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처받은 어른아이 [영화]

독립영화 <영주>
글 입력 2021.11.1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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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이답게 굴어야 한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마냥 천진난만한 아이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한 이들도 있다. 어른들과 사회에 상처받은 아이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감히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영화 <영주>에서는 어른과 아이에 경계에서 잔혹한 세상과 홀로 맞서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영주>

 

예술, 독립영화 

장르: 드라마

상영 시간: 100분 55초

개봉일: 201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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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배우 김향기가 나온다는 사실에 끌려 시청한 후에야 독립영화라는 것을 알았다.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한 줄 소개 문구가 <영주>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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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다. 20살 영주는 부모님이 떠나 어려운 집안 형편 속에서 자신보다 어린 남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하러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사건·사고로 인한 합의금, 대출사기 등으로 더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이 찾아온다.

 

결국, 낭떠러지에 내몰린 영주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가해자들을 복수심과 호기심에 찾아간다. 하지만 영주는 그들에게서 부모의 따뜻함과 온기를 느끼며 숨통을 쉬게 된다. 부모를 죽인 가해자와 함께 있다는 불안감. 그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영주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겪게 된다.

 

 

 

영화 Point 1: 영주의 모습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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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의 후줄근한 옷차림에 항상 빠지지 않는 분홍 카디건. 애착 있게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엄마의 유품이라는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날이 더워도 추워도, 언제나 변함없이 입고 다니던 분홍 카디건은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만든 가해자의 아내 향숙에 의해 바뀌게 된다.

 

깨끗하고 하얗고 예쁜 점퍼. 항상 춥게 입고 다니던 영주가 안쓰러워 옷 한 벌 해주고 싶어 사준 향숙의 마음을 영주는 처음에 거절하지만 마음에 들어 한다. 그 후 영주는 영화 후반부까지 새로운 점퍼만을 입고 등장한다. 머리도 언제나 대충 손질한 단발머리에서 향숙의 손길에 의해 예쁘고 다양하게 바뀐다. 포니테일, 반 묶음 머리, 예쁜 머리끈.

 

대단히 비싸고 소중한 물건들이 아니지만, 이는 가해자 가족들을 향한 영주의 복수심, 분노가 따뜻함과 애정으로 변화되어감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 나이 또래 여자아이들이라면 당연히 누리고 살아왔을 “엄마의 다정한 손길, 관심, 따스함”들에 낯설었던 영주. 낯선 따스함과 애정 속에 그냥 이대로 지내고 싶다는 그녀의 가슴 아린 상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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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Point 2: 긴 클로즈업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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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의 흐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영주의 내면 심리를 오래 살펴볼 수 있는 긴 클로즈업 샷이다. 동생의 사건·사고, 사기, 가해자를 향한 복수심, 슬픔, 심란함, 불안함 등 영화 내에서 영주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는 신이 많다.

 

어떤 일에도 계속 의연하게 견뎌내려는 그 어린 어른의 눈빛, 입술의 떨림, 볼의 긴장. 그녀의 작은 변화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감정 장면에서 몇십 초 이상의 긴 시간이 흘러간다. 긴 시간 동안 나는 저절로 영주의 심리 상태에 몰입하게 되고, 함께 아슬아슬함을 느꼈다. “그래 견뎌내야지”와 “어떻게 살지, 나 어떡하지, 못 살겠어.” 이 두 가지 마음이 혼란스럽게 교차하는 그 적나라한 슬픔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연출이었다.

 

 

 

영화 Point 3: 소리의 공백이 주는 긴장감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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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에는 두드러진 배경음악, 극적인 효과음이 없다. 고요한 길거리. 냉장고의 엔진 소리만이 들리는 적막한 집안. 등장인물의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리는 장면들. 음악적 장치의 효과를 나타내는 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어느 순간이든 마음껏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영주의 대사만이 존재한다.

