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스스로 상징이 되고자 하는 상징주의자를 만났다

그녀는 이미 나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음을.
글 입력 2021.09.2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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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실제 인터뷰를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수필입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또는 알던 사람의 처음 보는 면모가 눈길을 끄는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은 드라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유명한 명제에 동의하기엔 아직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인생이 'drama'이긴 한 것 같다. 어떤 인연은 정말 불가능할 것만 같은 상황에서 맞닿기도 하니까.

 

 


첫인상



국어국문학 전공자인 나는 공교롭게도 코로나19로 대학의 모든 수업이 300MB/s의 네트워크 속으로 구겨넣어진 후에야 전공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특수한 입학 제도 탓에 그 흔한 '과 동기' 하나 만들지 못한 나는, 화상 회의 화면을 넘기면서 그제야 과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들은 생각보다 (당연히) 평면적이었으며 (상당히)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2020년 3월 이후로 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껐다.


타 수강생들에게 관심을 끈 지는 꽤 됐으나, 화상 수업이 어색하니 너희들도 얼굴을 내보이라는 교수님들의 성화 탓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얼굴을 접하게 될 때가 많았다. 장은재 씨도 그 중 하나였다. 차이가 있었다면―교수의 질문에 답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만큼 보기 드문 미인(美人)이었다는 정도. 그녀는 얌전한 인상에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입을 열 때마다 닻처럼 가라앉은 고민의 무게가 느껴져 눈길이 곧잘 묶이는 타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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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사진도 잘 찍는 타입이었다. ⓒ장은재

 

 

은재 씨의 존재를 지각한 이후부터 그녀와 나는 유난히 동선이 겹쳤다. 여러 수업을 함께 들으면서 나는 은재 씨가 어렵기로 소문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는 복수전공생이었음을 알음알음 알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서늘한 벌판을 가진 국가에서 낭만을 찾고 있다니. 차분한 눈매와 조심스러운 입매를 가진 그녀의 이미지와 꼭 어울린다는 주제넘은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그 뒤로 몇 번이나 그녀에게 말을 걸려다가, 포기했다. 침엽수림을 닮은 그녀만의 고요한 영역에 불 같다고 소문난 내가 접근하면 아무래도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그녀가 나와 같은 아트인사이트 구성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연한 기회를 통해 그녀를 현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무려 1:1 만남으로.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세요?"



그렇게 마주앉은 장은재 씨는 생각보다 상냥했고, 생각만큼 신중했다. 처음에는 둘 다 문학 전공자라는 공통점에 기대어 자연스럽게 문학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추천할 만한 러시아 문학 작품이 있을까요?' 따위의 뻔한 질문을 하는 나에게 은재 씨는 이렇게 되물었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세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을 추천할 것인데, 러시아 문학을 아직 접해보시지 않은 분이라면 고골의 <외투>를 추천하고 싶어요. 저는 레르몬토프를 좋아하지만, 제가 생각해도 장황하고 어려운 작품이라 이 작품으로 입문하시면 앞으로 영영 러시아 문학을 안 보게 되실까봐...
 

 

이 답변을 받은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간 내가 보아왔던 수많은 문학 전공자들을 떠올려 보았다. 대부분의 문학 전공자들은 이상의 난해한 세계를, 이광수의 자의식 과잉적인 문체를, 톨스토이의 고상한 선동을 찬양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그들은 본인이 찬양한 작품을 읽을 엄두도 못 내는 일반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정도는 읽어야 문학을 읽었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은재 씨가 문학을 평가하는 기준은 '나'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문학이 상대에게도 즐거운 경험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었다. 일차적으로는 상대를 고려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사랑하는 문학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러시아 문학이 다른 이들에게도 그 가치가 알려지기를, 나아가 사랑받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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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인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초심자인 남에게 강요하는 태도는 사실 문학을 사랑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사랑하는 자신에 취해 있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을 소개했을 때 상대가 거부감을 느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꿋꿋이 들이민다면, 단지 자신이 그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해당 작품이 불필요한 미움을 받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은재 씨야말로 자신의 문학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우리는 언제든 호감을 잃을 수 있어요."



