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하늘이 아닌 땅에서 찾은 국제정세의 실마리 - 지리로 보는 세계정세

글 입력 2021.10.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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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양한 대답이 나오겠지만, 나는 세계 시민이 사랑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문장을 읽은 많은 사람의 입이 씰룩거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좀 더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조금만 더 읽다 보면 여기서 의미하는 사랑이 어떤 인간적인 관계나 행복과 관계되지 않은 것임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 역시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사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질문하기도 전에 답을 정해놓았다는 점에 있다.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에 만들어낸 열광은 사고의 주체를 사고의 범주에 가두고 모든 현상에서 사랑의 대상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사랑의 객체는 그러한 개념과 관념 속에서만 완결되게 되며, 이는 무시무시한 교조주의나 알량한 눈가림으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사랑은 정치적이다.


정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힘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에 빠진 순간, 새로운 사고가 스며드는 과정은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는 열쇠가 된다. 그것은 인류의 원동력이며, 집단적 감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고, 그것을 영원히 옆에 두려는 행동은 그 자신을 스스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억지로 맞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침대에 맞게 팔다리를 수없이 자르다 보면 거기에 누워있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팔다리를 잃은 인간은 세상을 바꿀 힘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시민의 사랑의 대상은 종종 `정체성`과 `신념`이 된다. 이는 이상과 도덕이 강조되는 시대에 더욱 두드러진다. 신념은 신념을 가진 주체를 강조한다. 세계의 시민이라는 이름 아래에 개개인은 영웅이 된다. 세상을 개변할 수 있는 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념에 매몰된 인간은 다른 측면을 바라보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사상과 신념은 사회체계가 만들어낸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이를 잊고, 사랑의 진정한 객체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애다. 그리고 자기애는 그 자신만을 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이상을 위해서 이상을 곁에 두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사랑하는 만큼 냉혹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의 눈가림이라는 말처럼, 열렬한 이상은 눈을 가린다. 그리고 우리는 신념의 주체를 개인으로 두지만, 사실 신념의 주체는 개인보다는 사회체계의 변화와 냉혹한 이익경쟁의 마중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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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지리로 보는 세계정세`는 현실주의적 시각을 강조한다. 국가 간 분쟁과 전쟁은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고 해를 끼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서로가 어떤 의도가 있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할 수 없다고 확신할 수 없다. 이는 국제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국제법은 강제가 아닌 권고에 가깝기 때문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가 힘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시각에 따르면, 힘의 균형은 국가가 생존하기 위한 최우선 임무다. 따라서 각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패권국가가 이야기하는 `세계질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순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영웅적 헌신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다. 세계정세 주도와 주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패권국은 `세계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았고, 맞설만한 강대국이 없다는 사실은 평화를 보장했다. 실제로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적 자유주의가 승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시대정신의 성장으로 자유와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근본적으로는 패권국가의 정치체계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국제적 자유주의에 취한 일부 미디어와 학자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민주화와 세계화로 국가 간 갈등이 감소 추세에 있다고 선언하였다. 전쟁과 분쟁의 원인이 경제적 자원에 있다고 본 것이다. 개방 경제와 자유무역은 국가 간 분쟁을 줄이는 것처럼 보였다. 민주주의와 자유경제 체계는 소득을 재분배하고 사회적 이동성을 장려하여 계층 간 긴장을 줄이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국가와 국가의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는 방식으로 도덕성이 완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민주적 시스템과 자유시장과 같은 양 날개는 폭력의 사용이 근절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유주의는 곧 이상주의로서, 민주주의와 자유는 최우선 가치가 되어 `색깔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 정체성으로 대표되는 국익은 기꺼이 그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러한 믿음 아래에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주도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기반으로 세계를 재편성하였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은 패배하였고, 자유세계는 승리하였다. 세계는 단일한 사회 정치적 체계로 통합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분쟁과 퇴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실주의자와 대립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의 목소리가 주요 언론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외 국가가 발전하여 힘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이 대세로 부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민족주의적 포퓰리즘 물결의 대표적인 인사로,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민족주의자는 자유주의적 엘리트들과 세계화 추종자들이 국익과 국가 정체성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는 이러한 민족주의가 2차 세계 대전과 같은 파시즘의 시대로 이끌 것이라 주장한다. 이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세계의 트랜드를 역행하는 반지성주의자나 틀린 사상을 가진 사람들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앞서 기술했듯, 신민족주의의 물결은 다른 강대국 부상과 함께 떠오르고 있다. 대중들은 세계 경제의 침체를 탈피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 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희망을 잃었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은 `찌질한 사람들의 찌질한 행보`가 아니라, 국가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유의미한 사건이다. 도덕적 기반으로만은 전 세계에 퍼진 갈등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숭고한 사상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잠깐 접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옳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현실주의적 노선을 강조하는 책의 저자는 이상이나 관념이 아닌 현실에서 존재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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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첫 번째 섹션에서 책의 기본이 되는 현실주의적 분석 태도와, 그에 따르는 분석 요소인 권력, 지리, 정체성에 관해 기술한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이러한 시각에서 40개국의 국제 정세를 분석한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개별 국가 너머로 논의되고 있는 담론인 우주 정치학, 사이버 정치학, 증오 정치학, 환경정치학을 기술한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책의 전반에서 현실주의적 분석 태도가 드러난다. 따라서 저자는 어떤 도덕적 관념과 사상적 체계를 평가하기보단 국제 정세의 움직임을 판단하는 데 초점을 둔다. 현실주의적 시각에서는 가치체계보다는 각 국가가 얼마나 힘의 균형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초점을 맞춘다. 이에 따라 미국, 홍콩과 대만, 북한과 같은 나라에 대한 분석은 대중이 대하는 방식과 비교해 건조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국제 언론과 다른 노선에서 기술된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장거리에서 각 국가의 포지션을 분석하고 있다.


