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맞춰보세요. 어떤 디저트일까요?

카페와 케이크와 감미로운 추억 한 조각
글 입력 2021.11.1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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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카페가 하나 있다. 디저트 하나에 주력하는 카페였고 학교 후문과 가까웠다. 학교 근처의 카페답게 같은 과 후배가 알려준 곳이었다.

 

-여기 진짜 맛있다.

-그쵸? 입안에서 빅뱅 일어나죠.

 

빅뱅까지는 아니어도 그 디저트로 인해 처음 만난 종류의 맛에 푹 빠져버린 건 확실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그 반지하 카페는 음식점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그날 입에 들어온 새로운 감미로움 때문에 난 아직도 그 카페의 이름을 기억한다.

 

작고 조용했던 카페 벽면에는 빔 프로젝트로 쏘아 틀어진 흑백 영화가 소리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영상이 하얀 벽면의 장식이었던 셈이다. 테이블 개수가 많지 않았던 그 카페에는 어딘지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었다. 심플하고 깔끔하지만 잘 보면 오밀조밀한 꾸밈이 있는 곳이었다.

 

아마 사장님의 정성어린 손길이 많이 닿아있었을 게다. 그곳의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도 기억하는데 이제 그곳 디저트의 맛은 희미하다. 못 먹은 지 수년이 지났으니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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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그 케이크에 얽힌 작은 기억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내게 그 카페를 알려준 후배는 과에 이름이 똑같은 동기가 있어 보B(보삐)라고 불렸다. 그 후배는 과방에 음악을 틀어놓고-민폐가 되는 상황이 아닐 때에 음악을 틀었다- 킬링 파트를 종종 따라 부르길 좋아하는 밝은 친구였다.

 

그 당시 그 애가 꽂힌 노래는 그 반지하 카페의 주력 메뉴와 동명인 유명 걸그룹의 타이틀곡 〈Ice Cream Cake〉였다. I scream, you scream. Gimme that gimme that ice cream. 그런 가사가 들어있는 곡.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디저트를 말하려는지 단번에 맞추는 분도 있을 거다. 이 케이크와 얽힌 작은 추억에 같은 이름이라는 소재가 두 번이나 얽혀 있으니 혼자 반추할 때면 은근하고 소소한 재미가 있다.

 

그 걸그룹의 이름은 두 단어로 쪼개진다. 그리고 그 단어 하나씩에 그 그룹의 실험적이고 양면적인 정체성을 담았다고 한다. 디저트 얘기에서 굳이 이 얘기를 하냐면, 내가 좋아하는 그 케이크도 서로 다른 둘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붉은색의 시트와 흰색의 크림이 한 층 한 층 쌓여 있다. 시트와 크림이 번갈아가며 쌓이는 식이고 맨 윗부분에는 하얀 크림이 올라간다. 제철 과일이 올라가는 과일 타르트도 아니어서 그 케이크에 딱히 계절 구분은 없다지만 그 특유의 붉은색 때문에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케이크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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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먹을 때면 크림과 시트를 한 입에 같이 먹어야 한다. 강렬한 붉은 색과 하얀색이 내 눈앞에서 서로 섞여 분홍색이 될 일은 없지만 포크로 그 두 색을 한 번에 떠서 입안에 넣으면 뻑뻑한 질감의 시트와 꾸덕한 크림 부분이 그렇게 달콤하게 녹아내릴 수가 없다.

 

묵직한 식감에 달디 단 시트는 크림치즈가 들어간 크림 덕분에 한층 부드러워진다. 느끼하고 진한 크림 맛에서 크림치즈가 산뜻한 중간 맛을 만들어내며 목 넘김을 한층 쉽게 한다. 맛이 기본 진하다 보니 음료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제격이었다. 음료까지 달고 딥할 필요가 없다.

 

이 케이크가 ‘정말 특별하게 맛있다!’라는 인상을 심어준 카페는 이제 문을 닫고 없지만 다른 케이크 전문 카페 체인점 등에서 이걸 먹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잊어버린 맛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맛은 미각의 기억 속에서 가물거려도 그 카페에서 이걸 먹었을 때의 놀라움과 감동을 뛰어넘은 적이 여태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 카페에 더 자주 갈 걸 그랬다. 장사를 아예 접는 게 아니라 카페를 옮기는 거라면 어디로 가는지 귀띔받을 수 있을 정도로 단골이 될 걸, 하고 후회 섞인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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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케이크의 맛을 알게 되어 다른 곳에서도 두근거리며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그때 그것보다 맛있을까? 아니면 조금 다른 맛을 하고 있을까? 이 가게는 어떤 점이 다를까? 여러 종류의 케이크가 진열된 유리 쇼케이스 너머로 비치는 그런 사소한 기대감. 단순한 주문에 이런 저런 생각과 기억이 얽혀 나올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작은 즐거움으로 삼는다.

 

몇 해 전의 학교 근처, 자그마했던 그 카페의 디저트는 지금까지도 내게 이 종류 케이크의 맛의 원형 같은 것으로 남아 있다. 다음에 새로 가는 카페에 이것이 있다면 나는 또 그 카페의 케이크를 떠올리겠지. 그리고 그것보다 맛있을지 잠시 재미있는 기분이 되어 내 작은 기억 위에 비슷하지만 다른 맛 하나를 입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추억은 밀푀유처럼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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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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