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자가 바라본 9.11테러 [도서/문학]

그는 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되었는가
글 입력 2021.09.0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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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전 세계를 뒤흔든 끔찍한 테러가 발생했다.

 

미국의 드높은 권위를 상징하는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차례로 무너졌고 세계 경제의 중심부인 뉴욕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90여 개국 3,50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이 생명을 잃었기에 국가를 막론하고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의 잔인함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9.11 테러는 전 세계인이 눈물을 흘릴 만큼 끔찍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테러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했을 미국인들이 가장 큰 슬픔을 겪었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가장 큰 인명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이들,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 모두 큰 트라우마를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신 하미드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에서 미국인이 아닌 제3세계인의 시각에서 9.11테러를 담아낸다. 이슬람 문화권, 파키스탄 출신의 주인공 찬게즈(Changez)의 미국살이를 그려내며 그들에게 9.11테러가 또한 얼마나 큰 아픔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을 사랑했지만 영원한 미국의 타자였던 Changez의 이야기는 '주체'가 아닌 '타자'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전달해 준다.

 

이번 글을 통해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에서 나타난 다양한 알레고리를 소개하며 미국인은 물론 비미국인에게 9.11테러가 얼마나 큰 고통으로 다가왔을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대화 구조, 하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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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책의 내용은 액자식 구조로 진행된다. 우선 현재 시점에서 찬게즈와 우연히 만난 한 미국인이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찬게즈가 어떻게 미국에서 살았는지 내용이 이어진다. 본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로지 찬게즈의 목소리만 들리는 대화구조가 참신하다고 느꼈다. 보통은 두 명의 대화로 현재 시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게 되지만 책에서는 오직 찬게즈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힘이 있는 사람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해당 책에서는 타자, 약자의 입장에 있는 찬게즈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권력구조'를 뒤집는 화자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9.11테러로 인하여 미국인과 아랍권 사람들의 긴장관계를 터질 듯이 증폭되었는데 미국인이 아닌 비미국인이 중심이 되는 구조가 흥미로웠다.

 

책은 찬게즈의 온화하고 예의 바른 인사로 시작되지만 청자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나간다.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으나 찬게즈가 청자를 안심시키려는 대사와 행동 속에서 찬게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파키스탄으로 정찰 온 미국 CIA 요원이지 않을까 추측되었다.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이 되고 과연 찬게즈와 청자는 친구일지, 적일지 긴장감을 이어나간다. 찬게즈는 친절하게 대화하는 듯 하나 이미 미국인의 정체를 눈치챈 듯이 보이고 또 청자는 언제든지 (총으로 추측되는) 품속의 무엇인가를 꺼낼 준비를 한다.

 

오직 찬게즈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때문에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액자 속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찬게즈가 왜 미국이 아닌 곳에서 미국인과 긴장감을 유지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Change를 꿈꾼 Chang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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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게즈의 이름을 스펠링으로 적어본다면 "변화"를 의미하는 단어 'Change'와 매우 비슷하다. 실제로 책 속의 찬게즈는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미국 대학을 진학한 인물이다. 미국의 명문 대학 프리스턴에서 파키스탄인은 딱 2명이었다. 미국인은 500배가 더 많았으며 미국 학생들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최후의 2인으로 선정되었다.

 

찬게즈는 미국이 표방하는 '실용주의', '개인주의'에 꼭 맞는 인물이었다. 찬게즈는 출신 국적, 신분과 상관없이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2001년 프리스턴을 졸업한 찬게즈는 Underwood Samson & Company.에 취업을 하게 된다. 위 회사는 다른 기업이 진행하는 사업을 평가하는 감정 회사로서 미국 명문대 졸업생이라면 누구라도 들어가길 원하는 회사였다.

 

찬게즈는 성공하고 인정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사회적 페르소나를 만들어나갔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뛰었으나 남들 앞에서는 마치 "왕자"인듯한 자태를 유지했다. 미국인들이 바라는 성실하고 똑똑하며 여유있는 남자처럼 보이고자 노력한다. 그는 이런 페르소나를 유지하며 미국 상류층 여성 Erica와 서로 끌리게 된다.

