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애 첫 오페라의 절경을 맛보다 -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

글 입력 2021.09.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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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에 가지 못한 지 벌써 1년하고도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매년 좋아하는 가수(들)의 콘서트로 발걸음을 옮기던 때가 벌써 아득하다. 작년 한 해 동안만 예정되어 있던 수많은 공연이 연이어 취소되는 걸 - 자동 예매 취소 문자와 함께 - 바라보며 무한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더랬다. 2020년 상반기에 예정되어 있던 콘서트 표는 이미 받은 상황인데 모든 공연이 취소되고 있던 터라 이제는 해당 날짜에 관련된 그 어떤 추억도 담을 수 없는 종이 쪼가리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평소에 흥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공연이 시작할 새가 무섭게 미친 듯이 환호성을 내지르고, 몇 주간 달달 외운 가사를 함께 따라부르며 응원 봉도 힘차게 흔들었던 때가 그립다.


가뜩이나 콘서트에 죽고 못 사는 내가 코로나로 근 2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단 한 차례의 콘서트도 방문하지 못했다니! 지독한 집순이에겐 1년 중 유일하게 광란의 에너지를 내뿜는 날이 콘서트 당일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내게 콘서트는 매년 주기적으로 찾는 연례행사이자 삶의 활력소나 다름없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보다, 공연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코로나를 더욱 원망스럽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게 콘서트 가뭄에 허덕이며 하루하루 목이 타고 있을 즈음, <힉엣눙크! 페스티벌>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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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까지 방문해왔던 –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 전형적인 콘서트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음악이라면 일단 껌뻑 죽고 보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음악과 관련된 방대한 지식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지만, 음악은 늘 나의 삶과 함께해왔다. 지금껏 걸음을 함께해오고 있는 영화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연출이나 각본 못지않게 나는 배경음이나 주요 OST가 좋은 영화에 발 빠르게 반응하고, 감각한다.

 

그래서 내가 ‘인생 영화’라 더러 칭하는 것 중에는 <인셉션> <타이타닉>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패왕별희> 등 음악성이 뛰어난 작품들이 대다수다. 혹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이라고 한들, OST가 좋으면 일단 막무가내로 호감부터 느끼고 보는 사람인 것이다. 가끔 극장에서 적재적소의 타이밍이나 장면에 꼭 들어맞는 음악이 나오면 자동으로 몸에 찌릿찌릿한 전율이 일기도 한다. 환상적인 영화 OST를 만끽하며 머릿속에 번번이 드는 생각이 있다면, ‘이 배경음악엔 어떤 악기가 사용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이다.

 

그러나 악기 분야엔 문외한(어떤 일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조예가 없는 사람)인 터라 매번 쏟아지는 질문을 머릿속으로만 삼키곤 했다. <힉엣눙크! 페스티벌> 역시 생애 처음 방문하는 콘서트 오페라라는 점에서 ‘내가 온전히 공연을 즐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 들었다. 오페라는 이전에 방문했던 콘서트와는 달리 그저 공연장에 앉아 연주를 들으면 그만이었지만, 매 콘서트장에 가사를 통째로 외워간다든가 늘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 이 상황 자체가 어색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공연장에 도착하기 직전,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지하철에서 공연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빠르게 찾아보았다. 오늘 연주될 악기들엔 무엇이 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긴 건지, 또 어떤 곡들이 관객 앞에 선보여질 것인지 이리저리 검색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듣는 공연은 또 어떤 차이가 날지 궁금했기에 지하철에서 내리기 직전까지 오늘 공연의 주인공인 비발디, 보테시니, 골리호브, 그리고 도니체티의 곡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공연에서는 어떤 식으로 연출될지 궁금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예술의 전당 앞에 도착하니 공연장을 향하면서는 이미 걱정보다 설레는 마음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애당초 시간이 여유로울 것이라 예상했건만, 예술의전당에서 본 공연장으로 걸음을 옮기고, 표를 교환하고, 화장실에 다녀와 자리에 앉으니 어느새 공연 시작을 바로 몇 분 앞둔 시점이었다. 접수처에서 집어온 프로그램 북을 찬찬히 읽어내려가고 있던 찰나, 공연장이 암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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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코너는 비발디(1678-1741)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라단조, RV 514」라는 곡이었다. 공연 시작 직전에 프로그램 북을 미리 읽어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라단조’는 비발디 협주곡의 훌륭한 모범이다. 1악장의 시작부터 두 바이올린 독주는 마치 선언하듯 시작하며 이후에는 자유롭게 풀어진 선율들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협주곡이 아닌 실내악에 가까운 음향으로 시작하는 2악장에서 두 독주 바이올린은 슬픔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하강하는 선율로 감정을 표현한다.


