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영혼의 쉼터는 어디인가요? [문화 전반]

200회를 맞이한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글 입력 2021.12.13 17:3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팟캐스트 '독일 언니들'


 

팟캐스트를 처음 듣기 시작한 건 20살 여름이었다.

 

아이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며 팟캐스트 어플을 자연스럽게 발견하였다. 주로 듣똑라, 지대넓얕, 이동진의 빨간책방 같은 교양 팟캐스트를 들었다. 상식이 많은 사람이고 싶었고, 컨텐츠들을 하나씩 독파하는 기분이 좋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폰의 가능한 모든 기능을 탐험하던 시기였다.

 

경기도에 거주할 당시여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때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팟캐스트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간혹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배우는 팟캐스트도 들었다. 언어에 대한 욕심은 크지만 의지는 부족했고, 불타는 마음으로 첫 회를 들으며 매일 한 회씩 듣겠다 다짐했지만 금세 포기했다.

 

그러다가 독일 언니들이라는 팟캐스트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독일 유학 생활 경험담을 빙자한 코미디 팟캐스트였다.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맷과 드라마퀸이 진행자였다. 이들은 한국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간 유학생이었다. 대학 시절 개그 동아리 에피소드, 맨키니 에피소드, 틴더 에피소드. 내가 기억하는 독일 언니들의 에피소드가 늘어갔고, 내 삶에서 언니들이 차지하는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팟캐스트 독일 언니들은 22화로 막을 내렸다. 맷이 한국으로 귀국했고, 드라마퀸은 독일에 남았기 때문이다. 맷은 스탠딩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품고, 한국에 왔다. 맷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 ‘영혼의 노숙자’라는 새로운 이름의 팟캐스트를 홀로 진행했다.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감독 김보람, 맷의 친구들인 뿌수미, 굉여, 총장딸, 유니콘, 소설가 박상영, 맷의 친오빠 소쿠리 쥰이 게스트로 등장했다. 나는 모든 에피소드를 두 번, 세 번 반복해 들었다.

 

 

 

다양한 모양으로 사는 사람들 이야기


 

131.jpg

 

21살, 독립한 뒤로는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를 BGM처럼 깔아두고 생활했다. 진행자 맷은 독일에서는 한국에 가면 집에 돌아간 기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한국에서도 안정감이나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영혼의 노숙자라는 제목은 그렇게 탄생했다.

 

독립한 뒤로 외로웠고,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기분이라 외로움이 조금 해소됐다. 사람이 그리웠지만 막상 사람과 함께 있으면 우울해졌다. 그 간극에서 팟캐스트는 나에게 치료제 같은 것이었다.

 

팟캐스트 한 회당 길이는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였다. 새벽 2시부터 침대에 누워 잠을 자보자, 생각하고 멍하니 팟캐스트를 들으며 낄낄대다 보면 새벽 6시가 되었다.

 

에피소드 세 개는 금세 지나갔다. 팟캐스트의 게스트들은 주로 여성 창작자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만든 영화나 책 혹은 사회단체를 멋지게 자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우울과 불안과 무기력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안을 긍정하게 됐다. 우울해도 잘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에는 다양한 모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로 담긴다. 청취자의 사연이나 게스트들을  통해 정상으로 치부되는 삶이 아닌 다른 경로를 연구하고, 개척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상상할 기회를 주는 컨텐츠는 흔하지 않다.

 

 

 

영혼의 쉼터


 

나는 언젠가부터 새벽 산책을 시작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에어팟을 귀에 꽂고 집 밖으로 나갔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걸으면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집 근처 복잡한 골목을 빙글빙글 돌다가 술집 거리를 지나,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어가 새로 입고된 아이스크림을 구경했다.

 

따릉이 프리미엄 정기권을 7000원을 지불하고 구매한 뒤로는 새벽에 따릉이를 타고 조금 더 먼 곳으로 나갔다. 청계천 자전거 전용 도로나 중랑천 자전거 길까지 달리다가 돌아왔다. 자전거를 타 볼 힘을 낸 건 뮤지션 이랑의 노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의 가사 때문이었다.

 

뮤지션 이랑도 영혼의 노숙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무기력감이나 공포심이 찾아올 때면

나는 우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 달렸다

나처럼 우는 방법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어딘가에 돈을 내고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의 새벽 라이딩은 꽤 여러 번 위험한 순간에 봉착했다. 지도를 보고,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고, 술 취한 사람들에게 여러 번 봉변을 당할 뻔했다. 힘겹게 집으로 돌아오면 그저 사고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나는 잠이 안 올 때마다 자전거를 탔다. 그래서 거의 매일 새벽 따릉이를 빌렸다. 팟캐스트를 들으며 웃다가 울면서 가보지 못한 먼 곳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는 잠을 자든, 자지 않든 상관없었다. 식욕이 돋았고,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길고 외로운 우울의 터널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그리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시기에도 셀럽맷의 목소리는 든든하게 나의 모든 여정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함께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셀럽맷입니다.

지난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영혼의 노숙자> 오프닝 멘트

 

 

2021년 12월 5일, <영혼의 노숙자>가 200회를 맞이하였다.

 

지난 4년여의 시간, 셀럽맷의 목소리는 수많은 청취자에게 영혼의 쉼터가 되어 주었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맷의 목소리로 단단하게 엮여 비대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연대의 감각은 새롭고, 특별하다.

 

셀럽 맷의 팬클럽 '맷집'은 영혼의 노숙자 200회를 맞아,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영혼의 노숙자> 게스트와 맷집의 축전을 모았다.

 

언젠가 <영혼의 노숙자>를 들으며 길을 걷다가 피식 웃음이 나서 킥킥 웃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는 나를 보며 함께 웃어주었다.

 

영혼의 노숙자가 나에게 전염한 웃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고 싶다. 그러니 권한다. 아직 <영혼의 노숙자>를 모르는 그대들이여, 한번 청취해 보시라.

 

 

 

072C7ABE-202A-4BEE-AFE0-D856B541DC9B.jpeg

 
 
[최유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26684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