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흑백의 미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11.3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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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장미, 푸른 하늘, 초록빛 나무들... 각각의 색깔들이 모여 생기를 더해주는, 컬러풀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에 비하여 '흑백'은 검은색의 짙고 옅음으로만 이루어진 색의 조합이다. 다양한 색깔의 세상에 흑백의 필터를 끼얹어 회색조로만 이루어진 세상을 만들어낸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리고 왜일까? '흑백’의 이미지는 본래 여러 색깔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를 사진이나 영상 등 다른 형태로 재현해 내는 데 있어 발생하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등장했다.

 

세상을 우리 눈에 보이는 색깔 그대로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내는 기술이 발명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컬러 사진이나 컬러 영화의 기법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흑백으로 된 이미지만으로 실제를 표현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흑백으로 된 이미지는 우리에게 ‘예전의 것’, ‘고전적인 것’이라는 분위기를 안겨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기술의 한계로 인한 차선책에 불과했던 흑백이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흑백 이미지가 주는 특별한 감성은 표현물에 옛적인 느낌을 부여해 새로운 효과를 나타내 주기도 하고, 모던하고 시크한 터치를 더해 주기도 한다. 이에 따라 흑백은 생활 속에서 점점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흑백 사진 찍기,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흑백 영화, 새로운 패션 트렌드가 된 흑백 패션, 그리고 흑백으로 칠해진 새로운 생활 공간까지. 현 세대를 사로잡은 ‘흑백의 미’는 무엇일까.

 

 

 

옛 감성 가득 담아 찰칵, “흑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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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대릉원 사진관


 

전문 사진관처럼 세팅된 장소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리모컨을 이용해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셀프 사진'이 작년부터 시작되어 한창 유행 중이다. 포토그래퍼가 직접 찍어주는 사진보다 저렴한 가격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찍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흑백 필터를 사용한 ‘흑백’ 셀프 사진이 유독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꼭 셀프로 찍는 사진이 아니더라도 사진관에서 흑백 사진 찍기는 친구들과 추억을 남기는 놀거리이자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컬러 사진을 이길 수 있었던, 흑백 사진만이 갖는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흑백 사진은 과거의 사진 기법이었다는 점에서 옛 감성을 끌어내 준다. 흑백으로 된 사진은 왠지 모르게 오래 전에 찍은 것이라는 느낌을 주고, 그렇기에 함께 흑백 사진을 찍은 사람들 사이의 오래된 관계나 추억을 상징하게 된다. 즉, 현재의 사진에서 과거의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유의 옛 곡 리메이크 앨범인 ‘꽃갈피 둘’에서도 흑백 사진을 활용하여 과거 곡에 대한 리메이크 음악이라는 의미를 잘 살려 냈다. 또한, 컬러 사진과는 달리 흑백 사진은 보다 단정하고 정돈된 느낌을 준다는 장점이 있다. 사진을 찍어도 색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무채색의 깔끔한 옷을 입고 흑백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컬러 사진에 비해 단정하고 성숙한 느낌을 자아내며 차별적인 완성품을 만들어 낸다.

 

알록달록한 컬러 사진 촬영이 가능해진 지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흑백 사진은 전문 포토그래퍼들이 자신의 작품에 특별한 느낌을 더하고 싶을 때 부여하는 효과로 주로 쓰였다. 그러나 현재 흑백 사진만의 특별한 감성은 많은 대중들에게 인정받아 다양한 일상 사진에서 사용되고 있다.