이쯤 되니 이렇게 보기 드문 사람에게 흔해 빠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식상함을 넘어 무례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뭐 좋아하세요, 와 같은 예정 질문들을 목구멍 뒤로 되감고 그녀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을 질문을 골라 보기로 했다. "은재 씨는 무엇을 싫어하세요?"


질문을 받은 은재 씨는 약 3초 정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게 많아서 고르기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주제 없는 대화와 낭만 없는 문학, 미-준비unready 상태, 불투명한 표현을 싫어했다. 한 마디로 은재 씨는 깊이 파고들 수 없는 것―그러니까 피상적인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그럼 사람은요?" 하고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타인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싫어지는 것이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타인에게 항상 기대를 걸고, 따라서 서로에게 실망할 미래를 앞두고 있는 셈이죠. 그렇기에 저는 인간이란 서로를 점차 싫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주기적으로 상기하며 사는 편이에요.
 


그러나 나는 이 답변을 듣는 순간, 역설적으로 은재 씨가 타인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타인을 꾸준히 관찰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통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관찰이 마냥 따뜻한 시선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냉철한 시선이었다고 한들, 그녀가 타인의 말과 행동에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간 관심을 쏟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지속적인 관심이야말로 사랑의 주요 형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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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은재 씨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고 있는 또 하나의 존재. ⓒ장은재

 

 

은재 씨의 답변에 대하여 누군가는 '왜 이렇게 사람이 부정적이냐' 하고 핀잔을 주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전에 '싫음'을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사람'만이 상대의 고통까지도 진심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싫은 게 많은 사람은 타인의 고통과 교환 가능한 경험이 많다. 다시 말해 싫음이 디폴트default;기본값인 사람들은 타인의 싫음에도 예민하다.

 

마찬가지로 이에 대하여 "인간이란 서로를 점차 싫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주기적으로 상기한다"는 은재 씨의 말은 "나의 어떤 언행을 상대가 싫어할 수 있음을 끊임없이 기억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어차피 서로 싫어하게 될 테니 남이 상처를 입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싫어하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타인의 싫음'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의미다.


밝은 대화 주제, 밝은 상황만을 곁에 둘 수 있다면 당연히 우리는 상처를 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밝음positive'이란 피상적인 속성으로서 반드시 가볍다. 무겁게 가라앉아 사람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어둠negative' 속성의 에너지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은재 씨가 어두운 에너지(예민함)를 밝음의 목적(상처의 예방)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매우 희귀한 인재라고 생각한다.

 

 

 

"상징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요."



대화를 거듭할수록 나는 온갖 희귀 속성들의 집합체와도 같은 은재 씨의 향후 행보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현재 러시아 문학 전공자로서 대학원에 갓 진학한 상태인 그녀는 당분간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이 생겨버린 나로서는 그것으로 부족했다. 나는 그녀가 향후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궁금했다.

 

 
국내에는 러시아 문학 연구자들이 아직 많지 않아서 제가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영역이 많은데 저는 그 중에서도 상징주의에 관심이 많아요. 훗날 누군가가 러시아 문학의 '상징주의'와 관련한 참고자료 또는 조언을 얻고자 할 때, '장은재'가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목표예요.
 

 

은재 씨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냐는 나의 후속 질문에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물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대는 미래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자신을 러시아 문학이라는 키워드의 '상징'으로 여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그녀는 상징주의를 단순히 연구하는 것을 넘어 종국에는 스스로 하나의 상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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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재 씨만큼이나 상징적인 그녀의 고양이 '달리'. ⓒ장은재

 

 

그런데 사실 내가 은재 씨의 목표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그녀의 목표는 이미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세계에 흩뿌려진 희소한 가치들의 집약체로서 이미 나라는 사람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러시아 문학'이라는 키워드를 마주칠 때마다 '장은재'를 떠올릴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그녀와의 만남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홀린 듯이 그녀가 추천한 고골의 단편선을 주문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녀는 최근에 러시아 문학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 채널로 돈을 벌려는 것도, 조회수를 늘리려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은재 씨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내향인임에도 과감히 유튜브 채널에 뛰어든 이유를 이제 짐작할 수 있다.


 

저를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러시아 문학을 새로이 사랑하게 된다면,

저는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요컨대 그녀는 진실로 아름답다.

 

 

**


인터뷰이&사진 장은재

에디터 백나경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장은재 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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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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