  

낯선 이들에게 기대고 싶지만 기댈 수 없고, 감정 가는 대로 웃고 싶지만 웃을 수 없고 멋쩍게 웃고, 동생 앞에서 울 수 없어 숨어서 울고. 주인공의 대사마저 가득하지 못하고 여백이 넘친다. 하지만 그 여백에서 오히려 수많은 감정과 대사가 들리는 것 같다. 영주가 아끼다가 내뱉은 말 한마디, 손짓 하나가 더 긴 여운을 준다. 그녀와 망설임과 불안한 상황이 나를 더 조이게 만든다. 오롯이 배우들의 연기와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했다.

 


 

마음에 씁쓸함을 가득 남긴 <영주>



절망의 끝에서 홀로 세상에 남겨진 영주. 부모님의 사고를 냈던 상문과 향숙에게 기대고 싶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 영화 끝에서 영주는 결국, 자신은 그 어느 곳에서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희망을 저버린다. 다리 위에서 목숨을 던져버리려던 순간. 끝내 주저앉아 통곡을 터트린다. 영화 내에서 가장 큰 소리로 그녀 안의 감정을 마구 쏟아내고, 해가 비치는 어디론가 다시 걸어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주를 통해 감독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 많은 고민이 들었다. 영주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도 다시 다리를 털고 일어나 세상을 향해 걸어갔다. 의연하고 대단하지만 애처로운 그 어린아이, 아니 어린 어른의 뒷모습에서 토닥이고픈 마음과 슬픈 따듯함이 느껴졌다. 나의 슬펐던 일과 고통스러웠던 지난 시간도 같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어쩌면 영주의 이야기는 세상에 고통을 맞이한 모든 사람을 위한 슬픈 토닥임이 아닐까 한다.

 

*

 

영주, 영주에게 불행을 가져다준 상문, 향숙은 법적으로 봤을 때는 피해자와 가해자이지만 사실 우리는 안다. 그들 모두 비극을 겪은 안타까운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악하게 행동해서 벌은 받은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쩌다, 큰 불행을 맞이했고 그것을 열심히 벗어나려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

 

이것은 이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고통과 슬픔에 몸부림치던 날이 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자신이 겪어온 인생의 고통의 한순간을 떠올리며 지나간 슬픔과 그 시절의 자신을 향한 애도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영주>의 감독 차성덕은 실제로 영주처럼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다고 한다. 인생의 큰 비극을 겪으며 힘든 성장을 해왔을 그녀이기에 우리의 지난날을 향한 애도의 시간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든 것 같다.

 

*

 

하지만, 슬픔의 애도가 끝에 가서 조금의 꿈도 희망도 없이 끝나서 나는 씁쓸함이 크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영주가 마지막에 자살을 시도하려 하다가 울음을 퍼붓고 아침 해가 뜨고 있는 어딘가로 또다시 걸어가는 장면을 “영주는 꿋꿋이 제 삶을 살아간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아침 해는 새로운 시작과 밝은 빛을 상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감상하던 나에게 영주가 맞이한 그 아침의 해는 너무나 잔혹해 보였다. 영주가 각박한 삶에서 발버둥 치고, 목숨이라는 큰 가치를 내던지려 한 사건이 있든 말든 세상은 무심하게 평소처럼 돌아간다. 눈이 팅팅 붓고 얇은 옷을 입어 춥고 힘들어 보이는 영주 앞에 해는 희망보다 더 잔인한, 세상의 태연한 약 올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주가 다시 걸어 나간 것은 "어떻게든 살아야겠지."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말에 맞게 위태로이 다시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간다.


그녀를 붙잡아줄 곳은 이제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영주가 혼자 힘으로 삶에 대한 의지를 붙잡기만을 마냥 바란다면, 세상에는 그녀와 같은 아이들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잔혹한 현실과 맞서고 있는 어른 아이들에 대한 관심.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의무가 아닐까.

 

 

[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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