 

 

 

새로움을 표현하는 방법, “흑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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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한 ‘흑백영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흑백영화에서 컬러영화로 넘어가는 시기는 가장 뚜렷하게 시각적으로 현대 영화와 고전 영화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통해 영화 시장이 변화하였고, 관객들 또한 컬러영화를 더 익숙하게 여기게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와 함께 흑백영화는 우리에게 옛 문화시대의 산물의 대표적인 주자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제작되고 상영되는 흑백영화들을 발견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도 보편화되어 있고, 관객들의 눈에서도 익숙해진 컬러감을 덜어내고 흑백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흑백 영화로 발매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컬러와 흑백 에디션을 함께 발매하는 방식이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영화는 ‘너나 잘 하세요’라는 명대사로 익숙한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이다.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DVD판을 발매하면서 영화를 흑백처리하는 기술을 활용하였다. 주인공의 감정 변화에 맞추어 색이 덜어지는 장면을 영화 속에서 활용하는 점에서 감독의 의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복수심이라는 강렬한 감정이 정화되는 순간을 흑백으로 표현한 것은 흑백이 갖고 있는 무던함을 잘 활용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강한 색감과 함께 뒤섞이는 감정들이 흑백으로 바뀌면서 정화라는 단어에 대해 시각적으로 보여준 효과라는 점은 독특하면서도 감독의 의도가 잘 들어나는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감독의 의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따로 흑백 에디션을 표현한 사례와 달리 전체적인 영화의 감정을 흑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한 사례로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을 흑백 영화로 표현한 <동주>에 이어 흑백 영화로 연출된 <자산어보>를 들고자 한다. 영화는 1800년대 조선 후기 신유박해로 귀양길에 오른 ‘정약전’과 신분도 가치관도 다른 ‘창대’가 벗이 되어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두 인물이 서로를 이해하며 공감하고 깊어지는 감정선은 흑백영화의 장점인 오로지 영화 속에 담겨진 의미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통해 관객에게 더 절실히 느껴지게 된다. 이준익 감독에 따르면 흑백영화로 연출한 이유의 키워드는 ‘특별한 시선’으로 잡을 수 있다. “영화 배경이 1800년대잖아요. 특별한 시선이 필요했습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정약전의 《자산어보》 등 역사의 소중한 순간을 담아내는 데 흑백이면 좋겠더라고요. 요즘같이 흑백 영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흑백 영화는 오래된 것의 재현이 아니고 특별함으로 강조되어 다가갈 거라 생각했어요.” 이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흑백은 오래된 것의 산물이 아닌, 특별한 경험으로 변화되어 관객에게 다가가게 된다. 흑백을 통해 주인공의 감정선을 더 깊게 받아드리는 관객들은 흑백이라는 장치를 영화 상영 시간 동안 영화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적 설명을 보았을 때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흑백영화의 미학적인 점은 ‘과거’이자 ‘새로움’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기술이기에 현재에는 흔하지 않게 받아 들여지는 흑백은 오히려 관객들에게 새로움으로 다가가게 된다. 또한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대사나, 연출 외에도 영화가 흑백으로 상영되는 시간 동안 오롯하게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는 흑백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와 감독이 선택적으로 표현한 하나의 방법으로 흑백 영화가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 누구보다 시크하게, “흑백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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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에서도 '흑백의 미'는 빛을 발한다. ‘올블랙 패션’이라는 이름의, 모든 아이템을 블랙으로만 매치하는 패션 트렌드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크게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리시한 패션 스타일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최근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그 사이의 흑백 컬러들을 함께 매치하는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이전의 올블랙 트렌드와는 차별화된 '흑백 패션'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패션에서의 흑백은 ‘블랙앤화이트룩’, ‘무채색 코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특히 10~20대 사이에서 패션 트렌드로 떠오르는 중이다. 실제로, 의류 쇼핑몰 플랫폼인 ‘지그재그’의 쇼핑몰 랭킹을 보면, 블랙 또는 무채색 아이템을 메인으로 하는 '블랙업’, ‘메이비베이비’ 등 시크 스타일의 쇼핑몰이 10~20위권 안에 들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일명 ‘시즈니 앨범깡룩’이라고 불리는 스타일을 통해 이러한 양상을 더욱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시즈니’란 아이돌 그룹 NCT의 팬덤 이름으로, 시즈니가 많이 입는 스타일이라는 뜻의 이 룩은, 블랙과 화이트의 조합으로만 코디하는 캐주얼한 스타일이다. NCT의 팬덤이 주로 10~20대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특정 집단에게 한정된 방식이라기보다는, 10~20대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흑백 패션의 멋 역시 깔끔하면서도 시크한 느낌을 준다는 흑백의 장점에서 찾을 수 있다. 소위 ‘힙한’ 패션 룩으로 자주 쓰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어려운 색 조합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다는 것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생활 속 새로운 장치 “흑백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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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nu_dake

