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뉴노멀 시대에 봉착한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관점
글 입력 2021.09.1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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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시대에 봉착한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관점

저자 김태진|출판 카시오페아|쪽수 416쪽|발행 2021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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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세 가지 습관이 생겼다. 첫째, 작가의 말에 집중한다. 저자의 첫인사와 끝인사를 여러 번 읽는다. 둘째, 목차를 훑는다. 내용을 읽기 전에 목차로 책의 끝까지 살펴본다. 어릴 적엔 당장 본론으로 들어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먼저 책의 구조를 탐구한다. 본문을 중시할 때보다 수용하는 깊이가 달라졌다. 비록 커다란 차이가 있지 않지만, 주제와 나의 사유를 비교해 한 번더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표시를 한다. 책에 줄을 긋거나 접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마음에 드는 문단이나 표현이 있으면, 책갈피 포스트지를 덕지덕지 붙인다. 글쓰기를 위해 기억하기 위한 팁이기도 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으니 언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집어 든 책은 가끔 흥미롭다. 그때 마음에 남은 어구를 읽을 때면 특히 그렇다. 그때의 나와 좀 더 성장해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될 때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읽는 시기에 따라 포스트 지가 붙는 페이지는 다르고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위의 세 가지 습관은 나만의 리추얼(ritual)이 생긴 뒤 생겼다. 그 리추얼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작가의 의도와 목차를 이해하고 책을 읽는 것이 활자를 인지하는 과정을 더욱더 수월하게 만드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글을 쓸 때 구조를 세우는 작업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문단이 나의 관점을 담았는지, 읽는 이가 나의 의도를 어떻게 이해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무작정 써 내리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서 나도 다른 이의 생각을 느껴야 했고 가장 먼저 작가의 생각을 더 파헤쳐 봐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와 혹은 옮긴 이의 관점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굉장히 솔직한 의견을 담는 사람이 있고 혹은 에둘러 좋은 단어만 집는 사람도 있었다. 혹은 일기장처럼 하고 싶은 뜻을 담백하게 담기도 했다. 가끔은 머리가 고장 나 습득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생각하며 활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내게 이로운 활동인지 본능적으로 깨우치자 알아서 습관이 생겼더라.

 

그래도 부족해 더 노력해야 한다. 남들보다 좀 더 늦은 시기에 마음을 잡았으니, 같은 시간 내에 더 큰 노력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틀에서 벗어난 생각이 필요했고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이 책에서는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주제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미술계의 거장들을 이용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다. 실제 우리가 겪고 있는 패러다임 시프트도 책에서 말하는 기조와 비슷하다.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은 당시의 뉴노멀 시대를 겪는 사람들이 받아들인 스물다섯 개의 중요한 순간을 총 2부의 5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새로운 미술이 탄생한 '생성점'을 기준으로 생성점들이 나아간 경로를 표시한 '경로선'의 흐름에 따라 5개의 선을 만들었고 선의 주제에 따라 다음과 같이 크게 큰 주제에 여러 장과 작가 소개를 정했다.

 

1부 미술, 홈에서 빠져나오다

1장. 그림, 다시 평면이 되다_공간의 붕괴

2장.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_지각의 해체

 

2부 미술, 드넓은 세상에 펼쳐지다

3장. 처음부터 옳았던 것은 없다_권위 너머로

4장.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_형식 너머로

5장. 결과물로서 작품은 없어도 된다_물질 너머로


큰 목차에 딸린 작은 목차에는 각 장마다 5명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일화가 소개된다. 다행히 소개한 작가는 친숙하다. 메이저에 가까운 작가들로 구성됐는데 현대미술 작가들이다 보니 우리가 의무교육 때 배운 교과목 시간 외에 세간의 뉴스나 미술 서적에서 볼법한 작가들도 꽤 있다. 야수주의 앙리 마티스(Henri Emile-Benoit Matisse, 1869~1954)부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iv, 1946 ~)까지, 아직 생존해있는 작가도 소개한다. 일화 다음으로 그들이 가져온 시사점과 작가의 의견을 덧붙여 현시대에 맞춘 인사이트도 담겨있다. 이것이 인문학의 매력이 아닐까? 꼬리의 꼬리를 물고 생각한다. 어딘가 텅 빈 곳을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우지 못하는데, 인문학이 주는 생각은 여유와 색다른 시각을 낳고 잠시나마 공허한 어딘가를 채워준다. '잠시나마'라고 표현한 이유는 인문학적 사고가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내가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읽고자 한 목표는 뚜렷하다. 제목 그대로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생각해 보고 싶었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시사점을 가져보고 깊게 생각해 보고 싶은 계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서다. 그리고 <아트인문학>은 내 기대만큼 목표를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꺼져가는 불꽃이 다시 피어오를 때



