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영화]

미성숙한 우리를 위하여
글 입력 2021.05.2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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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소울메이트(SoulMate, 七月與安生)

감독 증국상 | 출연 주동우 마사순 이정빈 등 | 개봉 2017.12.07 | 상영 시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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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우 주동우를 처음 알게 된 영화다. 『칠월과 안생』이라는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배우 주동우와 마사순이 맡은 안생과 칠월의 14년 우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 외에도 드라마 등 다른 버전으로 나올 만큼 인기있는 작품이다. 개봉 당시, 진가를 알 만큼 아직 나이가 되지 못했지만, 작품 속 그녀들보다 더 나이를 먹은 지금 다시 감상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가치는 더욱더 짙다. 또한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는 흘러가는 시간과 변해가는 사람들을 어렴풋이 경험했다. 그렇게 나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가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더욱 커진 것을 체감했다.

 

 

열셋, 운명처럼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열일곱, 우리에게도 첫사랑이 생겼다.

스물, 어른이 된다는 건 이별을 배우는 것이었다.

스물셋, 널 나보다 사랑할 수 없음에 낙담했다.

스물일곱, 너를 그리워했다.

14년간 함께, 또 엇갈리며 닮아갔던

두 소녀의 애틋하고 찬란한 청춘 이야기!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시놉시스


 

칠월(七月, 마사순)과 안생(安生, 주동우)은 누가 봐도 다른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다. 집안 환경도 성격도 취미도 다르다. 그런데도 그 둘은 13살에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다. 원래 정반대의 사람에게 끌린다던가, 서로에게 없는 점을 가지고 있는 칠월과 안생은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없는 점을 채웠다.

 

안정적인 집과 모범생으로 자란 칠월(마사순)은 안생을 통해 자유와 선택을, 그리고 안생(주동우)은 칠월을 통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음을 한 다리 건너 체감한다. 사실 전개는 감정을 건드리는 뻔하디 뻔한 클리셰 요소를 남기며 결국 끝이 난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찾는 건 다른 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정과 사랑

난 항상 너에게 양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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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보면 한 남자를 둔 두 여자의 다툼처럼 보일 수도 있다. 소제목을 굳이 사랑과 우정이 아니라 우정과 사랑이라 잡은 이유다. 칠월은 안생을 통해 이별, 사랑, 그리움, 기다림, 자유, 선택 등 모든 감정을 배운다.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저 착하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칠월에겐 안생이 세상이다. 안생이 가져다준 세상은 칠월에게 너무나 커서 벅찼을 뿐이고, 안생은 자신이 마주하는 세상이 작아 더 나아가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 안생에게 칠월은 안정감, 가족, 쉼, 회귀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안도감을 알려준다.

 

13살부터 만난 이 두 친구는 서로를 통해 성장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 본다. 하물며 그리움이란 감정도 아직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테고, 그리움이라 느꼈던 감정도 실제 사전에서 정의한 감정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주동우(안생 역)와 마사순(칠월 역)에게 중화권 3대 영화제인 대만 금마장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만큼 두 사람이 그리는 우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을 안겨준다. 진심으로 누군가와 친구였다면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다.

 


 

관계의 공백

이별을 너무 슬프게 만들지마, 칠월 네가 남으라고 하면 그냥 남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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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은 모두가 기대에 부응하여 차곡차곡 안정된 삶을 꾸려나간다. 본인의 생각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생각이라 판단하고 꾸준히 버틴다. 그녀는 안정된 가정환경 속에서 부족함 없이 맛있는 것을 먹고 부모님의 보호 아래 차분히 성장한다. 칠월은 심지가 굳세다. 침착하고 신중하다. 공부도 잘했으며 명문고로 진학한다.

 

반대로 불안한 가정에서 방임을 당하다시피 자란 안생은 밝았지만, 그만큼 기복도 심하고 외로웠다. 대신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아이였다. 지켜주는 어른이 없어 모든지 스스로 해야했고 칠월보다 일찍이 인생의 달콤씁슬한 것을 깨달았다.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안생은 돈을 벌어야 했고 직업전문학교로 진학한다. 13살 이후 떨어진 적 없던 사이에 처음으로 공백이 생겼다. 그리고 둘 사이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다. 바로 칠월의 첫사랑인 가명(이정빈)이다.

 

가명은 어찌 보면 칠월과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친구다. 칠월이 그랬던 것처럼 칠월과 만나면서 자신과 다른 안생에게 점점 관심이 쏠린다. 안생이 칠월에게 끌린 것처럼 가명에게도 서서히 마음이 열린다. 그래서 안생은 떠나기로 한다. 그렇게 칠월과 안생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쌓는다. 거리는 더 멀어져 간다. 연출에서 보듯이 한결같은 차분한 머리를 하는 칠월에 비해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안생의 머리 스타일만 봐도 그렇다.