독주 악기가 주고받는 선율은 대립하는 것이 아닌, 아름다운 이중창에 가깝다. 그리고 과감하게 시작하는 춤곡 풍의 3악장으로 이어진다. 이제 모든 슬픔은 지나가고 즐거움만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라단조라는 조성의 쌉쌀함이 흥겨운 축제 끝자락에 묘한 여운을 남긴다.

 

글. 윤무진 음악 칼럼니스트

 

 

말마따나 비발디의 노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라단조」는 마냥 밝고 경쾌하기만 한 곡은 아니었다. 프로그램 북에 실린 말 그대로 그의 음악에는 어딘가 슬픔이 뚝뚝 흘러 나오는 듯했다. 물론 이러한 곡의 분위기를 적확하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건 악단 세종솔로이스츠의 엄청난 역량과 실력 덕분이었으리라. 생전 클래식 음악이라고는 대개 피아노 연주로만 들어오던 내게 피아노 없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 베이스의 현악기 위주로 진행되는 이 공연이 더욱 특별하고 신선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수한 건반이 펼쳐진 피아노와는 달리 소리를 낼 수 있는 줄이 고작 몇여 개 정도 펼쳐진 현악기에서 그토록 깊고 다양한 소리가 한데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비발디로 시작한 첫 곡은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환상적인 주도로 진행되었다. 프랭크 황과 데이비드 챈 바이올리니스트다. 단체와 (두 사람의) 독주가 번갈아 가며 흥미진진한 공연이 계속되었고, 관객들의 귀를 연신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독주 중에서도 두 바이올리니스트와 더블 베이스가 함께 어우러져 나오는 소리는 실로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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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에 이어 두 번째 코너는 보테시니(1821-1889)의 「그랑 듀오 콘체르탄테」라는 곡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코너에서는 데이비드 챈 바이올리니스트와 커트 무로키 더블 베이시스트가 공연을 주도했다. 공연 소리가 점차 귀에 익기 시작하자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바이올린은 주로 밝고 경쾌하며 섬세한 소리가 주를 이루는 동시에 더블 베이스는 그보다 더욱더 낮고 진중한 소리를 띠고 있다는 것이었다.


둘의 합주와 어우러진 보테시니의 「그랑 듀오 콘체르탄테」는 푸른 들판을 배경으로 펼쳐진 봄의 이미지를 연상케 했다. 봄의 끝물을 향해 달려가는 피날레 과정에서 바이올린과 더블 베이스가 번갈아 연주하는 장면, 그리고 두 악기가 다시금 단체연주로 아우러질 때 가장 크나큰 짜릿함을 느꼈다. 공연자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그 빈틈없는 조율과 선율, 그리고 열정이 악기를 통해 마음껏 표출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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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시니의 곡이 끝나자 세 번째 코너는 골리호브(b. 1960)의 「마지막 라운드」라는 곡으로 이어졌다. 지금껏 가장 인상 깊은 코너였다. 도입부부터 눈과 귀의 이목을 잡아끄는 강렬한 연주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직전에 연주된 「그랑 듀오 콘체르탄테」가 경쾌하고 맑은 봄의 느낌이었다면, 「마지막 라운드」는 훨씬 속도감 있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급작스레 돌변한 분위기에 눈이 휘둥그레 떠진 것은 물론이었다.


계속해서 수면 위로 떠 오르는 불안한 곡조에 머릿속에는 무언가 긴박히 쫓기는 상황이 연출되며 곧이어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물이 떠오르기도 했다. 진정으로 히치콕의 고전 스릴러에나 나올 법한 연주가 눈앞에서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서 놀라운 건 같은 악기를 사용하면서도 어찌 이토록 남다른 선율을 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형형색색의 꽃과 풀과 호랑나비가 떠오르던 봄의 이미지에서 난데없이 살인마에 뒤쫓기는 듯한 스릴러로 장르가 변주하다니! 앞선 비발디, 보테시니의 곡들과 마찬가지로 바이올린, 첼로, 더블 베이스 등의 악기만이 공연에 사용되었는데도 말이다.