모든 것은 익숙해진다. 새로웠던 것도 익숙해지고 익숙함에 무뎌질 때쯤,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지곤 한다. 그렇게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고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주변 일상에서도 쉬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나쁘게 말하면 '고인물'이 되는 거고 좋게 말하면 우직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느 시점에는 현상 유지만으로 만족할 수 있고 분명 다수 중 필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변화를 꾀는 소수의 사람이 있고 언제나 집단 내 한 명씩은 존재한다. 보통 그런 사람의 주도에 맞춰 조직의 톱니바퀴는 서서히 굴러간다.

 

하지만 우리는 무료함을 쉽게 느끼니,변화가 익숙해지는 시점이 있다. 시기를 특정하게 지정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흘러가기엔 더 이상 안되겠다는 시기는 분명 온다. 새로운 흐름에 대한 편승 여부를 결정짓는 시기는 다가올 것이고 선택에 따라 우리는 변화하고 부딪치며 뉴노멀 시대에 맞게 진화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침체한 현시대를 보아라, 많은 분야에서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 우리는 미래에 기록될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일어난 많은 변화는 현대 라이프스타일에 깊숙하게 침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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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터리 곰리 <블라인드 라이트, 2007>,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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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폴록의 순간> ,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은 이런 시점을 '홈'으로 표현한다. 야수주의 앙리 마티스(Henri Emile-Benoit Matisse, 1869~1954)는 거투르드 스타인(Gertrude Stein, 1874~1946)의 관심을 한눈에 받아 스타가 됐지만 종합적 입체주의를 들고 나타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991-1873)에게 거투르드의 관심을 뺏겼다. 이어 오르피즘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를 거쳐 절대주의 카지미르 말레비치 (Kasimir Malevich, 1878~1935)와 잭슨 플록(Paul Jackson Pollock, 1912~1956)의 액션 페인팅까지. 시대의 흐름을 미술 거장들의 기법과 시대에 따라 그들의 시대가 어떻게 저물고 피어났는지 현대 미술을 통해 알려준다.

 

<아트인문학>의 저자 김태진은 말한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21세기는 예술이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예언하며, 지난 산업화 시대에는 경제나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앞으로의 정보화 시대에는 창조적 영감이 강조되는 예술 분야가 사회 전반을 이끌어가게 된다고(9쪽 참조). 어느 정도 공감하지 않나? 비록 이 주장을 위해 어떠한 데이터를 근거로 지금 말할 수는 없어도, 요즘 세상에 불편함을 느낄 새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작품의 재해석을 통해 본인만의 강렬한 색을 만드는 파블로 피카소처럼 새로운 재가공을 통해 차별성을 만들거나 아직 고도화되지 않는 분야의 최적화 방안이나 점진적으로 개발하는 방향성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별성 없는 서비스여도 완성도를 위한 브랜드성을 누구보다 요즘 시대에 알맞게 가공할 줄 아는 체계적인 통일적, 미적 감각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이라 생각한다.


 

역사가 남겨준 모든 것들이 부질없이 느껴질 때, 모던이라는 시대감각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헨리 포드,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93쪽

 


1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없던 예술을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새로운 생성점은 만든 '평범한' 이들의 역사는 이렇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묻는 것 같다. 사실 감이 오지 않는다. 어딜 가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추진력 있는 실행으로 결과를 이룩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그런 결과를 보고 감탄하며 찬양하는 사람도 있지 않는가? 나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후자는 다수이며 옛날부터 무수히 존재했다.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찬양하고 수집하던 컬렉터부터 그들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일반인들까지. 어릴 적 우리는 전자일 것 같은 자신감과 알 수 없는 패기에 취하곤 했다.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 그런 자세가 필요하기도 하다. 우리는 곧잘 자신감을 잃기 때문이다. 각박한 사회에서 능력있는 사람들 뒤편에 있는 나는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며,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들이 두세 개를 더 할 때 나는 한 가지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니 자신감을 적당히 언제나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나는 일상 속의 작은 성취감으로 자신감을 챙긴다.

