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래를 아세요? - 고래가 가는 곳 [도서]

글 입력 2021.10.0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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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위한 반성문


 

몇 년 전, 시 창작 수업을 들었었다. 매주 여러 명의 작품을 합평하면서 내가 타인의 시를 합평하다가 했던 말이 있다. “요즘 고래가 유행인가요?”

 

고백하자면 나는 고래에 질렸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유독 합평 시간에 고래를 다루는 시가 많았고, 대부분 고래의 ‘신비로움’에 주목했다. 한참 문학 ‘뽕’에 차올랐던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합평하면서 소재의 참신함에 관해 열변을 토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나는 반성한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는 다시 말하겠다.

 

“왜 고래를 택했는지 이해합니다. 제가 고래를 미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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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아무도 본 적 없는 고래가 있다. 실제로 부채이빨고래의 존재는 지난 140년 동안 단 한 번 보고되었다.

 

해저의 오아시스로 은유되는 죽은 고래의 몸은 심해에서 풍요로운 생태계가 된다. 그리고 숲보다또한 고래가 보는 바다는 푸르지 않으며, 빙하가 깨지는 소리에 영향을 받는 고래도 있다. 포식자의 시선이라고 느껴지는 고래의 동공은 사실 어딜 보는지 알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고래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오직 고래만이 알고 있는 자연의 진실이 있다.

 

 

우리는 고래를 잘 모른다. 내가 본 최초의 고래는 아쿠아리움에서 본 돌고래였다. 그 외의 고래는 두 눈으로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아는 고래라고는 대왕고래나, 다큐멘터리 단골손님인 범고래 정도일까. 고작 검색 몇 번이면 아는 정보가 전부이면서도 나는 고래가 인간과 친밀하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오만으로 고래를 진부하다 여겼을까. 이유는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하다. 초등학교 방학 숙제로 그림을 그릴 때면 꼭 바다를 그리고, 그 바다에서 물을 뿜는 고래를 그렸다. 나의 얄팍한 만화와 다큐멘터리 경험으로 다져진 상상력으로는 여름 바다 그림에 담을 수 있는 최대치가 고래였다.

 

커다란 몸집에 물 뿜는 그림을 그리는 게 끝이였으니. 나는 고작 이 이유로 고래를 잘 안다고 착각했다.

 

 

고래뼈대.JPG

 

 

『고래가 가는 곳』에서 저자가 최초로 목격한 고래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경험과는 다르다. 그는 고래를 ‘뒤집어’ 보았다. 그가 본 고래는 박물관에서 영구 전시 중인 고래 골격이었다.

 

거대하면서도 부드러운 몸 동작의 내부에는 셀 수 없는 뼈들이 존재한다. 고래 골격만 보면 마치 하늘을 나는 익룡처럼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다. 이처럼 뼈만 남은 동물을 바라보며 동물의 원래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최후의 모습에서 살을 붙여가며 고래를 향한 상상을 키웠다. 뼈만 남은 고래의 피부는 무슨 색일지, 그의 눈동자는 어떨지, 하늘을 날았을지 땅을 기었을지 바다에 있었을지. 그는 박물관의 의도대로 고래의 뼈를 바라보는 대신, 박물관에 박제된 고래 뼈가 얼마든지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나는 바다 대신 그의 뒤집힌 상상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fathom: 미지의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행위


 

 

결국 나는 고래 몸뚱이를 클로즈업으로 보면서, 기생충 배양기 또는 동물원으로 보게 되었다. 다양한 존재가 고래 몸을 거처로 삼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환상적이고 또 어떤 점에서는 으스스하다.

  

만약 우리가 기생충을 통해 보이는 것만이 실체가 아니란 사실, 그리고 결코 그런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면, 그리고 각각의 생명체 속에 죽음과 함께 활력이, 그리고 다양함과 약탈이, 밀어붙이기와 몸부림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면, 우리는 비로소 카리스마의 마력에서 풀려나, 더 큰 배려와 더 넓은 관점으로 자연에 접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의 인식과 통제 밖에 있는 저런 것조차도 귀하게 여기고 그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_8장 미지의 표본들 (415쪽)

 

 

『고래가 가는 곳』의 원제이기도 한 ‘fathom’은 고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이다. 우리는 고래를 알 수 없어 고래를 추적한다. 해부학적으로 현대 인간은 약 20만 년 전에 등장했지만, 고래는 약 5천만 년 전까지 올라간다.

 

처음 고래를 목격한 사람은 고래가 포유류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고래는 각자 노래를 만들어 부를 수 있고 그들의 노래에는 암호가 담겨져 있는 등 미스터리 투성이다. 심지어 높은 지능으로 범고래는 무리에서 범죄를 저지르고는 한다.

 

한 과학 역사학자는 동물을 내적 구조에 따라 분류했을 때 고래는 지느러미 속에 관절이 있어 인간의 손가락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고래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래는 여전히 수수께끼와 같은 미지의 존재이다.

 

대왕고래 골격 전시장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고래를 알기 오래전부터 고래는 존재했다. 오랜 세월을 거쳐도 그들의 비밀을 밝히기란 쉽지 않은 여정이다. 결국 우리는 그 호기심으로부터 『고래가 가는 곳』을 통해 고래를 함께 추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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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 일상의 더할 수 없이 쩨쩨한 역할의 틈 속에 끼어서 때로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 삶은 너무나 거대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

 

 

『고래가 가는 곳』이 단순히 고래를 다룬 보고서가 아닌, 개인과 단체와 고래와 생태계를 다루면서 모든 것을 연결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이 더욱더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저자가 밝힌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출발하는 고래가 결국 수많은 저자에게 닿았던 것처럼 말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고래가 유행이냐고 했던 말을 반성한다. 진부한 줄 알았던 소재엔 오히려 전혀 아는 것이 없었고 그 미지를 쫓는 행위에서 상상력이 탄생한다. 책을 덮으면서까지 어느새 저자와 함께 고래를 추적하며 역사 없는 미지의 바다를 함께 헤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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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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