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어제 그거 봤어?'를 읽고 '안녕 드라큘라'를 분석해보다.

글 입력 2021.08.2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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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아직도 어려운 분류로 생각되는 과목(?)이 하나 있다. 바로 페미니즘(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큰 화두가 되고 있는 페미니즘의 흐름을 따라잡기 매우 어려웠던 학생이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해 부당함을 개인적으로 느꼈던 사연 하나 없다고 생각하니 많은 여성들이 큰 목소리를 내야만 했던 상황에 감정이입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둔감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공적에서 피할 수 없이 회의 주제로 페미니즘에 대해 의견을 내야 할 때면 상당히 난처했다. 같은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들이 피력하는 말들에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옹호하진 못해도 적어도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난 원인과 결과를 변호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성별은 같지만 그들과 같은 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가 말하고자 하는 흐름을 따라가고는 싶었다. 그래서 이제 더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가 사적이나 공적으로 화두에 오를 때 듣고만 있는 사람이 아닌, 감정을 배제하고 논리정연하게 페미니즘의 역사와 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지경까지는 오고 싶었다. 그들이 대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작년부터 소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를 시작으로 여성 감독들의 이야기인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를 읽었다. 또 왓챠플레이에 있는 <빅 리틀 라이즈 시즌 1,2>, <와이 우먼 킬>을 보면서 여성들이 사회에 어떤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지 벼락 치기를 했다. 조금, 아니 많이 늦었다고는 느꼈지만 이제야 비로소 귀를 열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볼 시점은 스토리를 이해하고 이입하기까지가 목적이었다. 이제는 그 목적이 끝났으니 다른 작품을 선택해 냉철하게 분석해 볼 기회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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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움을 받을 책을 선정해보다 상상출판에서 여성주의 시선으로 본 문화비평 에세이 <어제 그거 봤어?>가 눈에 들어왔다. 작가 이자연은 대중문화 탐구인으로서 영상 콘텐츠를 여성주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걸 즐겨 하는 분이다.

 

이 책의 목차는 크게 4장으로 나눠진다. 각 장의 차례를 보면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시트콤, 드라마, 예능을 사례로 들며 독자들이 단순히 재미를 느끼는 콘텐츠에서 벗어나 홍수처럼 터지는 콘텐츠 안에서 역사와 주변 환경을 다시 점검해보고 수정할 사항이 있음을 당당히 발언한다.

 

 

 

엄마라는 안전한 관 속, <안녕 드라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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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거 봤어?>에서 나온 많은 꼭지의 콘텐츠 나열 중에 <안녕 드라큘라>를 분석 대상의 드라마로 골라 놨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는 아니지만 다행히 요새 OTT 중 많은 각광을 받고 있는 티빙에 안착되어 있다. 또한 1시간가량의 러닝타임에 단 2부작으로, 분석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안나(서현)은 8년을 만난 여자 친구에게 이별 통고를 받는다. 20대의 모든 시절을 함께 한 연인에게 달랑 상자 하나를 택배로 받는 마무리를 눈앞에 마주하면서 무너지고 만다. 그런 안나 옆에는 집에 함께 살고 있는 엄마가 있다. 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보기가 어려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만다. 딸에게 상처 준 애인을 찾아가 감정을 대신 정리해 주게 된다.

 

안나(서현)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어렷한 사회화 활동을 하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필사적으로 관 안에 안전하게 보존하려는 엄마 밑에서 자란다. 그런 안전한 관 속에서 이빨을 감추고 살아가는 것, 어쩌면 한국의 많은 딸들이 이런 보호라는 체계 안에서 수동적으로 산다.

 

1편에서 30분 정도 가량 스토리가 전개될 때 스킵 버튼을 누르게 한 장면이 있었다. 나도 듣고 자랐던, 어쩌면 딸이 엄마에게 듣고 자라야 할 당연한 애정이라고만 느꼈었던 모녀의 모습이 우리의 모녀를 보는 듯했다. 그동안 늘 나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달고 살았다. “태생적으로 진취적인 사람이 아닌 성향은 분명한데, 다치는 한이 있어도 누구한테 의지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은 단 하나도 없어. 너무 멋없잖아. 진짜 멋있게 진취적으로 살고 싶어.” 왜 그동안 몸에 맞지도 않은 성향으로 살아가려고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는 걸까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다.

 

성장할수록 감정 정리나 내게 주어진 상황을 홀로 이겨내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다는 걸 느꼈다. 그게 잘 안될 때는 그런 나를 탓했다. 왜 이리 나약해질 때가 한 번씩 찾아올까 생각하며. 그 이유는 여전히 난 눈에 보이지 않은 관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환경은 콘텐츠로 기록이 되지 않으니깐 눈에 보이지 않았던 모든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겹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고 깨닫게 된 것이다.

    

 

“엄마는 안나를 지킬 거야. 엄마는 안나 말고는 다 필요 없어. 엄마한테는 안나가 제일 소중한 거 알지. 엄마가 안나 이름으로 글 쓰는 이유가 뭐라고 했지?”

 

“엄마가 내 이름을 걸고 최고가 될 거라고.”

 

“우리 딸은 최고야. 엄마 말도 잘 듣고 착하고 천사 같은 딸. 엄마 속 한 번 안 썩이고. 너무 고마워.”

 

안나(서현)의 내레이션 - 고작 10살이었던 나에게 그 말은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처럼 들렸다. 실로 엄마는 나를 필사적으로 보호했다. 안전하고 또 안전한 관 속에. 날 가두는 방법으로.“

 

 

무조건적인 과잉보호가 사랑인 줄만 알았다. 어쩌면 모든 딸들은 엄마의 커다란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에 사람이 받아야 할 모든 경험치를 박탈당하는 아쉬운 순간들을 맞이했던 순간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평을 하기 위해서 본 작품이라 내 오피니언이 자극적인 활자의 맛으로 쓰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나의 엄마가 최선을 다했던 세심한 역할들이 오해를 받을까 걱정이 된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받아들이는 이입이 다르지만, 난 모녀의 애틋한 사랑 속에서 그 보호받는다는 느낌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았고 방법을 찾았다. 당당하고 진취적으로 사는 삶이 어떤 긍정의 결과를 갖고 오는지 엄마의 교육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성인이 된 딸들은 혹은 여자들은 양날의 검이라는 뜻을 알고 산다. 안나(서현)이 느꼈을 땐 어렸을 때부터 모든 선택권이 엄마의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안나의 오산일 수도 있다. 안나는 엄마의 욕구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이 분명 있었지만 그 욕구의 넘치는 사랑으로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세상만사의 장점과 단점을 성인이 된 여성이라면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안녕, 드라큘라>는 여성들이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고민들에 대해 스토리텔링이 탄탄한 드라마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비평과 비판을 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아직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좋은 작품이다. 이에 추가로 <어제 그거 봤어?>를 보지 못하고 <안녕 드라큘라>만 봤더라면 안나(서현)가 엄마의 안전한 사랑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고 오해할 뻔했으니 <어제 그거 봤어?>와 <안녕 드라큘라>의 합은 매우 잘 맞는 듯하다.

 

엄마와 딸 혹은 여성대 여성으로서 각자의 입장 차이는 매우 분명했다. 누가 잘했네 잘하지 못했네를 따질 수 없는 섬세한 감정 선들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현재 잠재적으로 깔려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의 간극이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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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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