 

 

중세 시대에 지어진 거대한 성당에 들어가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대부분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구경을 시작할 것이다. 화려한 제단과 스테인드글라스, 벽면에 자리한 조각과 종교화들이 연이어 눈길을 끄니까. 하지만 어떤 이들은 조용히 성당 중앙으로 가서 신도석에 앉을 것이다. 성당의 분위기를 차분히 느껴보려는 것이다. 이 둘은 동시에 할 수는 없다, 조금씩이야 병행할 수 있겠지만, 둘 다 제대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딘가에 시선을 뺏기지 않아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법. 시각과 느낌은 이처럼 반비례 관계에 있다.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139쪽

 

 

단지 고도화된 요즘 정보 사회 덕분에 남다른 사고의 문턱이 조금은 낮아졌으며 그런 그들을 좀 더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껴 주저앉는 이들이 있는가 반면, 소수만 가졌던 변화의 주도를 이끄는 사람이 내 옆에 생기기도 한다. 안주하다가도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이런 풀(pool)의 존재 유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떠한가? 어제같이 점심을 먹던 직장 동료가 목표가 생기더니 보다 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창의성과 상상력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당신은 이런 변화에 압도되어 조급해할지, 혹은 그와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달릴지 고민에 빠질 것이다.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은 조금이라도 우리가 뉴노멀 시대에 맞는 사고를 하기 위한 사례를 말해준다. 간단히 보면 정말 별다를 것 없는 얘기다. 작가는 홈'을 이은 선을 타임라인에 맞춰 서술했을 뿐이고 이런 일이 있어서 이런 게 나왔다는 얘기니 아주 이해하기 쉽게 요약하자면, 야! 너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열심히 좀 해봐!를 말하는 책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다시 타올랐으며


 

변화에는 당연히 뒤탈이 생긴다. 급진적이든 강경하든 온건하든 뭐든 모든 시대의 변화에는 반대하는 세력이 있고 어떤 태도를 취해 진행하든 꼬리표가 붙는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봐도 앞서 말한 '급진', '강경', '온건' 등의 단어가 세력의 앞에 붙지 않는가? 요약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어떻게든 변화를 정리하더라.

 

현대미술에 대한 말은 항상 많다. 시기하는 일반인부터 당대 미술인들의 비난까지 받아야 했던 변화는 작품 훼손과 같은 불상사가 발생한다. 당장 '행위 예술'이라고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 당장 밥 벌어먹고 살기도 바쁜데 당최 전개가 이해되지 않는 예술의 깊은 속내까지 알아낼 기력이 없다. 분명 특정한 오디언스에게 '팔리는' 예술일 수도 있고 감명을 주는 예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모든 이에게 찬사를 받기 힘든 예술이라 생각한다. 오죽하면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에서 다룬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을 소개하는 파트에서 소제목이 '정신병자들이 탈출했다! 백남준과 플럭서스'일까. 분명 그들이 시사하는 바는 있다. 비틀즈 존 레넌의 부인이자 일본의 행위예술가인 오노 요코(Yoko Ono, 1933~)의 '컷 피스'처럼 관객과 예술가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예술을 경험하게 함으로 우리에게 직접 뜻을 전달하는 유명한 공연도 있다.

 

 

남들 취향에 맞추는 따위의 짓은 난 절대 하지 않는다.

 

막스 에른스트,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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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Dada),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반항적인 예술도 존재한다. 20세기 초반 전쟁으로 세계는 불온했고 전쟁은 끊이지 않았으며 전쟁의 영향은 고스란히 그 시절 우리의 시절에 영향을 주었다. 적응하기 위해 받은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마음 한편에 쌓였고 해소할 곳을 찾지 못하니 몇몇 예술가들은 그것을 바로 예술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다다(Dada)'의 시작이었다. 다다이즘(Dadaism)이라 부르며 다다를 다루는 예술인을 다다이스트라고 불렀다. 유럽의 다다는 1916년 스위스 취리히의 작은 공연장인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에서 태어났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모여 공연을 올렸는데, 주제를 요약하자면 예술운동으로 전통적인 기존 예술을 경멸하며 형식으 파괴하는 분야라고 말할 수 있겠다.

 

1차 세계 대전을 겪었던 유럽에서 그들은 회화적인 파괴가 아닌 사회적으로 정의한 암묵적인 모든 약속을 파괴함으로 굵직한 경력을 가진 이들을 작품과 공연으로 조롱했으며 무거워지는 것을 기피했다. 이는 전쟁이 끝나고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자연스럽게 모두 본연의 일로 돌아갔다.

