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연한 사진들의 전시 [사람]

엉덩이가 찍은 세상 풍경
글 입력 2021.10.09 21:1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지금 쓰는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는 일 년 반 정도 되었다. 비교적 최신기종이라 이제는 그럴 일이 없지만 그 이전에 쓰던 휴대폰(2019~2020.03)은 터치 스크린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가끔 전화기를 들고 길을 걷거나 주머니에 넣어두면 스크린이 엉덩이나 손바닥에 쓸리면서 자동으로 카메라가 켜지고는 했다. 통화 앱과 카메라 앱이 각각 잠금 화면 하단의 좌우에 배치되어 있어서 잠금 상태에서도 잘못 터치하면 길바닥을 찍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나도 모르는 새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하게 된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전화를 걸려면 전화번호를 누르고 통화연결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아무리 터치가 시도 때도 없이 된다 한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기가 막힌 우연의 연쇄작용으로 인해 내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이곳저곳 비벼지며 010-XXXX-XXXX 를 완성한 뒤 통화 버튼마저도 눌러진다면, 그건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 시점에 그 길 위에서 그 번호의 주인과 통화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순간 하늘 위 일지 땅 밑일지 알 수 없지만 어딘가 이 모든 상황을 관장하는 상황실에서 할리우드 영화 속 로켓 발사에 성공했을 때 으레 보던 관제센터의 풍경처럼 모두가 서류를 허공에 던지며 쾌재를 부르겠지.

 

아무튼, 전화를 건 적은 없지만 길바닥은 수도 없이 찍었다. 카메라 앱이 켜진 상태에서 볼륨 조절 버튼만 누르면 사진이 연속으로 찍히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을 잘 찾아보거나 하면 아마 볼륨 조절 버튼이 눌려도 사진이 찍히지 않게 설정하는 방법이 있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걸 찾아보는 인간이 아니다. 그냥 매번 사진을 삭제하고는 했다. 아직도 모르는데 뭘.

 

모든 사진을 지우진 않았다. 걔 중 몇 개는 우연히 찍힌 사진치고 상당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연히 찍힌 사진이라서 더 맘에 드는 점도 있고.

 

먼저 첫 번째 사진.

 

 

[크기변환]20190909_162851.jpg

 

 

사진을 다시 보며 처음에는 이것이 우리 학교 어딘가의 계단인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계단인지 헷갈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옆에 있는 돌 모양 때문에 아파트 계단 같았는데, 다시 보니 또 모르겠다. 날짜상 유추도 어렵다. 사진은 2019년 9월 9일 오후 4시 28분에 찍혔는데, 캘린더를 들여다보니 그날은 공강인데 불구하고 학교에 간 날이다.

 

동아리방을 들렸다가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것일 수도 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는 단지를 산책하던 중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핸드폰을 항상 오른손으로 들고 다니니까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장면일 것이다. 그것이 알 수 있는 것의 전부지만, 그래서 흥미롭다.

 

두 번째 사진.

 


[크기변환]20190218_145800.jpg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라 첫 번째 사진보단 정보가 많다. 2019년 2월 18일 2시 58분에 찍혔다. 일본 여행의 둘째 날이었을 텐데, 우리는 숙소를 오사카로 잡고 첫째 셋째 날엔 오사카를 둘러보고 둘째 날엔 교토와 고베를 갔다. 오전부터 교토를 갔으니 시간으로 봤을 때 아마 니넨자카, 산넨자카 골목을 지나 언덕을 오른 후 다시 밑으로 내려온 시점일 것이다. 언덕에 오를 때까지 가늘지만 촘촘한 비가 계속 내렸다. 물이 얕게 고인 흙길에 규칙적으로 발이 닿았다가 떨어지면서 나던 찰박거리는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행군마냥 말없이 꿋꿋하게 찰박거리며 그 길을 걷던 모습은 여러모로 묘한 분위기에 묘한 풍경이었다. 바람이 불면 처마밑에 매달린 풍경소리들이 약하게 들렸다.

