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위스의 건축 듀오, 헤르조그와 드 뫼롱 [시각예술]

글 입력 2021.06.0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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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자크 헤르조그, 오른쪽이 피에르 드 뫼롱

 

 

현재 건축계에서는 한 명의 거장보다는 뛰어난 팀워크를 자랑하는 듀오가 대세다. 그 흐름의 선두에 스위스 바젤 출신의 건축 듀오,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있다. 헤르조그 없이 드 뫼롱을, 드 뫼롱을 배제하고 헤르조그의 건축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사람은 대학 졸업 이후 사무실을 여는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넘게 함께 활동했다. 헤르조그의 건축이 곧 드 뫼롱의 건축이고 드 뫼롱의 건축이 곧 헤르조그의 건축이다. 같은 예술적 언어를 둘이서만 오롯이 공유하는 셈이다.


자크 헤르조그(Jacgues Herzog)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은 1950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일곱 살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 죽마고우인 두 사람은 취리히 연방 공대에서 함께 건축을 공부했고, 1978년에 바젤에서 함께 설계사무소를 차렸다. 이들은 1989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1999년부터는 현재까지 취리히 연방 공대와 바젤 연방 공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현재에도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두 사람은 작업의 범위를 확장하여 다른 예술가 및 전문가와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스위스의 화가이자 아티스트인 레미 자우그(Remy Zaugg)와 많은 협업을 했으며, 그들의 대표작인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은 중국 아티스트 아이웨이웨이(Iweiwei)와 함께한 것으로 유명하다. 졸업할 당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와 함께 축제 의상 일을 하는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교류했다.

 

이후에도 앤디 워홀이나 미니멀리즘 아티스트들에게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이는 그들의 건축 사상 및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2001년 프리츠커 상을 시작으로 스털링 상, 로열 골드 메달,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으로 루벧킨(Lubetkin) 상을 거머쥐는 등 세계 유수의 건축 시상식을 휩쓴 스타 건축가들이다.

 

 

 

건축 특징: 기능주의적 순수주의



헤르조그와 드 뫼롱의 건축사상은 ‘기능주의적 순수주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스페인의 건축가인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는 헤르조그와 드 뫼롱이 건축물을 구축할 때 가장 근본적인 측면을 탐구하는 ‘기능주의적 순수주의’의 건축가들이라고 평가했다. 기능주의란, 모던건축의 대표주자인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말한 ‘less is more’ 적 건축을 말한다. 고전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장식들이나 불필요한 요소들은 없애버리고, 재료의 본질과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최대한 심플한 형태의 디자인을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어 순수주의란 쓸데없는 장식성이나 과장을 일절 거부한, 간결하고 명확한 조형 표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배제하는 기능주의의 관점과 상통한다. 결국, 기능주의적 순수주의는 건축가로서의 독특함보다는 건축 본연의 속성과 실용성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헤르조그와 드 뫼롱의 작업은 의도적으로 형태를 절제한 채 벽과 지붕, 창문과 같은 기본적인 건축요소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재료의 본성과 잠재성에 주목했으며, 건축적 상징이나 인용을 단호히 거부하며 1980년대 말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척점에 섰다. 또한, 단순한 표피조정에 머물지 않고 구조적인 조건을 되살려내며 구축과 형태를 결합해내는 근원적인 건축을 했다. 뉴욕타임스의 건축평론가였던 루이스 헉스타블(Louise Huxtable)은 ‘그들은 재료와 표피를 새로운 접근법과 기술을 통해 전통적인 모더니즘을 간결한 요소로 구체화한다’고 표현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모더니즘적 건축의 깃발을 휘날린 것이다. 이 외에도 건축물이 위치할 지역에 대한 존중, 건물의 구조 및 재료의 물성을 바탕으로 한 실험정신, 가장 중요한 건축적 요소를 건축물의 외피로 판단한 점, 세밀한 디테일 처리를 이들의 건축적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건축은 물질, 건축은 패션


 