 

이처럼 야수주의, 입체주의, 절대주의, 표현주의, 추상과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구축주의, 신체예술 등 다른 기법들은 면으로 캔버스 위의 회화적인 파괴를 거친 반면에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그것은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물질로 이뤄졌으며, 그림으로 그리지 않은 예술로도 이어졌다. 회화적인 예술은 보통 상류층의 문화로 각인된 만큼 그들만의 리그에 속한 소비로 대중적이지 않았는데, 이런 권위 너머로 대중에게 '예술'이라는 것이 내려올 때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가들이 대거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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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셀 뒤샹 <샘, 1917>,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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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 < 황금색 매릴린 먼로, 1962> ,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오브제(objet)'로 유명한 레디메이드(Ready-made)의 '마르셀 뒤샹(Henri Robert Marcel Duchamp, 1887~1968)'과 팝아트(pop-art)의 황제 '앤디 워홀(Andrew Warhola Jr, 1928~1987)'등, 예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해졌으며 그만큼 각양각색의 취향을 품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화풍과 기법, 그리고 생각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니 모두의 취향이기 힘들었다. 관객과 소통해야 비로소 예술이라는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1931~2018)의 미니멀리즘처럼 예술은 아주 다양한 형태와 의미로 성장한다. 특정 부류에서 소비되던 예술 문화는 대중에게 열리기 시작했으며, 그만큼 예술적 미학은 모두에게 찬사 받기 어렵게 댔다. 큰 풀을 가진 소비자는 바로 대중이기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 미술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고루 퍼지진 못했는지 그들이 겪은 어려움은 매 챕터마다 소개된다.

 

이렇듯 각기 살아온 환경과 국가도 다르기 때문에 작품에 서려있는 모든 뜻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자국민도 어려워하는 마당에 바다 건너 민족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분명한 시사점을 가진다. 모든 역사를 명석이 습득하지 못해 서술한 '홈'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지만, 목차에 적힌 그들은 우연히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운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파괴했고 조각을 주워 모아 재창조하고 시의적절한 때에 맞추어 흐름을 바꿨다.

 

 

 

과거와 싸우는 당신도 예술가와 다름없다.


 

저자 김태진은 작가이자 강연가다. 작가로 아트인문학 시리즈로 집필했고, 강연가이기에 독자가 쉽게 이해하기 위한 구조로 책을 구성했다. 책 너머로 출판사의 어느 편집자가 그에게 어떤 도움을 줬을지 모르지만, 이 책이 출간되기 위해 무수한 자료 조사와 창작, 그리고 무엇보다 효과적인 구조를 짜기 위한 고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퇴고 작업이 이뤄졌는지 나는 모른다. 참고 문헌만 해도 몇 페이지를 채운다.


 

당신도 예술가다.

 

요제프 보이스,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법> 에필로그

 

 

사백 페이지가 넘어가는 시간 동안 우리는 대표적인 25명 작가와 그와 함께한 이들의 동료들과 행해온 예술 활동을 책으로 접할 수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의 배경을 가진 그들의 인생이 가깝고도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십페이지 남짓한 에필로그에 엑기스처럼 담겨있다. 마치 총 다섯 부에 달하는 이야기는 그들이 달려온 지난날의 노력들처럼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다뤄둔 것 같다. 아마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뭔가 불만이나 갈증이 있었고, 자기가 느낀 불만과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했다. 행동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결정해 당대의 강력한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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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모리스의 미니멀리즘,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형태가 단순하다고 경험까지 단순한 건 아니다.

 

로버트 모리스,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268쪽

 

 

부제인 틀 밖에서 생각하는 방법은 누구나 간절히 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남들보다 좀 더 다르고 특별한 생각을 전략적으로 본질을 탐구하여 이를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직접 응용하여 적용하는 것까지. 이것이 겉모습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내용 자체를 들어내거나 바꿔야 할 때, 혹은 새로 창조해야 할 때, 우리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다. 생각한 아이디어가 썩 그렇게 기발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며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거기서 거기라는 것까지 느끼게 해준다. 수많은 생각과 시도를 통해 우리는 바위에 달걀을 던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마 좌절도 하고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유독 더 초라하게 느낄 때도 있다. 아님 단체로 느낄지도 모른다.

