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아한 가난의 시대 [도서]

글 입력 2021.10.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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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가난의 시대, 이 일상적인 단어들의 조합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동시에 제목에 대한 몇 가지 물음이 뒤따랐다.

 

첫 번째로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우아한'이 가난을 수식하는 것인지, 혹은 가난의 시대를 수식하고 있는 것인지에 따라 제목은 전혀 다른 관점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해석한 바로는 전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뿐만 아니라 이 '우아한 가난의 시대'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담긴 서문을 읽어보는 누구라도 작가의 집필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가난해 본 적도 없으면서 없으면서 가난을 말한다는 것이. 전혀 우아하지 못한 주제에 우아함을 말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대한 자조 혹은 동세대의 생활 양식을 말하기 위한 표현이 안 그래도 추운 겨울에 어떤 이의 마음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두려워졌다. (중략) 우아한 가난은 빈곤감이 디폴트인 사회에서 개인이 의연하게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어다. 가난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을 따지기 이전에,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각자의 풍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p11

 

 

두 번째로는 가난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그 기준점을 어디로, 어떻게 둘 것인지. 가난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예민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작가 역시 인지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책의 목적이 거시적인 사회 관점에서의 가난과 사회 문제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특정한 시기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특정 세대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동 세대에 건네는 물음이자 고민 상담이자 조언으로써 이 책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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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이란,


 

 

내가 생각하는 우아함은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의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지극히 사치스럽고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한없이 궁상맞아 보이는 종류의 일일지라도 말이다. - p12

 


주변의 환경이나 인물의 배경을 막론하고,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우아함이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그 우아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막연하게 느꼈었던 우아함의 본질에 대해 깨달음을 준 문장이 있다. ‘우아함은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의 것이다.' 자신이 지켜내고 싶은 것에 대해 올곧게 나아가는 모습이 고고해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실천의 행위만이 우아함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자신만의 이상과 목표에 확신을 가졌을 때야말로, 타인의 어떤 말들과 시선에도 동요하지 않고 일관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일종의 안정감이나 믿음과 같은 가치를 느낄 수 있으며, 단단한 신념을 엿볼 수도 있다. 저마다의 우아함을 지켜내는 사람들을 통해서 여러모로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환경을 위해 작은 실천일지라도 꼼꼼히 분리수거를 해내는 일,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라도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않는 일에서부터, 여행지에 갈 때면 엽서를 한 장씩 꼭 사 모으는 일이나 주말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과 사색을 즐기는 일 모두 자신만의 우아함이 될 수 있다.

 

그 무엇이 되었든 자신만의 삶의 철칙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꿋꿋이 지켜내는 사람들이 바로 우아함을 자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이 있어야 꿈도, 이상도 존재하는 것



 

이런 종류의 검약에는 확실히 낭비를 해 본 사람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맥시말리스트로서의 산만한 경험이 알려 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사적인 컬렉션의 범위를 서서히 넓혀 나가고 싶다. 그것만이 가난해도 우아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p81

 


실질적이고도 심리적인 빈곤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그들을 한데 모아 놓은 시대야말로 우아한 가난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켜내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은, 지켜낼 것들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지켜낼 것들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도전을 하고 실패를 맛보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우아함은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의 것’이라 했다. 빈곤의 시대에 작은 자존심과도 같은 우아함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도전과 경험을 통해 성공하고 실패하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차츰 이 우아함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밴자민 랭프도라는 아티스트의 말이다.


"꿈속에서 비행 할 때의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깨어 있을 때는 그런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기 어려우니까, 그런 느낌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 p150

 

 

경험이 있어야 취향이 있고, 취향이 있어야 꿈도 이상도 존재할 수 있다. 꿈과 목표가 건물이라면, 경험과 취향은 지반과도 같다. 단단한 지반이 바탕이 되어야만 건물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 맞는 생활을 찾기 위해 경험에 투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것을 찾지 못하고 오래 방황하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일찍이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경제적일 수 있다. 자신의 것을 찾고, 그것이 대단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투자하는 일.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무엇보다 우아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

 


엉터리로 가득한 세상의 이치를 잠시나마 망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웃어 봐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런 세상에 자신의 웃음까지 뺏기고 싶지 않아서다. 지수는 가난을 벗어나는 것만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삼는 나와는 삶의 태도가 다르다. 계속 가난할 것이기에 더 늦기 전에 우아하게 살고자 한다.

 

- 오찬호, 〈살얼음판 위에서라도 스케이트를 타겠노라

 


우아한 가난의 시대라, 우아함과 가난이라는 단어에서는 표면적으로 상충되는 느낌이 강했다. 단어의 조합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던 것 같다. 또 한 편으로는 빈곤감이 만연한 시대에 살아가는 청년 세대로서, 책을 읽기에 앞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주제라고도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과 같은 신조어들이 만들어진 배경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보인다.

 

가난, 그리고 이 가난의 시대에서의 우아함에 대해 글을 풀어내는 작가의 조심스러움과 고민의 지점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서문에서부터, 현시대를 향한 부드러운 통찰이 인상적이었다. 동 세대의 행동 양상을 짚어내는 부분에서는 내가 막연하게 추구해온 삶의 지향점과도 닮아 있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그만큼 현재 청년 세대에서 보편적으로 고민하고, 추구하고 있는 주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읽는 내내, 마치 작가와 머리를 맞대고 이 사회에서의 우리들의 돌파구를 찾아내는 기분이었다. 어떤 선지자로부터의 조언을 듣는다기보다는 이 세대를 살아가는 동료로서 함께 고민하고 길을 찾아가는 마음에 가까울 것이다. 나를 찾는 여정에 동참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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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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