책에서 분석 도구로 삼는 주요한 분석 기준 중 하나는 지리적 특성이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기술 발달의 결과로 `무경계성`이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국가 간 육지와 수역을 포함하는 실제 영토가 국가의 정세를 결정한다고 분석한다. 한반도 역시 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분단되었으며, 중심부와 외곽지역의 먼 거리로 인해 카르텔 전쟁에 있어서 효과적인 통제가 어렵다. 대부분 국가에서 지리적 특성은 국가의 운명과 전략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다.


각 국가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지리적 특성이 중요하다면, 국가의 이익을 결정하는 국가 정체성 역시 중요하다. 이미 민족주의 형태로 정체성은 문제는 대두되었다. 자신을 다른 이들과 구별하여 정의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욕망이며, 특정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욕구의 결과로 세계적 분쟁은 끊이질 않는다.


이상주의적 시각에서 정체성 문제를 무시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배제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멍청이로 취급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정체성 문제의 부상과 다양한 맥락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은 경제체계의 변화, 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대중의 실망, 포퓰리즘에 편승하여 의석을 차지하려는 정치세력, 개개인의 인정욕구가 섞인 복합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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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내내 새로운 시각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40개에 달하는 국제 정세도 훌륭했지만, 현실주의적 태도는 내가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시선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 책에서 묘사하는 것과 국제 언론과 그에 따라 문화와 대중이 국제 문제를 다루는 방식 간 괴리다. 우리는 도덕적 시대에 살고 있고, 도덕적 가치가 종종 담론의 중심에 선다. 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지리적 특성, 역사, 힘의 균형에 기반한 복합적 결과물이다.


물론 가치의 문제를 배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장기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개인의 정신세계를 크게 확장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 것보다, 다양한 가능성에서 냉철하게 판단하고 이해하는 것은 가치 판단보다 중요하다. 현상은 언제나 가치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태도만으로 이 책이 현대인이 주는 메시지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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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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