「마지막 라운드」는 갈수록 스릴러물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듯 더욱 격정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그러다 격정의 연주를 끝마치자 별안간 거친 속도감을 가라앉히고 곧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듯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그 연주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보테시니의 「그랑 듀오 콘체르탄테」와 같이 마냥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아니라 머릿속에는 왠지 모르게 ‘여인의 눈물’이라는 어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히치콕 영화에 비교하자면 스릴러의 끝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다 결국엔 비극을 맞은 주인공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한 코너 안에서 이미 고전 영화는 물론이요, 사계절의 쓸쓸함과 개운함까지 동시에 체험한 느낌이었다. 다음은 프로그램 북에 묘사된 「마지막 라운드」에 대한 정확하고 예리한 해설이다.


 

본 작품은 반도네온의 묘사로 착상되었다. 1악장은 격렬한 악기의 움직임을 담았고 2악장은 끝없는 들숨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마지막 라운드”는 승화된 탱고라고 하겠다. 두 현악 사중주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가 마치 전통적인 탱고 밴드처럼 연주하면서도 더블 베이스의 리드로 서로 대립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탱고 안무에서 서로의 다리가 엇갈리듯 악기의 활은 공중을 가로지르는데 이는 아찔하면서도 일정한 춤사위의 간격을 유지해  열정을 순수한 형식미로 표현하는 탱고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글. 제인 비알 제피(Jane Vial Jaffe)

번역.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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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해당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곡으로서 도니체티(1797-1848)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中 “광란의 아리아”가 이어졌다. 우선 본 공연의 제목이기도 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3막으로 구성된 서정 비극 또는 비극 오페라이다. 월터 스콧 경의 소설 「래머무어의 신부」를 원작으로 작성되었다. 공연 전 인터넷과 프로그램 북을 통해 오페라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파악하고 미리 숙지한 것이 공연을 즐기는데 한층 수월했던 것 같다. 아래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줄거리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며 내용의 골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배경은 17세기 말의 스코틀랜드 동부 연안. 람메르무어 가문의 영주 엔리코는 가문의 미래를 위한 결정을 앞에 두고 있다. 바로 자신의 여동생인 루치아를 명망 있는 가문의 영주 아르투로에게 시집보내는 것. 허나 자신의 가문과 대립 관계에 있던 에드가르도를 사랑하고 있던 루치아는 이러한 정략결혼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상황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길로 향하게 되고, 결국 남은 것은 오해와 배신뿐. 이 모든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던 루치아는 결국 미쳐버리고 혼인 상대였던 남편 아르투로를 살해하려 하는데..

 

글. 공연 프로그램 북

 

 

프로그램 북엔 나와 있지 않지만 에드가르도는 결국 성에서 쫓겨나게 되고, 루치아는 비관하여 절망한 나머지 그만 신랑을 찔러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고 만다. 에드가르도 역시 이 비극에 상심하여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채 루치아의 무덤에서 자결하고 만다는 비극적인 줄거리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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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솔로이스츠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1막 2장에서 루치아가 에드가르도를 기다리며 부르는 아리아로 시작된다. 「주위는 고요한 침묵에 잠기고(Regnava nel Silenzio)」는 비극이 예고되는 상황을 낭만주의적인 시선으로 비추는 아리아다.


글. 윤무진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분위기가 곧 돌변하더니 머릿속에는 별안간 깊고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떠오른 달빛의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대개 현악기로만 구성된 이전의 곡들과는 다르게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코너에서는 새로운 악기로 하프가 추가되어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또 본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도 볼 수 있는 만큼 가장 많은 연주자가 출현하여 지휘자 역시 처음으로 등장했다. 하프가 더해진 풍성한 선율이 세종솔로이스츠의 훌륭한 연주와 만나니 오페라의 으슥한 분위기가 공연장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듯 보였다. 음악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여인의 유령, 창백한 손, 피의 냄새와 같은 음울한 이미지들이 조각조각 떠올랐으니 말이다.


