸으며 슬퍼하다 죽은 남자가 나온다. 여인은 죽은 남편을 가방 안에 담아 부검하는 사람에게 데려가 남편의 몸을 갈라달라고 한 뒤, 남편 몸 속에 쏙 들어가 꼬매달라고 한다. (다소 그로태스크적이고, 이 구절에서 미친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생생하게 마술적으로 그려졌다.) 그는 생을 함께 마감하면서 상실에 대처한다.




3. 사랑을 잃은 우리가 남은 생을 사는 방법


 

우리가 사랑을 잃고, 우리 자신을 잃고도 남은 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책에서 계속 반복되는 문장이 있다. "우리는 진화된 유인원일 뿐 타락한 천사가 아니다." p.273

 

3장의 주인공 피터 토비는 아내를 잃고 슬픔에 허우적거리다가 침팬지와 같이 살기 시작하며 상실을 극복한다. 얀 마텔은 406페이지에 걸쳐 사랑을 잃고도 집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기억을 뒤로 걷는 대신 '삶의 순간'을 발견하는 것을 도와줄 무언가가 있으면 사랑을 잃어버리고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다시 집을 찾을 수 있다고. 또, 상실에 빠진 사람에게 필요한 건 말이 아니라 완전한 포옹임을 동물을 통해 알려준다.

 

"그는 시간이라는 경주에서 족쇄를 풀고 시간 자체를 음미하는 법을 배웠다. (...) 처음에 그는 한눈을 팔고 싶었다.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 머릿속으로 같은 영화를 돌려보고, 후회하고 조바심치며 잃어버린 행복을 갈망하곤 했다. 하지만 강변에 앉아 빛나는 휴식의 상태에 젖는 데 점점 익숙해진다. 그러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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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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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eholyland
    • 너무 좋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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