헤르조그가 직접 밝힌 그와 드 뫼롱의 건축 사상은 두 가지 포인트를 가진다. 먼저, 그는 건축은 물질이라고 주장한다. 건축은 결국 재료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건축이란 콘크리트이고, 벽돌이고, 유리이고, 나무다. 두 건축가는 초기부터 재료의 사용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자신들의 표현대로 재료가 물성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의도했던 것 이상의 결과들을 보여줌으로써 건축 재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확장하는 것에 집중해왔다.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의 변화무쌍한 철재, 도미너스 와이너리에 사용한 창의적인 돌망태, 도쿄 프라다 빌딩의 곡면 유리, 미세한 곡률 변화를 적용한 바젤 시그널 박스의 구리판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두 번째로, 그는 건축은 패션이라고 말한다. 건축에서 표피와 외장은 인간에게 옷과 같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렇기에 많은 예술가와 협업을 즐기며 건축의 개념을 넓히기를 원한다. '건축은 건축이되 건축은 예술일 수 있다. 건축은 패션일 수 있다. 아니, 그런 영역으로 확대되거나 영감을 주고받는 것은 건축 스스로를 위해 더 좋은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 하에서 보면, 건축은 기본적으로 뼈대가 되는 구조로부터 공간이 형성되고 그 외피에 외장이 붙어서 구성된다고 분석할 수 있다. 건축의 구조와 공간에 맞는 외피는 하나의 안성맞춤인 옷과 같다. 건축물이 옷을 입고 날개를 달 때, 건축은 헤르조그의 말처럼 패션이 된다. 그리고 헤르조그와 드 뫼롱은 재료의 숨어 있는 가치를 극대화하는 그들만의 건축에 옷을 입힌다.

 

 

 

대표적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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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콜라 창고(Ricola Storage Building). 1986-1987. Mulhouse, France.

 

 

헤르조그와 드 뫼롱의 건축물을 살펴보자. 먼저 소개할 건축물은 프랑스의 뮐 루즈에 위치한 리콜라 창고 건물이다. 헤르조그와 드 뫼롱은 처음 10년 이상의 기간을 미술관, 경기장, 오페라 하우스와 같은 대형 건축 프로젝트에 집중하였다. 그런 점에서 소규모의 프로젝트였던 이 건물은 그들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철학적인 의미의 터닝포인트라기보다는 건축의 스펙트럼을 소형 건축물까지 넓힌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건축물은 의도적으로 명확한 윤곽과 입체감이 없이 설계되어, 건물의 외벽이 지붕으로부터 자라서 내려오는 담쟁이덩굴과 포도덩굴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헤르조그는 외부 공간과 빈 틈새의 공간, 그리고 어떻게 이 공간이 건축물을 관통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먼저 넓은 입구에 위치한 계단을 극장 앞의 공간처럼 확대하여 건물 입구에서부터 사무실 앞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내부 공간은 명확하게 방으로 구획되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유리 벽으로 오픈된 영역으로 구획된다. 또한 내부와 외부 사이에도 유리를 사용하여 경계를 융합, 사무실 전체에 일종의 공간의 흐름을 형성시켰다. 건물 외면을 감싼 살아 있는 식물과 커튼은 이러한 흐름에 여유로움을 더한다. 리콜라 마케팅 빌딩은 건축, 자연, 예술을 하나의 거주 콘셉트로 결합함으로써 리콜라 사(社)의 비즈니스 가치를 이상적인 방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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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미누스 와이너리(Dominus Winery). 1997. Napa Valley, SF, USA.

 

 

두 번째 건축물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나파밸리에 위치한 도미누스 와인 저장소다. 간단하게 도미누스 와이너리라고 부르는 이 건물은 와이너리 건축에 존재했던 기존의 틀을 깬 독창적 건축물로 유명하다. 건물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벽면은 돌망태에 이 고장에서 출토되는 현무암 돌들을 담아서 만든 것으로, 도로 옆 절개지에 산사태 등을 방지하기 위해 사각형으로 된 철망에 큰 자갈을 넣어서 쌓아 놓은 것을 사용한 것이다. 건축의 재료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미적 역할을 수행한다. 돌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들은 환기, 온도 및 빛 조절 능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현대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재료미학(구조물을 이루는 데 사용하는 철재나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시켜서 구조의 재료가 미적 기능까지 함께 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건축물이다.