악단이 짧은 연주를 끝마치자 곧이어 붉은 귀족풍의 옷을 입은 루치아가 등장했다. 하프 연주가 주를 이루며 아름답고 안온한 분위기가 연출된 오프닝과는 달리 루치아가 등장하자 음악당은 곧 그녀의 정열적인 목소리에 휩싸였다. 전광판으로 띄워지는 오페라의 가사를 읽어내려가며 에드가르도를 기다리는 그녀의 애절한 마음을 헤아렸다. 10여 분이 넘게 이어진 루치아의 노래 또는 (에드가르도를 향한) 기다림이 끝나고 그녀가 퇴장하자 악단의 연주가 다시 시작됐다. 정혼자가 있지만, 원수 가문의 에드가르도를 너무도 사랑하는 루치아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격정적인 연주를 뽐내다 느닷없이 여유로워지는 순간엔 에드가르도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루치아의 희망 담긴 목소리가 묻어져 나오는 것도 같았다.


머릿속에는 “아름답고 슬픈 비가”라는 어구가 절로 떠올랐다. 공연은 루치아가 다시 등장하고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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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솔로이스츠가 간주곡으로 루치아의 염려를 비극으로 연결하면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하이라이트인 3막 2장 부분이 시작된다. 흔히 ‘광란의 장면(Mad Scene)’으로 일컬어지는 이 부분은 루치아 최후의 광기가 발현되는 음악적 공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광란은 음습하거나 악마적인 분위기로 묘사되지 않는다. 루치아가 감내해야 할, 수많은 고난도 페시지가 광란 그 자체이다.


글. 윤무진 음악 칼럼니스트

 


광란의 장면을 부르는 루치아의 모습은 더없이 경이로우면서도 무한한 슬픔이 느껴졌다. 앞서 에드가르도를 향한 열성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루치아가 결국 그와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자각하게 된 이후 악단의 연주는 급격히 어두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윤무진 칼럼니스트가 언급한 대로 ‘광란의 장면’에서는 루치아의 광기가 점점 파국을 향해 내달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뒤이어 루치아는 - 전광판에 떠오른 대사대로 - 천상의 소리와 함께 결혼 축가 소리가 들리며 (예상컨대 에드가르도와의) 결혼식이 보인다고 말한다.


여기서 루치아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비록 가사는 화자의 소망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기에 루치아의 독백은 더욱 처절하고 철저한 비가처럼 들린다. 그리하여 환상을 통해 느끼는 환희의 골짜기는 현실의 절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루치아의 광기로 가득한 기교는 곧 현실을 향한 절규처럼 느껴진다. 루치아의 토해내는 듯한 처량한 신음은 현실 세계를 직시한 그녀의 불안정한 마음이 온전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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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는 곧 ‘광란의 장면’에서 정점을 찍고 내려온다. 관객은 뒤이어지는 루치아의 독백과 한껏 가라앉은 악단의 연주를 통해 그녀가 죽음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음을 조용히 짐작한다. 그리고 전광판에는 하늘에서 당신(에드가르도)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리라는 루치아의 대사가 띄워진다. 머릿속에는 곧바로 드넓은 푸른색의 하늘이 펼쳐진다.


그제야 재등장 때 바뀐 루치아의 흰옷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건 생전에 에드가르도를 기다리며 노래를 부를 때는 줄곧 붉은색 옷을 입고 있던 그녀가 최후에 붉은 피를 흘리며 죽는 순간에는 순백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루치아의 의상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것을 뜻한다. 루치아는 살아있을 적 붉은 옷을 입고 등장한다. 이는 에드가르도와 맺어질 희망이 남아 있는 현실 세계에서 그녀의 불타는 열정이 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리고 루치아는 죽음을 겪고 나서야 그 모든 열망을 순순히 내려놓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도한다. 그녀가 입고 등장한 흰옷에는 에드가르도를 향한 그런 염원의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에드가르도 역시 루치아의 뒤를 따라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가 놀라운 건 굳이 관객이 그 오페라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 못하더라도 루치아가 자결했다는 직접적인 표현 없이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처절한 절규와 가사만을 통해 이미 그녀가 하늘나라에 있음을 쉽게 예측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루치아의 독백이 끝난 후 이어지는 악단의 연주는 그녀를 향한 애도 곡처럼 들리는 동시에 에드가르도와 루치아가 하늘에서만은 행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축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루치아가 마지막으로 재등장하는 순간에 들려오는 아름다운 합주는 이전보다 한결 부드럽고 안락해진 분위기를 선사하며 하늘에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함께하리라는 희망찬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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