 

책 속의 에리카는 미국[(Am)Erica]을 상징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녀는 미국의 일부가 되고 싶었던 찬게즈가 사랑한 여인으로 그의 욕망을 드러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에리카 역시 외국인인 찬게즈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의 옛 남자친구 크리스를 잊지 못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그려진다.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본다면 크리스는 Old World, 즉 좋았던 시대의 미국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변화인 찬게즈에게 끌리고 그를 사랑하고자 하나 에리카는 그러지 못한다. 크리스는 에리카에게 회복이 불가능한 향수와 같은 존재이다. 찬게즈는 그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더욱 더 미국인처럼 행동을 한다. 심지어 에리카에게 자신을 크리스라고 상상하라는 말까지 한다. 이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911테러의 발생으로 에리카는 그를 사랑할 수 없게 된다.

 

 

 

타자가 바라본 9.11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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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9.11테러 이후에 변화된 뉴욕의 모습과 그런 변화에서 찬게즈가 느끼는 심정을 잘 보여준다. 추모를 위한 미국의 국기는 뉴욕을 침략하는 듯이 넘쳐흘렀고 이런 모습에 찬게즈는 더 이상 뉴욕이 아니라고 하며 미국이 선전포고를 놓는 듯 하다고 말한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에리카와 재회를 했지만 그녀는 911이후로 매우 수척해졌으며 과거의 크리스에게 계속 집착한다. 책은 단지 옛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는 한 여인으로 그렸지만 속의 내용은 평화로웠던 미국을 그리워하는 2001년도 미국이라고 생각되었다.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받은 2001년도의 미국, 에리카는 새로운 사랑인 찬게즈가 아니라 과거의 평화로웠던 미국, 크리스를 더욱 더 그리워하게 된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파키스탄에 다녀온 찬게즈는 책의 초반부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전까지는 초라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자신의 고향, 집이 한없이 초라하다고 느낀 그는 자신이 세속적으로 변했음을 느끼고 이후 미국에 돌아와서는 미국인의 시각, 입장에 무조건 맞추는 일을 멈춘다. 예를 들어, 당시 미국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수염을 자르지 않았다. 이는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부당한 대우를 받는 자신과 파키스탄을 위한 소극적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찬게즈의 변화에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은 에리카와의 재회이다. 에리카는 여전히 과거에 묶여있었고 변해버린 찬게즈와의 만남을 힘들어했다. 그는 그녀를 현실로 끌고 나오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고 결국 그녀에게 거절을 당한다. 찬게즈의 진짜 모습은 에리카에게 견디기 힘든 공포를 주었고 그녀의 거절에 찬게즈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미국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9.11 테러 자체는 미국인만큼 힘든 사건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후에 그들은 테러를 일으킨 집단과 비슷한 외양을 갖고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적인 시선을 받게 되고 미국으로부터 '거절' 당한다. 미국의 일부가 되고자 노력했지만 자신이 사랑한 에리카로부터, 또 미국으로부터 거부당한 찬게즈의 고통이 어찌 덜하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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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사실 찬게즈는 '9.11 테러' 소식을 접하고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그는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와 사고의 규모를 생각하기 전에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은연중에 통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고 찬게즈가 진심으로 미국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찬게즈의 미소를 맹렬하게 비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해당 시점에 눈물이 아니라 미소를 짓게 만든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누구보다 열렬하게 미국을 사랑하고자 노력한 찬게즈가 9.11과 같이 전례없는 테러를 보고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이 '통쾌함'이라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겉으로는 개인주의, 능력주의를 내세우며 세계시민주의를 외친 미국이 사실 이방인, 타자에게 미국인처럼 살라고 강요한 상황은 아니였을까.

 

찬게즈는 9.11 테러로 인하여 미국에서의 자신의 삶이 어려워질 것임을 사건을 접한 즉시 예상했을 것이다. 미래의 어려움에 대한 걱정과 슬픔보다도 그에게 '통쾌함'을 가져다 줬다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3세계인들이 9.11 테러 이전부터 겪었을 억압적인 상황을 고려해 봐야한다.

 

다가오는 9월 11일, 우리는 다시 20년 전에 발생했던 테러에 대해 생각하며 슬픔에 잠기게 될 것이고 미국에게 위로를 전할 것이다. 그러나, 9.11 테러로 인하여 더욱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야 했던 숨겨진 타자에게도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은 다른 방식이겠지만 그들 역시 고통받았고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다. 주체뿐만 아니라 타자들의 시각에서 9월 11일 생각해보고 그들을 위한 위로를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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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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