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여성이 클리셰가 되기를 거절하는 순간, 꽃피우는 여성 영화의 세계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2021
글 입력 2021.07.2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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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체의 에너지는 이 여성이 클리셰가 되기를 거절하는 순간, 더 이상 시선의 대상이기를 원치 않고 대신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자 하는 그 순간에 집중되죠.

 

- 아녜스 바르다

 

 

2019년은 여성 영화의 새로운 물결이 관객들의 관심을 장악하기 충분했다. <82년생 김지영>, <정직한 후보>가 나오면서 여성들도 한국 영화에서 자신의 구체성이 담긴 이야기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들에 여성들의 주목이 쉽게 가라앉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였다.

 

 

사본 -82년생 김지영_본문22쪽.jpg

 

사본 -정직한 후보_본문67쪽.jpg

 

 

이는 시간을 타고 올라가 한국 영화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여배우들의 인터뷰를 들여다보면 공통점으로 답변된 내용이 존재한다. “충무로에서 설자리가 없다.” “들어오는 배역이 거기서 거기다.” “색다른 역할을 시도해보고 싶은데 그럴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는다.” 배우가 현장에 설자리가 없다는 것이 한국 영화가 가지는 기본 값이 된 모양인 듯 인식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여성 입지는 특색 있는 이야기가 부여되지 않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열망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여배우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들어오는 대본을 습득하고 자신을 대입하는 역할이자 직업이기에, 어찌 바꿀 희망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예외적으로 배우 문소리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외침을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작품으로 표현해냈다. 이 영화를 보고 짧게나마 내 감상평을 메모로 적어두었다. ‘훗날 나의 직업에 성별에 대한 제약이 따라와, 세상이 바라는 역할이 있어 혼동이 와도 꾹 참고 걸어 나가는 것. 그 혼동이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면 융통성 있게 넘어가되, 그게 아니라면 문소리처럼 어떤 형태로든 메시지를 던질 용기를 가지기.’

 

문소리 배우는 여성들의 생각을 세상 밖으로 꺼낼 때 나타나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준 <여배우는 오늘도>를 만들고 그 후 <세 자매> 작품에서는 제작자로 참여해 또다시 여성 서사 영화를 만들기에 일조하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화감독 김도영, 윤가은, 김보라, 장유정, 임선애, 안주영, 유은정, 박지완, 김초희, 한가람, 차서덕, 윤단비, 이경미도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한국 영화에 남성 서사만 줄기차게 이어졌던 산업영화에 대해 이 감독들은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알겠어. 그동안 잘 보고 잘 들었어. 그런데 나는 여자로 태어났고, 여자로 살면서 생겨난 모든 에피소드들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분명하게 있었어’라는 의지 하나로 이 세계를 다시 써 내려가려 했음을 예상할 수 있다.

 

독자적인 색이 구별되기 어려운 이 세계에서 분명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품고 있는 여자들이 있었다는 기록을 남겨두고 싶은 바람인 것이다.

 

<콩나물>을 만든 윤가은 감독은 소녀들의 풍부한 시간들에 대해 다룬다. 주인공은 콩나물을 사러 가기까지 아주머니를 돕게 되고, 막걸리도 한 잔 얻어마시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래서 콩나물을 사는 임무를 완수했냐는 결과론을 물어본다면 그건 윤가은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에 결코 중요하지 않다.

 

성장하는 한 소녀로서 처음으로 시장에 가는 도전을 했던 것, 넓고 긴 시장을 누비고 다닌 시간들이 더 중요하다. 저 먼 우주에서 볼 때 시장이라는 로케이션이 미세하고 보이지도 않는 먼지 같은 의미일지라도 소녀들의 활동성은 멈춰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듯 보여준다. 한국 영화에서 여성이 스테레오 타입만 부여 당하는 역할로 물신화되기에는 이 소녀의 활동 반경은 동서남북으로 펼쳐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윤가은 감독이 자신도 한국 사회가 “진짜 영화답다”라고 평가 내릴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돌고 돌아도 매번 자신 안에 있는 이야기로 돌아왔다고 한다. 거짓말을 할 수 없었기에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속 사정이 담긴 감성 팔이 일기를 각색해서 내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전적이라는 뜻은 직접 경험한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둘러보고 나에게 관심을 가졌을 때에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들어있어야 비로소 자전적이라고 뜻할 수 있다.

 


 

대한민국 첫 여성 감독, 김남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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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첫 여성 감독은 박남옥은 1955년에 <미망인>을 발표했다.

 

감독 박남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이 사진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출산 직후부터 <미망인>을 촬영했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현장에 데리고 와 지휘했다. 일과 가정 둘 중 하나도 포기하지 못했던 신여성으로서의 박남옥은 이 사진에서만큼은 부담감이 어깨와 등에 쏠려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의 끼니도 직접 만들어 챙겼던 큰 손으로 야무진 면모를 보여준다. 수십 년의 세월을 겪은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여성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살아남기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감이 오지 않는다. 남성 중심적인 영화 판도에서 그녀는 어떻게 성별과 직업의 고정적인 역할론을 헤엄쳐 나갔을까, 쉽사리 짐작하기 어렵다.

 

그렇게 첫 여성 감독이 등장했고 여전히 남초 집단의 한국 영화산업이었지만, 좋은 바람이 불기도 했다. 제5차 영화법 개정안에 따라 영화 시장도 자유화되었고 민주화가 달성이 되어 영화산업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영화를 할리우드처럼 산업화하기 시작하여 대기업들도 영상산업에 눈길을 보냈고 젊고 트렌디한 인력들이 충무로에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쯤이 1980년 극 후반에서 1900년 초의 상황이다. 여성들도 1900년대에는 대학 진학률의 상승으로 인해 교육을 받고 그에 걸맞은 교양을 쌓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소비 주체는 대중문화 산업으로 크게 향했고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을 내세울 수 있었다. 오래 걸렸지만 높은 문턱들을 넘기고 나자, 영화산업에서 여성들의 진출은 확고히 영토를 넓혀갔고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성 영화인의 상징적 사건은 여성 영화인 모임이다. 영화 마케팅 회사 <올댓시네마>의 대표 채윤희와 영화제작회사 <명필름> 심재명을 주축으로 하여 각 분야의 전문 인력이 포괄되어 있다.

 

또한 영화계 내 미투 운동이 벌어졌을 때 한국 영화 성 평등센터 <든든>이 만들어져 꾸준히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 여성 프로듀서가 한국 영화계에는 성차별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니 여성들이 다른 분야에 비교적 능력으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 틀림없어졌다.

 

수동적인 여성으로 살지 않는 삶, 주체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펼칠 수 있는 삶을 그려내는 여성 영화인들에게 힘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든 가꾸어 만들어져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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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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