 

아주 예전부터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지만, 별다를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라는 마음도 있었고, 그런 그릇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목표와 비전은 따로 없었고 이미 내가 정해둔 목표는 이뤘기 때문에 그다음은 없이 안일하게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살아가고 있던 내가 언제부턴가 그랬던 과거와 싸우고 있다. '홈'의 자리는 이미 과포화상태로 미어터지는 지옥철과 다를 바가 없다. 언제부턴가 홈 밖으로 타의에 의해 튀어나가버린 사람도 있고 아님 자발적으로 뛰쳐나간 사람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상이 좋아져서 깊숙한 홈 절벽 위로 뛰쳐나가 황무지를 횡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해져온다. 물론 홈 안에 있는 사람들의 비율과 비교해 아주 극 소수일지도 몰라도 서서히 늘어가고 있다. 이면 너머까지 알 수는 없어도 그들이 상상도 못할 노력과 또 다른 자유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나도 지난 과거와 싸우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 그 다짐이 와르르 무너질 때도 있다. 다시 다잡고 뛰어드려 해도 여전히 느끼는 부족한 역량에 마음이 약해지지만 오늘보다 더 성장한 내일을 상상하며 버티고 있다.

 

현대미술 거장의 말로는 모두 화려하지 않다. 폴록은 결국 술을 끊지 못했고, 피카소처럼 주목받으며 성공한 작가도 있지만 너무 앞서간 작품성 때문에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한 작가들도 많다. 아니 모든 주의가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변화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드는 반감과 왠지 모를 아니꼬운 시선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런 비난 혹은 비판 속에서 당당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과정이라니.

 

 

내가 남의 것을 베낀다고? 난 절대 남의 것을 베끼지 않아. 다만 훔칠 뿐이지.

 

파블로 피카소,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51쪽

 

 

러시아의 유명한 구축주의 작가 블라디미르 타블린(Vladimir Tatlinm 1885~1953)은 어려운 상황에서 피카소에게 감명받아 그를 여러 번 찾아가 조수가 되길 원했지만 쫓겨나기 일쑤였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비전공자였던 그는 수많은 작품 실험 끝에 이콘화로 그려진 마카일 천사를 시작으로 본인만의 작품 색을 찾아 구성주의(구축주의)의 대표적인 러시아 작가가 됐다.

 

 

타블린의 구축주의도 예술의 근간을 뒤집은 예술운동으로서 다다이즘과 더불어 아방가르드 예술로 분류된다. 회화와 조각이 아닌 새로운 형식을 최초로 창안했으며, 재료 그 자체가 곧 형태가 되는 미술을 추구한 구축주의의 시작점은 타틀린이 피카소의 작업실을 찾아간 바로 그 순간이 될 것이다.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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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장들 또한 아무 길도 없는 황무지에서 본인만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많은 것을 걸었고 남들이 말하는 보장된 인생을 걷지 못했다. 현대미술을 벗어나도 현생에선 가난한 예술가로 살았지만 후대에 빛을 본 작가들도 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는 동료 작가에게 전시를 거절당했고 <샘>을 발표하니 반세기 이후에나 인정받은 마르셀 뒤샹이나 <별이 빛나는 밤>,<해바라기> 등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유명한 작가인 반 고흐 또한 마찬가지다.

 

순전히 그들이 지나온 길에 집중한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은 그들의 생활고나 가난함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점이 더 좋았다. 진정 내가 가고가 하는 길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같았고 모든 것을 손에 쥐고 태어나지 않았으니 애초부터 전부 챙길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데, 하고 싶은데 신경 쓸게 많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쓸데없이 핑계를 대는 기분이다.

 

작가들이 자신의 기법을 구축하는 일상을 여러 읽고, 챕터마다 작가가 정리한 시사점을 기반으로 현재 내가 있는 지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아직 '홈'에 머무르며 황무지로 떠나기 위해 절벽 등반을 준비하고 있다. 당당하게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용기를 가지는데도 반년이 걸린 것 같다. 나는 틀 밖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역량을 아직 가지지 못했다. 완성되지 않은 인간이며 한참 진행 중인 그런 노력형 인간이고 속도도 눈에 보일 만큼 빠르지 않아 아주 천천히 뛰듯이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업무를 위해 어젠다를 생각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다고 핑계대기 싫기가 싫어졌다. 그것이 곧 내 역량이고 내 그릇이기에, 아주 더딘 속도라도 확실하게 내 그릇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어떤 길을 갈지 정해져있지 않다.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의 마지막인 작가의 말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그대는 예술가다.

그리고 그대의 삶은 예술이어야 한다.

그러니 무작정 남의 뒤만 따르지 말라.

이제 그대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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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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