 

 

여긴 너무 작아서 벌써 지겨워졌어.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중, 안생

 

 

아직 사회에 나가기 전까지는 정확히 몰라도, 아마도 일을 시작하고 경력을 쌓아가는 우리 나이가 공감할만한 '거리'를 느낀다. 다 자란 성인이 되고 27살이 지나 완벽한 어른이 된 안생은 지하철에서 가명을 만난다. 잘 지내냐는 겉치레 인사에 가명은 덧붙인다. 너네는 영원할 줄 알았어. 안생은 답한다, 영원히 변치 않는 관계는 없어. 작은 숲에서 뛰놀던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그들의 미래다.


  

누군가의 그림자를 밟으면 그 사람은 평생 떠나지 않는단 얘기를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용기와 선택

자유롭고 싶어 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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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은 자유로워지고 싶다. 정해놓은 인생을 걸어온 그녀는 안생에 비해 안정적이었고 여행 중 허름한 숙소가 아닌 호텔에서 잘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았으며 교육받은 만큼 똑똑하게 자신의 인생을 헤쳐나갈 지식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없었다. 바로 '용기'다.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을 수용한 칠월은 고백한다. 난 자유롭고 싶어. 시간이 지나 누워 마주보는 안생에게 말한다. 너처럼. 칠월의 어머님은 칠월에게 자주 말했다. 여자는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그래서 그녀는 말씀에 따라 공부를 했고 알맞은 직업을 택했을 뿐이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것을 잃고서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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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생은 아이러니하게도 칠월과 달리 모든 것을 선택하며 방방곡곡을 떠돈다. 감정에 솔직했고 기분파인 그녀는 직접 선택한다. 넉사이 좋아 이곳 저곳에서 자주 얻어 먹는다. 주체적으로 자기 생각에 따라 움직인다. 그것이 빌붙는 것이든 구걸이든, 모든 직접 얻어내야 한다. 물론 칠월만큼 가진 것은 없고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부자가 될 거라던 안생은 칠월보다 가진 것이 없어 초라하다. 한 가지 직업을 가져본 칠월과 달리 여러 개의 직업을 거쳤고 거주지도 일정하지 않다. 이번 생은 떠돌아다닐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안생은 그만큼 자유를 누린다.

 

 

엄마 아빠가 원하던 삶은 이젠 다 없어졌어, 미안해.

괴로운 삶을 산다고 불행한건 아니야 좀 많이 힘들 뿐이지.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중, 칠월과 엄마

 

 

안생을 보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된 칠월은 처음으로 큰 선택을 한다. 안생의 인생을 걸어본다. 그리고 안생은 그런 칠월을 보며 칠월을 위해 그녀답지 않은 선택을 한다. 가족을 느껴본다. 그렇게 영화는 우정이 선택한 말로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안생과 칠월처럼 나에게도 다르지만 같은 결을 가진 오래된 친구가 있었다. 가진 환경, 적성, 성격, 성향 모두 같은 게 하나 없던 친구가 서로를 통해서 서로를 탈출구로 삼아 지냈던 것 같다. 비록 그 계기는 같지 않았지만 서로 마주하는 다른 세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 버틸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 이유는 선명하나 감정은 불투명하다. 그래서인지 선명했던 이유도 이젠 바래져간다. 마치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무릇 이것은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숱하게 주위에서 보고 들을 얘기다. 나는 아닐 거야, 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아무렴 상관없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도 이런 종류의 상실이 찾아올지 모른다. 누구나 말하고 누구나 공감하는 게 있다. 사람일 어찌 될지 모른다고.

 

흔히들 말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지인으로 남지, 친구로 가기 힘들다고 한다. 친구라는 의미를 사람마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고 어떤 그룹으로 나뉘어 구분할지 모르지만, 내게 친구란 언제든 보아도 한결같고, 10년 만에 만나도 어색함이 없는, 둘만의 공간에서 침묵이 허용되는 사이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언제 보아도 아무런 공유 없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나는 친구라 정의한다. 그래서인지 사람과 친해지고 정을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가 먼저 거리를 두나 싶기도 하다. 적당히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고 재밌게 어울린다. 단지 공적인 자리가 아닌 사적인 자리로 끌어오질 않는다. 회사나 단체에서 빠져나와 나와 시간을 공유하는 관계까지 가져오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 시간이 좋고 정해진 경계를 누군가가 침범하길 꺼린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하고 싶은 것들이 혼자서 해야 충분히 할 수 있는 취미가 많다. 책을 읽는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는 한다. 아니면 영화를 보거나 사부작거리며 무언가를 만든다. 하다못해 화를 불러오는 미니어처 DIY 키트가 그렇게 좋다. 밖에 나가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고 카페에 가서 사진 찍는 것도 좋다. 공연과 전시회도 즐긴다. 그런데 그렇게도 누구랑 같이 하는 게 어색하고 불편하다.

