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상자의 몫, 추상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 2021.05.22~2021.09.26
글 입력 2021.09.1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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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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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서 캔버스의 뒤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평면 회화에서 3차원을 형성하기 위해 쓴 기법 때문이 아니라, 정말 캔버스의 무한하고도 끝없는 면을 말이다.

 

필자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3, 4전시실에서 열린 정상화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이 느낌을 잠시나마 경험했다. 사람의 신장보다 높게 걸린 정상화의 작품들은 4전시실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전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추상화가인 정상화의 작업 세계를 담았다. 정상화 작가는 오래 단색조 화가라고 불렸지만, 지금까지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한 맥락적인 연구는 부족했다고 한다. 이에 국립현대 미술관은 정상화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함으로써 그의 작품을 다시 조명하고 있다.

 

전시는 총 다섯 섹션으로 나누어지며, ‘추상실험’,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 ‘종이와 프로타주’, ‘격자화의 완성’. ‘모노크롬을 넘어서’ 순으로 이어진다.

 

 

 

추상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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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 <작품68-7>,1968, 캔버스에 유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먼저 1 섹션, 추상실험(1953-1968)이다. 정상화 작가는 대학교 재학시절, 주로 구체적인 대상이 있는 정물화나 인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장에 처음 들어서면 그의 뚜렷한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다. 이 자화상에서는 섬세한 표현보다도 두꺼운 물감으로 명암을 올린 분위기가 더 먼저 느껴진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더해나가지 않고 오히려 빼는 작업을 한다. 그는 무언가를 비우고 다시 면을 채우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 희열이 정상화 작가가 졸업 이후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회화를 제작하도록 이끌었다. 여기서 앵포르멜이란 표현주의적인 추상예술을 뜻한다.


작가의 작품 세계와 관련해 ‘앵포르멜’에 대해 더 짚을 필요가 있다. 우선, 이 화풍이 시작된 이유는 제2차 세계 대전 때문이었다. 그들은 전쟁을 겪은 후 회의를 느꼈고, 인간의 깊은 내면적인 감정만을 어떠한 형상도 없이 표현하려 했다. 즉 이러한 미술이 유행한 것은 정치적인 억압과 파괴 때문이었고, 이 폐허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찾으려는 예술가들의 노력 때문이었다. 정상화 작가 역시 1932년생으로 전쟁의 아픔을 느낀 세대였다. 그는 “완전히 평면화가 돼 버린 상황, 있던 게 없어진 것에 대한 허탈감”을 느꼈다고 밝히며, 작품의 고유성을 다시 찾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과감히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상처에 물감을 얹는다. 그리고 관객은 이러한 그의 작품들 사이에 섰을 때 무언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뜯어지고 흩어져도 작품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캔버스가 하나의 면만이 아니라 다시 채워지리라는 느낌 때문이다. 보통 그림을 그리다가도 망치면 캔버스를 쓰레기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과감하게 틀려야 새로운 정답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처럼, 작가는 온전히 자신의 예술적 혼을 쏟아 새로운 미술의 길을 걸어 나갔다.

 

 

 

관객이 주가 되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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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작가와의 대화 영상에서 정상화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새로움’이라는 것은 항상 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동향과 대응한 거죠. 여태까지 꾸준히 해온 ‘나’라는 문제를 가지고 새로운 동향과 대응해 부딪혀 나온 거예요.”


즉, 그는 자신 내부로부터 뿌리를 내리고, 작가의 미학적인 논리와 경험을 조화시키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렇게 작가는 예술적 가치관에 따라 자신의 작품을 논리와 결부시켰기에, 보는 이는 작품을 둘러싼 자신의 내면적인 진동을 느낄 수 있다. 2 섹션,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1969-1977)”은 정상화 작가가 일본 고베로 이주해 활동하던 시기의 작품들이다. 아예 색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시기로, 당시 작품은 유독 뜯어지고 말라 보이는 부분이 많다.

 

이 작품들을 개인적인 감상에 잠시 표현해보자면, 우선 텅 빈집과도 같다. 집 내부구조를 자세히 보려면 집안의 많은 가구와 짐을 들어내야 하듯이, 그의 작품은 텅 비어버린 집과 같아서 마치 조용한 공간에 홀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두 번째, 빛을 반사 시키는 거울과도 같다. 실제로 반사하는 작품은 없지만, 그는 캔버스에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것을 담기보다 관객이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도록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작품은 평면적인 캔버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터널의 입구, 통로처럼도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온전히 감상자의 감상이 작품에 담기도록, 기꺼이 주도권을 내어주고 있다.

 

 

 

이해보다 감상


 

작가는 백색 추상 작품 외에도 프로타주를 이용하고 색이 담기기도 하는 격자화를 제작했는데, 이는 전시의 3, 4 섹션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5 섹션, ‘모노크롬을 넘어서’에서는 색이 차곡차곡 담긴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의 추상 작품은 시간이 흘러 점차 섬세한 작품으로 나아갔는데, 여기서 가장 보잘것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바탕이 되는 색인, 흰색으로 캔버스를 채워가는 일, 작은 격자 하나하나로 큰 작품을 완성해가는 일, 불필요한 마음을 접고, 작업에만 몰두하는 일 모두가 그림의 본질을 가장 잘 담아내는 듯했다.


이러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정의 내리며, 예술을 삶에 녹아내기를 바라고 있다. 한겹 한겹 묻어나는 작가의 정성이 담긴 작품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면 순수한 정화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소복소복 쌓이다 커지는 눈처럼, 작가는 개인의 마음에 들어오는 감상의 부피를 확장한다.

 

 

* 참고

-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 전시 도록

- 국립현대미술관 YouTube 채널, MMCA 작가와의 대화 | 정상화 작가

- [네이버 지식백과] 앵포르멜 [Informel]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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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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