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다.리' 두 번째 이야기 : 책은 '운명'인가, '열망'인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9.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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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필자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준비해 간 책을 꺼내 읽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앉을 자리가 있다거나 별다른 소음이 없다면 더욱 좋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책을 읽다 보면 날씨처럼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던 기분도, 온종일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수많은 생각들도 생각이 나지 않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집중을 하던 중 잠시 고개를 돌려보면 무언가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무언가를 보고, 듣고, 또 느끼며 마치 뭐라도 홀린 것처럼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는 사람들. 그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의 손에 쥐어진 그 ‘무언가’에도 눈길이 가곤 한다. 특유의 잉크 냄새를 풍기는 신문에서부터 알 수 없는 용어들이 가득한 각종 전공 서적들, 그리고 손바닥만 한 화면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크기도, 무게도, 질감도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가 각자만의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그동안 “읽기”라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책을 위해’ 그리고 ‘책에 의해’ 존재하는 개념이었다. 시대별로, 사회별로 그 모습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하는 동안 책은 어떤 정보와 지혜, 진리를 가장 정제되고 완성된 형태로서 담아낸 물리적인 물체를 의미했고 그런 읽기를 통해 인류는 어제가 아닌 오늘을, 오늘이 아닌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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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doodlebar)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디지털 문명으로 접어들면서 책 그리고 책을 읽는 행위인 독서(讀書)의 의미는 달라지기 시작했고,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굳이 책을 사지 않더라도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우고 나눌 수 있게 되었고, 굳이 책을 들고 다니지 않더라도 오디오북과 북 스트리밍, 챗북, 리딩북, 라이브북 등의 형태로 혹은 각종 구독 플랫폼들을 통해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수천수백 년 동안 인류가 넘어서지 못했던 책의 한계를 불과 수십 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과학기술이 뛰어넘은 것이다.


SNS를 비롯해 유튜브, 넷플릭스·왓챠와 같은 OTT 서비스 등의 콘텐츠산업 분야 역시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책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년마다 발표하는 국민독서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응답자 대부분이 책 그리고 독서를 기피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로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꼽기도 했다. 몇몇 오프라인 대형서점들과 동네 독립서점들이 고군분투를 하고는 있다지만 지난 6월 있었던 반디앤루니스(서울문고)의 부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상황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쯤에서 문득 필자는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책은 사라지고 말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을 것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필자의 눈에 들어온 다큐멘터리 영상 하나. 지난 2019년 12월 방송과 함께 많은 화제가 되었던 tvN shift <책의 운명>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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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일러스트레이터 태균[KYOONART])

 

 

첫 장면에서부터 “책을 왜 계속 읽어야 하는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다큐멘터리는 국내 소설가 중 몇 안 되는 ‘전업 작가’인 김영하 작가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때로는 국내외의 지식인들을 비롯해 각자만의 방식으로 책을 다루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때로는 특색 있는 독서 문화가 남아있는 곳들을 소개하며 다큐멘터리는 종이책의 미래(1부)와 독자의 미래(2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종이책 그리고 독서의 ‘불투명한’ 미래를 점치는 이들도 등장한다. 일분일초의 시간마저 아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상당한 시간은 물론, 집중력까지 요하는 종이책은 끝내 사장(死藏)되고 말 것이라는 그들의 비관은 냉혹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와 함께, 그들은 과거 대중문화계를 대표했던 산업이었지만 디지털 문명으로의 전환 이후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만화책 시장(웹툰 시장으로의 대체)과 음반 시장(공연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의 확장)을 비교하며 이미 ‘위기’를 넘어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종이책 시장에 경고 아닌 경고를 전하기도 한다.


한편, 다큐멘터리는 독자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책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출간된 지 석 달도 되지 않아 다시 어둑한 반품 창고 혹은 인적 드문 헌책방으로 향했다가 마지막에는 ‘책이 아닌 책’으로서 파쇄되는 그런 ‘암울한’ 여정을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 직접 설계한 실험과 독서실태 조사 결과들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는 오늘날 독자들이 협업 필터링(이용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비슷한 관심을 가진 이용자에게 유사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기술)을 통해 단순히 책의 ‘유명도’에 따라 책을 선택하는 현실 그마저도, 소위 “책을 읽는 사람만 더 읽고 있는”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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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vN Shift <책의 운명>)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나날이 다양해지고 또 새로워지고 있는 독서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가 어떻게 책과 가까워지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여전히 종이책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중요한 이유를 말해준다. 그렇다고 해서 종이책이 갖는 본질적이고 고유한 의미에만 치우치는 것은 아니다. 북맥, 북팅, 북토크와 같이 종이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직접 모여 머리를 맞대는 것도, 알고리즘에 의해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맞는 책을 추천받는 것도 우리가 책의 변화에 적응해가는 여러 갈래 중 하나임을 강조하며 다큐멘터리는 결국 인터넷과 종이책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중략) 씁쓸하지만 그 이상으로 매혹적이고 의미심장한 순간들.

잠시나마 우리를 영원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것은 언제나 읽다 말고 꽂아둔 채

완전히 잊어버린 한 권의 책 속에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최유수 에세이, <너는 불투명한 문> 中


그리고 지난 9월 중순, 서울국제도서전에 들렀던 필자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마지막 날이었다고는 하지만 그토록 많은 책과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어우러지는 장면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혼란스럽다는 생각도 잠시,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고 또 쓸려가는 그 황홀한 분위기 속에 자연스레 몸과 마음을 맡기게 된 필자는 이내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 ‘재정의’되고 있든지 책을 읽어내는 일이 우리의 ‘열망’ 아니겠는가, 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책의 ‘운명’이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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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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