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리의 죽음, 침묵의 부활 [영화]

글 입력 2021.07.1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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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가 예민한 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독 요란하고 큰 소리에 자동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선천적으로 청각의 예민함을 타고난 것 같기도 하다. 이 때문에 불꽃놀이 축제에 가면 으레 한쪽 귀를 꾹 막거나 두 귀를 슬쩍 막아 하늘에서 펼쳐지는 장관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고,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가서도 축하 노래가 끝나갈 즈음에는 생일 폭죽이 터지기 전 슬금슬금 손을 올려 귀를 지긋이 막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 여전히 소리에 최적화된 상영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면 종종 귀가 예민해져 알 수 없는 이명이 띵-하고 머리를 울리기도 한다. 이렇게 소리에 예민한 내가 어딜 가나 늘 귀에 에어팟을 끼고 다니며 높은 음량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다니는 음악 애호가라는 사실은 다소 모순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타고난 청각적 예민함에도 내가 음악(이나 콘서트, 페스티벌)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멜로디나 선율이 좋아서 뿐만 아니라 특정 노래를 감상하던 당시의 시간, 분위기, 기억, 공간을 회상시키는 추억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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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영화의 주제가도 마찬가지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Cinema Paradiso’를 들으면 영화 <시네마 천국>의 단관 극장이 불현듯 떠오른다거나 ‘Non, Je Ne Regrette Rian’의 선율을 듣는 순간 <인셉션>의 꿈속 세계가 연상되고, ‘Mystery of Love’ ‘Visions of Gideon’의 도입부를 들으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이탈리아의 배경이 드넓게 펼쳐지며 첫사랑을 앓는 엘리오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지는 것이 대표적 경우다.


즉 영화가 중심적으로 품고 있는 음악은 해당 작품을 감상하던 시기나 계절, 나아가 등장인물의 잔상까지도 머릿속에 펼쳐내는 마법을 지녔다. 이것이 곧 수많은 영화가 관객의 기억에 은밀한 마법을 심어두기 위해 스코어나 배경 음악, 주제가에 특히나 심혈을 기울이는 까닭일 테다. 감각적인 음악에 빠르게 심취하고 깊이 빠져드는 나 같은 관객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예술은 늘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어 대중 앞에 예측불허의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전형적인 전례 방식을 거부하고, 영화의 핵심 요소라고도 볼 수 있는 음악의 활용을 과감히 포기한 영화 역시 존재한다.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대중의 청각을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대신 공포영화의 클리셰 요소를 최대한 피하면서 감각을 곤두세워 오감을 자극하는 새로운 장르적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와 <사운드 오브 메탈>은 영리하고 실험적이며 대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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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후속작 파트2가 개봉한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와 2021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된 <사운드 오브 메탈>을 관람하였다. 이제껏 많은 상업영화가 치중해온 배경 음악이나 소리를 잠시 뒤로하고, 반복되는 침묵에 초점을 맞춰 관객이 소리의 상실을 직접 경험케 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의 체험적 의미가 유독 인상 깊게 다가왔다.


관객에게 전달되는 불필요한 소음을 최대한으로 차단하는 동시에 관객의 귀를 더욱 활짝 열고 예민하게 만드는 영민함까지 갖췄다. 이로써 소리가 가라앉고, 떠오른 침묵이 영화를 잠식하는 동안 관객은 주인공과 함께 완전한 정적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소리의 죽음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두 영화에서 소리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배경은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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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괴생명체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소리를 내면 죽는다’라는 새로운 설정을 내세워 소음을 최소화하며 살아가야 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다룬다. 시력 대신 고도로 발달한 청각을 가진 이 미지의 생명체는 인간의 생활 범주 내에서 살아가며 소리가 나는 순간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위협적인 존재다. 영화는 이 같은 암울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에블린 가족의 위태로운 사투를 그린다. 에블린(에밀리 블런트)과 리(존 크래신스키)는 두 자녀 레건과 마커스에게 하루하루 숨을 죽이며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에블린 가족에서 유독 주목할 인물이 있다면, 장녀 레건(밀리센트 시몬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청각 장애를 지닌 농인(聾人)이다. 소리를 내면 괴생명체에 무참히 공격당해 곧바로 즉사하는 위기의 상황에서 청력에 의지할 수 없는 레건의 처지는 다소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에블린 가족의 생존에 있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레건이 선천적으로 농인이었기에 에블린 가족은 지금껏 익숙히 사용해 온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며 오랜 기간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다. 따라서 레건은 이 작은 공동체 내에서 보호의 대상인 동시에 구원의 존재이며 레건을 통해 부활한 수화는 입과 귀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에블린 가족이 유일하고도 자유로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서 기능한다. 레건은 절망적 상황을 일말의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유의미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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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운드 오브 메탈>의 주인공 루벤(리즈 아메드)은 어떠한가. 루벤은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세상과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며 외부의 물리적 위협 또한 받지 않는다. 그의 세계를 향한 위협은 내부로부터 서서히 피어난다. 여자친구 루(올리비아 쿡)와 순회공연을 돌며 메탈 밴드의 드럼 연주를 담당하고 있는 루벤은 어느 날 청력을 잃게 된다. 그가 청력을 잃어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완전한 무음의 세계는 영화의 지속적인 무음으로 이어지며 관객은 루벤과 함께 알 수 없는 당혹감과 답답함에 휩싸이면서 종국에는 그를 향한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된다.


앞서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인간의 언어소통 및 자유 의지의 상실을 표방했다면, <사운드 오브 메탈>은 그보다 훨씬 현실적인 접근법을 취하며 후천적 청력 장애를 가지게 된 인물이 겪게 되는 청력 상실의 과정을 관객이 고스란히 인식하고 경험하게 한다.


동시에 두 작품은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과 공포에 기반하여 서사를 구축해 나간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생존 본능은 괴생물체를 향한 공포감을 더욱 극대화하며 <사운드 오브 메탈>의 주인공 루벤은 생업으로 삼던 밴드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더는 듣지 못하며 앞으로 마주할 끝없는 적막 속에서 더욱 원초적인 ‘고독의 공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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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영원한 침묵 아래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겐 절망적인 상황밖에 남지 않은 것일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아무리 무너져도, 연이은 상실을 경험해도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두 작품은 중심인물에 여러 조력자를 배치하며 한 단계 성장하는 인물의 삶과 소리를 잃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속 레건은 자신의 실수로 막내를 잃었다는 죄책감에 거듭 시달리면서도 아버지 리의 위로를 받으며 괴생명체에 맞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기술을 물려받는다. 이는 다시 한번 레건이 남은 에블린 가족의 구원자 역할을 행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하며 나아가서는 2편에 등장하는 두 번째 조력자 에밋(킬리언 머피)을 통해 공동체의 구원으로까지 나아간다.


<사운드 오브 메탈>의 루벤은 청력을 잃기 오래전 여자친구 루를 만나 약물 중독자의 삶에서 한차례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력을 잃은 후 한동안 방황하던 그는 농인 공동체에 들어가 멘토 조(폴 레이시)를 만난다. 마찬가지로 청력 장애를 앓고 있는 조는 루벤에게 수어 학습을 권하면서 절망처럼 보이는 끝없는 적막감 속에서도 공동체와 함께 생활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더없는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비록 소리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끝내 마음 한편에서 버리지 못하고 병원으로 돌아간 그가 결국 ‘sound of metal’ 대신 ‘sound of silence’의 길을 선택한 것은, 이전의 농인 공동체에서 경험한 고요함의 낙과 침묵의 환희, 나아가서는 고독의 공포감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그의 찬연한 성장담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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