 

벽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은 건축 표피와 재료의 새로운 발견일 뿐 아니라 공간의 미학적인 경험까지도 끌어낸다. 돌망태기에 돌을 넣어 축조한 직육면체는 공예적 장치와 기능적 장치가 된다. 자연재료를 미가공하여 돈을 절약하는 경제적 미학을 추구함과 동시에, 그 지역의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지역성이라는 건축의 명제를 달성한 모범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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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테이트 모던(Tate Modern). 2000. London, UK

 

 

대표적 건축물 중 하나로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건물은 1993년 시작된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핵심 키 사업이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밀레니엄을 맞이해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건설함으로써 새롭게 도약하겠다는 당시 영국 정부의 정책이다. 템스강 지역의 관광객을 효과적으로 유치하고 일반 대중의 문화·예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981년 문을 닫은 뱅크 사이드(Bankside) 화력발전소를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세워졌는데, 1994년 국제 현상 공모를 통해서 이들이 설계를 맡게 되었다. 대부분의 건축가는 버려진 발전소를 전부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헤르조그와 드 뫼롱은 기존 건물의 외형을 유지한 채 내부 기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리뉴얼 안을 제안했다. 기존의 것을 철거하고 새 것을 축조하기보다, 아예 새롭게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안이 채택된 후, 설계는 대부분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 용도만 미술관의 기능에 맞게 전면적으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실용성과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영국 건축의 리뉴얼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적용이라 여겨진다) 건물구조는 철골구조로, 어둡고 둔중했던 천장은 유리로 새롭게 교체되었다.

 

원래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하던 높이 99m의 중앙 굴뚝을 반투명 건축 소재를 사용해 야간 발광체로 만든 점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밤이 찾아오면 굴뚝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도시를 밝힌다. 스위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스위스 라이트(Swiss light)’라고 불리는 이 굴뚝은 미술관의 새로운 상징이자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기존의 화력발전소에서 강조되었던 수직적 흐름은 강한 남성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유리 상자를 씌운 옥상과 굴뚝의 보석 같은 이미지가 더해져 외관은 경쾌한 상승감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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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Bird's Nest). 2007. Beijing, China.

 

 

두 사람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이다. 이 경기장은 대나무로 엮은 새 둥지 형태 모양으로 일명 버즈 네스트(Bird’s Nest)—새 둥지, 중국말로는 냐오차오—라고 한다. 계획 당시 고대 도자기의 형태(갈라진 패턴 등)를 차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건물의 몸체는 거대한 규모의 강철 기둥과 버팀목으로 구성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가지들이 땅에서 솟아올라 건물의 상부에서 꺾어져 거대한 지붕으로 맞물려 드는 듯한 형상은 조각 같은 느낌을 풍긴다. 가장 눈에 띄는 특성은 견고한 외벽도, 막으로 된 벽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대신, 숲처럼 늘어선 기둥이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잠정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 기둥은 건축물다운 특성을 강조하면서도 건물이 단일한 덩어리 같은 모습이 되지 않도록 방지한다.


경기장 주변 지역은 경기장을 중심으로 순환하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도심 공원의 아래에는 입구와 미디어 실, 상점이 들어선 지하층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장대한 건축물은 구조적 영역에 속해 있던 경기장을 새로운 미학적 측면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건축물은 헤르조그와 드 뫼롱이 건축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구조적 형태 그대로를 일반 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장소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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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호기(Signal Box). 1994. Basel, Switzerland.

 

 

마지막으로 바젤(Basel) 기차역 부근에 세워진 신호기를 소개한다. 동판에 액체를 넣어 만들었으며, 물이 차고 빠지는 원리로 신호의 변화를 알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구리선으로 휘감겨 있는 6층짜리 이 사각 건축물은 멀리서는 마치 아른거리는 세로 줄무늬로 뒤덮인 듯 보인다. 교묘하게 꼬인 구리선은 장식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건축 안으로 자연 빛이 잘 투과될 수 있도록 하며, 번개를 막는 역할도 한다. 일상의 기능적 물체가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발상의 새로운 전환을 통해, 신호기 고유의 기능과 더불어 미학적 가치를 지닌 예술성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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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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