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모"에게 상처 받았던 어린 너에게 - 엄마에게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은 너에게

나의 내면아이, 너를 보듬게 되기까지
글 입력 2021.10.2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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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아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된 건 서늘한여름밤(이하 서밤) 작가가 낸 그림일기 형식의 단행본 <나에게 다정한 하루>에서였다. 그래서 내게는 ‘내면 아이’ 개념이 그 책의 이미지 한 컷으로 남아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우실 때 집안의 접착제가 되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으나 사실은 불안에 떨며 웅크리고 있던 어린 서밤 작가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른이 된 서밤 작가 안에 여전히 있었고, 시간이 지나서야 그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듬어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앞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일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기억과 감정 속에 있을 것이다. 자식 앞에서 자주 싸우거나 사이가 냉랭한 걸 숨기지 않는 부모, 어릴 적 무신경하거나 폭력적인 보호자로 인해 유년의 안정감을 부정당한 경험이 있다면 아이는 자주적인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거나 겉으로만 웃자란 어른아이가 된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아이처럼 웃고 놀지 못하고 적절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 순간의 어린아이는 어디로 갈까? 그 아이는 서밤 작가의 이야기처럼 바로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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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아이의 개념과 치유 과정을 무척 자세하게 다룬, 찰스 화이트필드의 <엄마에게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은 너에게>에서 내면 아이는 참자아로도 불린다. 참자아, 즉 진정한 자아라는 뜻이다. 이 참자아는 창의적이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긍정적이다. 참자아가 있다면 거짓 자아도 있다. 거짓 자아는 우리가 자라나며 갖게 된 일종의 위장된 자아로, 참자아와는 다르게 경직되어 있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 거짓 자아에 의존하면 의존할수록 우리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받게 된다는 것이 화이트필드 책의 서두이다.

 

그렇게 긍정적인 자아를 두고 우리는 왜 거짓자아에 의존하며 산다는 걸까? 그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불안정한 유년기에 수치심, 위협감, 상실감과 아이가 버틸 것이 아닌 책임감 때문에 우리의 솔직한 감정이 억압당했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실제로 물리적인 폭력을 당했을 수도 있고, 언어로 위협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이런 경험들이 참자아를 억누르고 거짓 자아에 의존하게 만든다. 저자는 실제로 무엇을 상실한 경험은 물론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위협만으로도 내면 아이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니 우리 부모님은 나를 엄하게 키우셨을 뿐 손찌검은 안 하셨다고 부모를 나서서 변호하고, 자신은 상처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더라도 실은 마음에 여전히 살아있는 상처를 가진 어른들이 있는 셈이다. 책에서는 자식에 대한 학대가 있는 ‘문제 가정’의 예시로 알코올 중독자 부모가 있는 가정을 자주 언급한다. 알코올 중독자 부모로부터 상처를 입은 자녀들의 모임이 내면 아이 연구의 시작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그룹 치료에는 꼭 알코올 중독자 부모를 둔 자식이 아닌 사람도 참여한다. 폭언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고 자제력 없는 생활 태도를 가진 부모도 중독 문제가 있는 부모만큼이나 자식을 상처 입힐 수 있는 것이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참자아의 회복, 그러니까 내면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뤄진다. 치유 방법의 핵심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터놓는 것이다. 의지할 만한 사람 혹은 모임으로는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심리상담사, 자조모임, 공통적인 어려움을 가진 이들이 모인 그룹 치료, 배우자나 친구 등이 있겠다.

 

말하기는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고 헤집는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회복을 위한 행위이다. 심리적인 문제는 덮어둔다고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 충동이나 또다른 문제의 형태로 나타나 우리를 괴롭힌다. 마음을 다쳤던 경험, 그 순간의 감정은 어떠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떻게 괴로운지를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터놓을수록 자기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 감정의 해소는 고작 한 번의 대화로는 이뤄지기 어렵다. 해소와 인지적 통합은 일직선으로, 단선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순환적이고도 선후를 바꿔가며 일어난다. 저자는 이 회복이 몇 달이 걸릴 수도,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솔직하고도 맞는 말이다.

 

화이트필드의 연구를 담은 이 책은 내면 아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사람이 그것을 속속들이 공부하기에 적합한 책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아쉬움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이 책의 제목에 대한 것이다. <엄마에게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은 너에게>. 문화초대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엄마’라는 단어 때문에 영유아기~유년기 애착 형성이나 모녀 관계의 애증과 대처법을 다룬 책일 것이라 예상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본 도서는 부모 중 한쪽에 골몰하고 있지 않으며, 애초에 문제 가정 부모의 면면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이 책의 집요한 관심은 내면 아이의 명칭과 개념, 그리고 그 치유 ‘과정’의 세분화에 있다. 따라서 책 제목을 보고 나와 같은 기대를 한 사람이라면 그 기대가 빗나가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치유 방법에 대한 것이다. 저자가 누누이 주장하는 올바른 치유 방법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말하기’이다. 물론 저자는 책 본문에서 그런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과 단계별 기준을 제공하긴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홀로인 사람이나 당장 누군가와 깊은 대화는커녕 대면하기만 해도 마음이 파삭파삭 부서질 만큼 약해진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사람으로 입고도 결국 사람들 틈에서 그 상처를 회복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기운을 차리기 전에 혼자 자신을 보듬는 방법도 한번쯤은 소개해줘야 했다고 본다. 결국 내 말을 들어줘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문장으로는 부족하다. 일기를 쓰면서 자기 마음을 돌아보는 것,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대면하기 어렵거나 대면할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 (이 편지는 정말 보낸다기보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적어본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등등의 방법을 이 책에서도 언급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내면 아이가 있다. 내면 아이의 상처를 보듬지 못한 채 커버린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 나를 포함해 이 책의 독자들, 이 리뷰의 독자들 역시 '여리지만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기운을 가진 내면 아이'를 만나고 인정하여 자신의 참자아를 회복할 수 있길 바란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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