 

언덕 위에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었다. 우리 셋은 허무한 마음에 정상에서 야호를 외치고 얼른 내려와 고베로 향했다. 내려오고 나서 찍힌 것이 저 사진일 것이다.

 

왼쪽 아래 부근 내 손가락 너머로 살짝 삐져나온 주황색 물체는 내 신발이다. 처음에는 형광의 주황빛이 나름 패션에 포인트도 되고 예뻐 보인다고 생각해서 샀는데 주변 여론이 워낙 안 좋았다. 나중에는 때가 타니 진흙에 뒹군 딱정벌레 등딱지같이 점점 괴랄한 색을 띠기 시작해 나도 마음이 떠나 결국 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작년 여름까지는 신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 위쪽에 엄마 손을 붙잡고 가는 아이의 나이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얘가 몇 살 정도 되어 보이느냐고 물어봤다. 아버지는 네다섯 살, 어머니는 여덟 살을 부르셨다. 둘이 결혼한 건 역시 우주의 신비다. 4 더하기 8 나누기 2해서 평균값인 여섯 살로 할까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성의 없는 것 같고 애한테 좀 미안하다. 그런데 뭔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아이가 저런 책가방을 메지는 않을 것 같아서 확실히 7살 이후일 것 같아 그냥 초등학교 1학년 7살짜리 꼬마로 상상하기로 했다. 물론 조기교육 차원에서 입학 전부터 책가방 메고 학원에 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교토지역의 교육열에 대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니 여기서는 삼가겠다.

 

사진이 찍히고 나서부터 3년이 지났으니 아이는 제법 베테랑 초등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어떤 중학교에 진학시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고 아이는 축구 경기에서 자신이 서야 하는 포지션에 완벽히 적응했겠지. 좋은 학군과 좋은 성적, 일상적 성취감과 적당한 일탈이 함께 하길 바란다.

 

세 번째 사진.

 

 

[크기변환]20191008_130134_HDR.jpg

 

 

가장 알 수 없는 사진이다. 2019년 10월 8일 오후 1시 1분에 찍혔다. 사진을 길게 가로지르는 저 줄은 이어폰 줄일 것이고, 앞의 딱정벌레 신발과는 다르게 저 신발은 아직도 가끔 신는다. 물론 주변의 평가는 바닥을 기는 컬렉션이다. 2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화요일. 19년도 2학기 화요일은 오전 수업만 있어서 집에 일찍 가곤 했는데, 1시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아직까지 서울임이 분명한데, 시간과 당시의 내 생활 패턴으로 유추해보자면 저건 냉면집으로 가는 발걸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 오른발이 꽤 신나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가? 좀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저 시기에 우래옥을 참 많이 갔으니 아마 을지로4가역 앞의 우래옥이었을 것이다. 혼자였을 수도 있고 같이 냉면 투어를 많이 댕긴 동아리 형님과 함께 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나는 머지않아 강한 육향을 자랑으로 하는 육수 위에 예쁘게 똬리를 튼 면발과 시원한 배 고명을 영접했겠지.

 

모든 얘기가 냉면 얘기로 끝나는 습관을 이제 좀 버릴 때가 됐는데 그게 잘 안된다. 냉면 면발처럼 끊어지지가 않는다. 세상에. 심지어 냉면 얘기 그만해야 한다는 얘기도 면발에 비유해서 하고 있잖아. 이번엔 정말로 아무거나 좋으니 다른 얘기로 글을 마쳐야겠다.

 

니넨자카 산넨자카 골목 언덕에서 실제로 야호를 외치진 않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다시 내려왔는데 그렇게 쓰기는 심심해서 그냥 거짓말을 좀 해봤다. 미안합니다.

 

 


노상원.jpg

 

 

[노상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47712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11.29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