 

 

마지막으로 우리 생활 속에 등장한 흑백 라이프를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은 <젠틀몬스터>의 경우 브랜드를 표현하는 방식의 메세지로 흑백을 활용하였다. <젠틀몬스터>가 아이웨어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누데이크 도산점>으로 디저트 시장에서 주목받는 것은 그들이 중시하는 ‘퓨처 리테일’을 오롯하게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퓨처 리테일의 목적성은 명확하다. 공간에서 제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행위를 이끌어내는 것. 그러한 뚜렷한 목적성을 갖고 있는 ‘누데이크 도산점’은 흑백을 활용한 검은색 디저트를 단순히 판매하는 디저트로만 활용하지 않았다. 디저트들들 곳곳에 배치하여, 그들이 판매하는 디저트가 하나의 장식적인 요소로 사람들의 눈길을 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자연스럽게 디저트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흑백의 디저트를 구경하기 위해 공간을 돌아다니게 되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모든 디저트가 갖고 있는 특징에 주목하게 된다. 또한 디저트가 갖고 있는 색감이 검은색, 백색, 초록색 등 직관적으로 구성되어 각 제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고객들은 마치 전시회 관람객처럼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된다.

 

공간 또한 화려한 색감을 사용한 것이 아닌, 디저트에 집중할 수 있는 직관적인 색상으로 가게를 구성하여 디저트와 조화를 이룬다. <어썸마운틴> 또한 절제된 색감을 통해 카페를 연출하였다. 그 중 출입문 맞은 편 벽면을 가득 채운 흑백의 산수화는 가오픈때부터 SNS상에서 주목을 받던 인테리어 요소 중 하나이다. 절제된 색감을 쓴 카페에 그려진 산수화는 카페가 지향하는 색감과 느낌을 고객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오히려 화려한 색감이나 장신구가 아닌 절제된 느낌의 흑백을 잘 활용하여 전체의 분위기를 고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근 주목을 받으며 열린 후지시로 세이지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 또한 흑백을 활용한 작가의 작품 제작법을 알 수 있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후지시로 세이지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카게에 제작법을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생소할 수 있는 ‘카게에’는 밑그림을 먼저 그린 후 셀로판지를 잘라 붙인 후 조명을 활용해 생긴 그림자와 음영으로 작품을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흑과 백으로 표현하는 작품인 만큼 강조하고자 하는 대상은 빛을 통해 선명한 모양을 띄게 된다. 그 외의 요소들은 그림자로 흐릿하게 표현된다. 카게에가 가장 잘 활용된 작품 속 주인공들은 밤도깨비이다. 작가의 상상 속 그들의 일상은 흑백이라는 요소 속에서 자연물과 대비되며 극명하게 표현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작가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요소에 몰입하게 만들며, 관람객에게 각자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작품을 감상하게 만든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잊혀지던 ‘흑백’이 새로운 의미를 덧입어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시대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오래된 고전으로 여겨지던 클래식한 흑백이 이제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현대적인 표현 방법으로 다가간다는 점은 특별하게 여겨진다. 또한 잊혀지던 흑백이라는 감성이 다시 살아나 작가나 브랜드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요소를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 또한 흑백이 갖게된 새로운 표현력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의미, 장치로 흑백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만큼,  이제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색감과 재해석될 장치들은 무엇일지 궁금증과 기대감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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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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