 

누군가한테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결국 자길 위한 시간이 제일 소중하다는 한 줄짜리 이야기를 여러 문장으로 늘어놓은 셈이 아닌가? 어쩌겠는가? 이게 나의 행복이다. 예전 즐겨보던 예능 프로 무한도전 중 명수는 12살 특집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 노는 게 좋다던 12살의 명수는 용돈으로 혼자 핫도그도 사 먹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친구들과 노는 게 재밌어도 나는 언제나 혼자 노는 게 재밌다. 그리고 혼자 노는 게 재밌는 친구와 같이 노는 게 제일 재밌더라. 그렇게 나의 결에 맞는 사람을 찾아간다.

 

보통 사적인 자리는 상대에게 맞춘다. 그래서 아무거나를 외치는 친구가 제일 난감하다. 더욱이 내가 어디 가고 싶은지 묻는 사람이 제일 버겁다. 나는 카페를 가도 그날에 따라 어딜 가고 싶은지가 다르다. 한없이 걷다가 그제야 보이는 골목 귀퉁이의 카페가 가고 싶기도 하고 아니면 별것 아닌 디저트 하나 맛보겠다고 떠나는 도시여행도 좋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일과에 지쳐 일찍 들어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서 상대의 온도를 모르는 이상, 이런 여행을 상대한테 같이하자고 할 용기가 없다. 나는 심리적으로 결을 맞추기까지 어렵다. 나의 만족을 위해 남이 끼는 게 아직 어색하다. 혼자 좋아하고 혼자 즐겁고 천천히 시간을 사유하는 공간을 사랑한다. 그래서 이 긴 호흡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안생과 칠월의 그 중간 즈음을 달리고 있다.

 

나는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보통 시간을 둔다. 내 주변보다는 조금 다른 나의 취향이 그들이 언젠가 스스로 좋아질 그 날까지, 나는 천천히 시간을 거닐고 기다린다. 그들도 나와 같은 취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와 나의 취향이 자연스레 맞춰지는 시간까지 기다려본다. 억지로 짜 맞춘 거리는 쉽게 탈이 난다. 연연하지 않는다. 가까워질 수 있다면 언젠간 가까워질 테고, 혹여 가깝더라도 시간이 필요하다면 거리를 둔다. 그것이 내 생각이다.

 

 

헤어짐이 슬픈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 이었다.

안생을 자신만큼 사랑할 수 없어 실망했고 

인생의 모든것을 나눌수 없음에 낙담했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어른이 된다는 건 원래 이런 것이란 걸.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중, 칠월과 안생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를 채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와 너는 절대 같을 수 없기에 앞을 보며 세상을 걸어나갈 뿐이지 한결같이 갈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차갑고 힘든 세상이기에 흔들리지 않도록 굳건한 벽이 되어 응원하고 그 힘을 통해 살아갈 의지를 지탱해주는 존재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변할 수 밖에 없다면 조금 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각자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을 키워 다양한 선택을 진정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게 어떨까, 우리는 아직 미숙한 존재니까.

 

 

 

칠월과 안생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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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은 안생을 통해 배우던 세상을 스스로 맞이하기로 한다. 울타리 내에서 오랜 시간 동안 단단하게 자랐던 그녀는 현명하게 세상을 마주한다. 반대로 어린 나이부터 온몸으로 세상을 받아냈던 안생은 누구보다 넓은 경험으로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울타리가 된다. 서로를 갈구했고 미워했던 사랑하고 동경했으며 그들은 서로를 닮는다.

 

영화의 연출적인 부분이나 흐름보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유는 칠월과 안생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친구'와 '우정', 그리고 '사랑'은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고 모두 원하고 지키고 싶은 주제다. 10대의 우정을 가지고 살아온 20, 30대가 공감할 만한 감정을 아우르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살아가면서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이 변해가고 나 또한 예전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길이 송두리째 흔들려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리고 방황하는 기간이 주는 불안함, 또 새로운 길의 설렘 등, 칠월과 안생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히 우정과 사랑일 수도 있지만, 인생의 한 부분을 같이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의 마음을 샀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마음이 울적하거나 혹은 기쁜 일을 나누고 싶을 때,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 그리운 날, 다시 찾아보게 될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좀 더 나이가 들어 보게 된다면 젊은 날의 기억을 들춰 또 다른 감상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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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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